삶은 정답을 맞히는 시험지가 아니라, 그저 살아내어 증명하는 무대다.
1. 35년의 간절함, 질문의 답을 찾아서
이 생애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10살, 작은 캠프에서 겪은 따돌림은 어린 영혼에 '죽음'과 '공격성'이라는 검은 씨앗을 심었다. 타인의 뒤통수를 쏘고 싶고, 팽창한 배를 터뜨려버리고 싶던 그 파괴적인 충동들. 그 지옥 같은 시간 속에서 나는 물었다. "나는 왜 사람으로 태어났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나는 35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도하며 버텼다.
20대의 나는 구원을 향해 봇물 터지듯 달렸다. 수련원과 명상 센터를 전전하고, 심리상담소와 정신건강의학과의 문을 두드렸다. 우울과 조증, 함묵증과 신체화 증상이라는 이름표를 단 채 결혼과 시월드, 육아라는 거친 파도를 넘으며 끊임없이 헤매고 또 헤맸다.
2. 피 묻은 손길과 자비로운 미소
그 간절함 끝에 하느님을 만났다. 피 흘리는 손으로 내 등을 쓸어주시며 "너는 나의 딸이다. 가고 옴에 연연하지 마라. 네가 가는 그 길에 내가 함께 있으니 너 자신을 믿어라"라고 말씀하시던 그 따스한 존재를. 비록 사람에게 상처받아 교회 문은 나섰을지언정, 나는 내 집을 성전 삼아 매일 그분과 대화한다.
동시에 나는 나를 지켜봐 주시는 부처님의 자비로운 미소에도 진심이다. "인연법대로 흘러간다. 모든 것은 네가 하는 것이다"라는 그 평온한 가르침은 내 삶의 또 다른 기둥이 되었다. 신(神)은 건물이 아닌 내 마음속에 살아계셨고, 그 빽(?)을 믿고 나는 오늘을 견딘다.
3. 질문이 곧 답이었음을
인생의 중턱에서 깨닫는다. 35년 동안 찾아 헤맨 명쾌한 정답은 따로 없었다. 어쩌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그 질문 자체가 답이었는지 모른다. 답을 찾기 위해 발버둥 쳤던 그 고통스러운 여정이, 울고 웃으며 지나온 그 세월 자체가 이미 나의 소명이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어제의 차도 위 눈물은 비극이었으나, 오늘 이렇게 글을 쓰는 나는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 있다. 삶은 정답을 맞히는 시험지가 아니라, 그저 살아내어 증명하는 무대다.
4. 2026년, 장미꽃 아래에서 만납시다
그냥, 이천이십육년도 살아보자.
올해에는 '천지인'이라는 이름으로 내 아픔과 치유의 기록을 세상에 내놓으려 한다. 5월, 장미 향기 가득한 세종 장미공원 야외 벤치에서 나의 출판기념회를 열고 싶다.
나와 같이 웅크리고 있을 수많은 10살의 소녀들에게, 그리고 길거리에서 길을 잃은 모든 아내와 엄마들에게 이 책을 바치고 싶다. 여러분을 모두 초대한다. 그날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살아내느라 고생 많았다"고 환하게 웃어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