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지 말자. 천천히 가도 괜찮다.
1. 세월이라는 약을 삼키다
"시간이 약이다." "그저 세월에 맡겨라."
어른들이 던지던 그 무책임해 보이던 말들을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아픔은 당장 나를 집어삼킬 듯 생생한데, 보이지도 않는 시간을 기다리라니. 하지만 마흔 중반의 고개를 넘으며 나보다 어린 이들에게 나직이 같은 말을 건네는 나를 발견한다. 이제야 그 말들이 가슴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나이가 들고 세월이라는 시간이 내 삶에 겹겹이 보태지니, 애쓰지 않아도 자연히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모든 것에는 무르익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모든 결실에는 반드시 제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2. 찬바람이 불어야 단풍은 붉어진다
가을 산을 수놓는 단풍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적당히 찬 바람이 불어오고 기온이 뚝 떨어지는 시련을 겪어야만, 비로소 초록의 외피를 벗고 노랗게, 혹은 붉게 제 안의 색깔을 세상에 내어놓는다.
우리의 인생도 단풍과 다르지 않다. 지금 내 삶이 유독 시리고 힘들다면, 그것은 내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다. 아직 나의 '때'가 오지 않았을 뿐이다. 조금 더 깊이 익어가기 위해, 더 선명한 색을 내기 위해 잠시 찬바람을 견디며 무르익는 중인 것이다.
3. 천천히, 인생을 엮어가는 기쁨
그러니 서두르지 말자. 천천히 가도 괜찮다.
내가 겪은 그 아픔, 슬픔, 그리고 죽음과도 같았던 고통들이 결국은 지나가고 나면 더 깊은 편안함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21살의 절망도, 46살의 어지럼증도 결국 내 인생이라는 커다란 천을 짜기 위한 실타래였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그렇게 하루하루의 고통과 환희를 교차하며 각자의 인생을 단단하게 엮어가는 작가들이다. 지금의 시련이 나를 더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일 것을 믿기에, 나는 오늘도 내게 불어오는 바람을 기꺼이 맞이한다.
괜찮다. 다 괜찮다.
무르익은 단풍이 낙엽이 되어 흙으로 돌아가듯, 우리의 고통도 결국은 거름이 되어 새로운 계절을 싹틔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