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닮은 목소리, 내 안의 신성(神性)을 깨우다
1. 일정한 목소리, 그 고요한 숲의 깊이
"선생님은 목소리가 왜 그래? 높낮이도 없고 답답해. 난 싫어."
성질 사나운 누군가는 내게 핀잔을 주었다. 감정을 숨기지 못해 소리를 지르고 상대를 짓밟아야 성이 풀리는 그에게, 나의 차분함은 거슬리는 가시였을지 모른다. 사실 그 목소리는 나의 방어기제였다. 당신의 화에 맞서지 않으려, 싸움을 피하려 꾹꾹 눌러 담은 인내의 결과물이었다.
가만히 있으니 나를 가마니로 보는 세상이다. 목소리 큰 사람이 장땡인 이 사회에서, 이유 없는 고함이 당당함으로 둔갑하는 풍경을 본다. 하지만 모두가 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림책 놀이 수업에서 만난 이들은 내게 말했다. "선생님 목소리는 차분해서 힘이 있어요. 아이들이 집중을 참 잘하네요."
어릴 적 나는 성우를 꿈꾸며 소설 속 '옥희'의 목소리를 흉내 내곤 했다. 예쁘고 맑은 목소리. 연기자와 뮤지컬 배우를 꿈꾸던 그 열망은 여전히 내 안에서 영글어가고 있다. 나는 이제 남의 평가에 휘둘리는 대신, 내 목소리가 가진 숲의 고요함을 사랑하기로 했다.
2. 착한 사람이라는 남루한 껍질을 벗고
세상의 수많은 기준에 나를 맞추려 애썼다. 좋은 사람, 착한 사람, 실수하지 않는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어 안간힘을 다했다. 하지만 그 끝에 남은 건 상처로 얼룩져 남루해진 마음뿐이었다.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진 상처들이 비명이 되어 몸의 통증으로 터져 나올 즈음, 나는 비로소 나에게 말을 건넸다.
"지인아, 괜찮아. 남들의 평가에 귀 닫으렴. 넌 세상에 하나뿐인 귀하고 소중한 존재야. 네 잘못이 아니야."
오래전, 기도의 시간 속에서 들었던 따뜻한 음성을 기억한다. 피로 얼룩진 손으로 내 등을 토닥여주시던 하느님의 목소리. "딸아, 괜찮다. 네가 택한 길이 바로 내가 가는 길이다. 슬퍼하지 마라."
나는 교회라는 건물이나 목사라는 권위에서 상처를 입고 발길을 끊었지만, 내 안의 하느님과는 한 번도 결별한 적이 없다. 내 집이 곧 교회요, 내 마음이 곧 성전이다. 나는 내 안의 신성을 믿는다. 동시에 나는 부처님의 자비로운 웃음 또한 섬긴다. "나뭇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아멘." 나만의 이 독특한 기도문은 세상 모든 존재를 존중하고 사랑하겠다는 나의 다짐이다.
3. 다시 살아봄직한 인생을 향하여
누군가는 내 목소리가 답답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나의 잔잔함은 누군가에게 비를 피할 숲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을. 섣부른 기쁨을 나누어도 질투가 되지 않고, 어떤 울음을 꺼내놓아도 묵묵히 들어줄 수 있는 유연한 마음이 내 목소리에 깃들어 있음을.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지 않으려 한다. 내 빽은 세상의 권력이 아니라, 내 안에서 숨 쉬는 하느님과 부처님이기 때문이다. 나를 아끼고 지키는 일, 그것이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소명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지나온 상처조각들이 모여 이제는 빛을 반사하는 보석이 되기를. 누구보다 찬란하고 빛나게 될 나의 앞날을 응원하며, 다시 한 번 씩씩하게 인생이라는 숲길을 거닐어 본다. 그래, 이 세상은 한 번 살아봄직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