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환절기 : 35년 만에 받아든 수학 문제의 답지

상처 입은 치유자, 4번 유형의 생존 기록

by 지인

인생의 환절기 : 35년 만에 받아든 수학 문제의 답지



1. 10살 소녀가 품은 위험한 질문, "나는 왜 사람인가?"
나는 누구인가. 왜 바위나 꽃, 구름 같은 미물이 아니라 하필 ‘사람’으로 태어났을까. 사람으로 왔다면 마땅히 해야 할 소명이 있을 텐데, 내게 주어진 숙제는 무엇일까. 10살 때부터 품어온 이 질문은 35년 동안 풀리지 않는 지독한 수학 문제였다.
​세상이 바쁠 때는 잠시 밀어두기도 했지만, 질문은 늘 스멀스멀 올라와 나를 다그쳤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었다. 내 주변엔 같은 문제를 푸는 친구가 없었고, 어른들은 먹고사느라 바빴다. 나는 결국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냉가슴만 앓으며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아이로 자라났다.


​2. 에니어그램 4번, 우울은 나의 숙명이었다
최근 한 강의를 통해 처음으로 이 질문을 입 밖으로 꺼내 보았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요? 내 소명은 무엇일까요?" 돌아온 답은 명쾌하면서도 서늘했다.
"지인 씨는 에니어그램 4번 유형이라 그래요. 원래 자아에 대한 궁금증이 많고, 깊은 우울을 태생적으로 품고 태어나는 예술가형 사람들이죠."
​아, 나는 그렇게 태어난 아이였다. 우울과 자살 충동이 마치 문제지와 해설지처럼 짝을 이뤄 나를 따라다녔던 이유가 거기 있었다. 그동안 나는 우울을 부정적인 감정이라 여기며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럴수록 거미줄은 더 칭칭 나를 감아왔고, 그 끝엔 늘 '자살'이라는 유일한 탈출구만 보였다.


3. 사랑이라는 결핍이 낳은 그림자
이제야 알았다. 우울은 나의 본성이었지만, 그 우울이 유독 시커멓게 나를 삼켰던 건 어린 시절 사랑과 공감, 인정이라는 긍정적인 자원을 충분히 먹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만약 그때 내 편이 되어주는 지지자가 있었다면, 나는 이 깊은 우울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법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2018년 처음 에니어그램을 만났을 때는 점집에 온 듯 "맞아, 맞아"를 연발했다면, 지금의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수긍한다. "그렇구나, 나는 이런 결을 가진 사람이구나." 이제 시작이다. 나의 우울과 조율하고, 부정적인 생각의 패턴을 긍정의 리듬으로 바꾸어보는 자아 찾기의 여정 말이다.


​4. 일상의 루틴으로 살아내는 법
여전히 삶은 녹록지 않다. 어제는 남편의 불평과 짜증에 다시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지만, 이제는 그 생각의 흐름이 객관적으로 보인다. 오늘 아침, 설거지를 하며 밥을 푸고 빨래를 널면서 나는 꺼이꺼이 눈물 보따리를 터뜨렸다. 끅끅 소리를 내며 한참을 울고 난 뒤, 세수를 하고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속삭였다.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
​나는 다시 우울의 흐름에서 걸어 나와 일상의 루틴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나의 생활 전선이며, 내가 사람으로 태어나 마땅히 해내고 있는 일이다.
​살다가 힘들거든 냅다 발버둥을 쳐보라. 그러면 아주 가끔 맑은 하늘이 보인다. 인생은 그렇게 견디며 흘러가는 것이다. 나는 이제 내게 묻는다. 나의 소명은 무엇인가? 어쩌면 그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이토록 깊은 우울의 강을 건너오며 얻은 깨달음을 글로 적어, 또 다른 4번 유형의 아이들에게 위로의 씨앗을 뿌리는 것. 그것이 내가 사람으로 태어난 이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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