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즈음, 낯선 손을 잡고 인생의 2막으로

나의 인생 2막이 시작되었다

by 지인


서른 즈음, 낯선 손을 잡고 인생의 2막으로


​2009년 12월의 어느 날, 아침부터 분주하게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설레면서도 두려운 소개팅 날. 약속 장소에 도착해 한참을 기다리니 검은색 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고 내린 남자는 차체 높이와 키가 비슷했다. "다른 건 다 좋은데 키가 좀 작다"던 주선자의 말이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어색한 인사가 흐르고 정적을 태운 차는 충북 음성의 허브마을로 향했다. 꽃향기 가득한 정원에서 함께 초를 만들고 레스토랑에 마주 앉았다. 초면의 서먹함에 조심스레 칼질을 하던 우리 사이에 주인아저씨가 불쑥 끼어들었다.
​"남자분이 고기도 좀 썰어서 먹여주고 그래야지, 인연은 만드는 거예요!"
​아저씨의 장난 섞인 참견에 남자는 엉거주춤 일어나 고기를 내밀었고, 나는 수줍게 입을 벌려 고기를 받았다. 그 유쾌한 소동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함께 웃을 수 있었다. 첫인상도 대화도 참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서른을 코앞에 둔 스물아홉의 나에게 '만남'은 곧 '결혼'이라는 중압감으로 다가왔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지나가는 20대를 아쉬워하던 우울하고 센치한 날들. 결혼은 마치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구속처럼 느껴져 숨이 막혔다.


연락이 끊길 뻔한 휴대폰 분실 사건을 겪으며, 남편은 특유의 넉살로 나의 '연락처 전갈'을 '사귀자는 승낙'으로 해석해 버렸다. 그렇게 빗장을 풀고 나니 비로소 재미있는 연애가 시작되었다.


​2월, 외할아버지 생신날 남자가 우리 집에 인사를 왔다.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절을 올리고 난 뒤, 나는 갑자기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렸다. 할머니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그냥, 이제 내가 이 집을 정말 떠나는 것 같아서..."
​서운하고 서러운 마음. 익숙한 안식처를 떠나 낯선 세계로 편입된다는 두려움이 눈물이 되어 쏟아졌다. 가족들은 웃으며 나를 달랬고, 이모부들의 매서운 술잔 공세를 견뎌낸 남자는 아빠의 등 떠밀림에 겨우 택시를 타고 돌아갔다. 남자를 보내고 멍하니 동네를 산책하며 나는 비로소 이별과 시작을 동시에 실감했다.


​이어진 시댁 식구들과의 첫 만남. 시어머니 생신과 설날이 겹친 날, 심장이 터질 듯한 긴장을 안고 대문을 들어섰다. 13명의 대가족이 우르르 몰려드는 풍경에 정신이 아득했지만, 맛난 음식을 끊임없이 내 앞에 놓아주시던 어머님의 손길은 따뜻했다.
​긴장 속에 치른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고, 식장산 야경을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숨을 내쉬었다. '내 마음의 결정이 끝난 걸까.' 허공을 향해 조용히 물었다.


​그렇게 나의 인생 2막이 시작되었다. 낯선 남자와 그의 식구들, 그리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세상 속으로 나는 그렇게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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