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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면 한 박스

by 달지

1. 택시 영수증

싱가포르의 밤은 늘 그랬듯 후덥지근했다. 형광등 불빛이 새어나오는 오피스 빌딩에서 나와 택시에 몸을 맡겼을 때, 나는 그저 하루 일과가 끝났다는 안도감만 느끼고 있었다. 학부 졸업 후 첫 직장은 서쪽 끝 '투아스'에 위치한 화학회사였다.


"동쪽 끝까지 가주세요."


택시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터기를 눌렀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네온사인들과 야자수 실루엣이 몽환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피곤에 절어 고개를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던 나에게, 회사 동료 E의 목소리가 문득 떠올랐다.


"야, 너 알아? 싱가포르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가 거의 42킬로미터야. 풀마라톤 거리라고."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아, 그렇구나" 하며 흘려들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해 택시비 영수증을 보는 순간, E의 말이 현실로 다가왔다. 42킬로미터. 마치 누군가 나에게 장난을 치려고 미리 설계해놓은 것 같은 완벽한 숫자였다.


그날 밤, 나는 무의식중에 풀마라톤을 완주한 셈이었다. 다만 달리는 대신 택시 뒷좌석에 앉아서.


2. 글쓰기 모임

10년이 흐른 후, 나는 미국에 살고 있었다. 달리기 모임에서 만난 친구 D가 글쓰기 모임에 나를 초대했을 때, 처음에는 기대되고 의욕이 앞섰지만, 막상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했다. 빈 페이지 앞에서 커서만 깜빡이고 있을 때, 동생의 조언이 실마리가 되었다.


"미국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싱가포르부터,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서 언제부터 달리기에 관심이 생겼는지 써보면 어때?"


그제서야 나는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달리기와 나의 첫 만남은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기였다.


3. 첫 번째 결승선

초등학교 1학년 겨울이었다. 12월 중순, 겨울방학을 앞둔 시점에 학교에서 가족 달리기 대회 공지가 나왔다. 문제는 우리 부모님이 운동과는 거리가 먼 분들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옆집 아저씨, 아줌마께 부탁드려 함께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날의 추위는 지금도 생생하다. 뺨을 스치는 칼바람, 하얀 김이 되어 피어오르는 숨, 그리고 점점 빨갛게 달아오르는 얼굴. 하지만 나는 끝까지 달렸다. 옆집 어른들과 함께, 내 작은 다리로 최선을 다해.


결승선을 통과하고 받은 상품은 신라면 한박스 였다. 엄마는 그날을 이렇게 기억한다.


"네가 볼이 빨갛게 돼서 라면 박스 들고 집에 오는 모습이 참 대견했어."


그날,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나는 비록 체력이 약하게 태어났지만, 나에게는 끝까지 버텨내는 이상한 끈기 같은 게 있다는 것을. 그것이 훗날 싱가포르에서의 생활, 그리고 내 인생의 수많은 거리들을 건너게 해줄 원동력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지만.


어쩌면 인생은 마라톤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직접 달리고, 때로는 택시를 타고, 때로는 걸어서. 중요한 건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 다만, 결승점만 보고 달리지 말고 내가 달리는 여정을 마음껏 느끼고 즐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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