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사랑

『맡겨진 소녀』클레어 키건

by 만민언니

찬바람 불어와 옷깃을 여미게 되는 11월, 이번 달은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줄 완벽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맡겨진 소녀』를 소개해보려 합니다.

클레어 키건의『맡겨진 소녀』는 1981년 아일랜드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친척집에 맡겨진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타임스》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소설 50권'중 하나로 "당신이 올해 읽을 그 어떤 두꺼운 책만큼이나 큰 감동을 줄 것"이라는 추천을 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100쪽이 채 되지 않는 짧은 분량이지만 인물들의 감정과 행동이 섬세하게 그려져 긴 여운이 남는데요. 마지막 구절을 읽고 난 후,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다섯째 출산을 앞둔 엄마는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집안일과 농장일에 지쳐, 아이들을 돌볼 여력마저 없어 보입니다. 소녀의 아빠는 가족에게 조차 따뜻함을 건넬 줄 모르는 무심한 사람에다 무지하며 경제력도 없습니다. 이런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듯 자라던 소녀는 방학 동안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만 아이가 없는 먼 친척인 킨셀라 부부의 집에 맡겨집니다. 아직 낯설기만 한 소녀를 뒤로한 채 아빠는 제대로 된 인사도, 언제 데리러 오겠다는 말 한마디 없이 서둘러 떠나버립니다. 소녀의 짐 가방조차 내려주지 않은 채로 말입니다

아주머니의 손은 엄마 손 같은데 거기엔 또 다른 것,

내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것도 있다.

나는 정말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지만 여기는 새로운 곳이라서 새로운 말이 필요하다.


소녀는 가족들과 살던 집과는 달리 정돈된 공간과 따뜻한 손길이 깃든 식탁 위에서 처음으로 '돌봄'이라는 온기를 느낍니다. 실수도 모른 척 덮어주는 상냥한 아주머니, 조금 무뚝뚝하지만 다정한 아저씨의 사랑을 받으며 어둡고 말 없던 소녀는 점차 단정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

아저씨에게 천천히 책을 읽는 법을 배우고, 농장일도 도우며 함께 달리기를 즐기기도 합니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사랑과 새로운 곳에서의 삶의 차이를 느끼며 소녀는 조금씩 성장해 나갑니다. 그리고 그 곁에서 소녀를 돌보던 킨셀라 부부 또한 오래된 상실의 아픔을 소녀를 통해 서서히 치유받습니다. 이들의 침묵 속 사랑은 말보다 깊은 온기로 서로의 마음을 감싸안아 주는 듯했습니다.

소녀의 부모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자녀를 돌볼 시간과 여유, 체력이 부족했을 뿐이겠지요. 가족에게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소녀가 낯선 이들에게 받은 애정은 어쩌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맡겨진 소녀』를 통해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작은 돌봄과 관심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질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말없이 건네는 작은 배려와 손길 하나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것, 사랑과 돌봄은 서로를 치유하는 힘이 있다는 것도요. 말보다 조용히 건네는 온기 속에 우리가 잊고 있던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떠올려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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