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름, 완주』김금희
여름이 언제 왔나 싶은 마음이 들더니 어느새 7월입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서점 구경을 하던 중, '어? 서점에서 DVD를 파네?' 하며 전면 책장에 진열된 상품을 집어 들었습니다. 이리저리 돌려봐도 DVD 같기만 한 독특한 커버를 가진 상품의 정체는 김금희 작가의 장편소설『첫 여름, 완주』였습니다.
『첫 여름, 완주』는 표지 말고도 조금 특이한 점이 있는데요. 보통 책이 출간된 후 종이책을 읽어주는 오디오북이 나오는 순서와 다르게 '듣는 소설'이란 타이틀로 오디오북을 먼저 제작할 것을 계획하고 그에 맞게 글을 쓴 소설이란 점입니다. 소외되고 이름 없는 것에 빛을 주고 싶다는 출판사 '무제'는 배우이면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정민의 1인 출판사로 애초에 듣는 소설을 만들 것이라면 그냥 읽어주기만 하는 기존의 오디오북과 차별을 두고 싶었다고 합니다. 배우답게 주변의 연기자들이 목소리로 연기를 하는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 같은 시나리오처럼 반 희곡 형식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평소에 좋아하던 김금희 작가에게 요청을 해서 작가는 출판 취지와 형태에 맞춰 원고를 쓰게 된 것이죠.
주인공 손열매는 어린 시절 글을 읽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위해 비디오 자막을 읽어 주었고 그 일을 계기로 성우가 되었습니다. 이상하게 매번 흔들리는 삶, 오랫동안 룸메이트로 지냈던 고수미가 돈을 떼먹고 잠적해 버리자 열매는 빚과 상실감에 우울증을 앓고 목소리까지 나오지 않게 됩니다. 월세도 밀려 갈 곳이 없어진 열매는 문득 수미가 고향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무작정 수미의 고향인 완평군 완주 마을로 향합니다. 그러나 완주에도 수미는 없었고 가족들이 빚을 갚아줄지 모른다는 희망도 여름 바닷가 모래알처럼 무너지고 직장도 잃고 오 갈 곳이 없던 열매는 장의사 겸 매점을 운영하는 수미 엄마의 집에서 지내기로 합니다.
열매는 이곳에서 자랐을 수미에 대해 생각했다. 끊임없이 의식을 끊고 들어오는 죽음이라는 세계의 간섭을 어린 수미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를, 혹시 그게 집으로부터 수미를 멀어지게 한 것은 아닐지를.
열매는 시골 마을 토박이 사람들과 귀향한 여배우, 옆집 엉뚱한 청소년과 그의 친구들, 정체 모를 어저귀라는 청년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지내게 됩니다. 마을이 가지고 있는 슬픔과 재개발을 둘러싼 사건들을 만나면서 낯설지만 그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며 여름 한 계절을 보내게 되는데요.
소속감은 가족만 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어느 한 사람과만 나눠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열매씨 마음속 상처는 그 맥락에서 풀어야 해요. 감정은 관계의 잔존물이니까요.
열매 주변의 마을 사람들은 가족처럼 시간을 함께 나누며 같이 있다는 존재 그 자체로 위로를 주었고 서로에게 말없이 힘이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열매의 꿈속에 등장하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구수한 사투리가 섞인 응원과 어저귀 청년의 SF가 가미된 이야기는 읽는 재미를 더하고 엉뚱한 청소년 양미 아빠의 일터가 거제라서 왠지 모를 반가움도 듭니다.
확실한 결말을 내놓지는 않지만 작은 마을 안에서 동네 사람들은 낙담과 상처에도 서로를 보듬어 주고 그런 관계 속에서 자신을 다시 찾아 스스로 치유받고 각자의 방식으로 '완주'를 이루는 『첫 여름, 완주』. '완주'는 장소 배경의 '완주'이기도 하지만 목표한 지점까지 다 달리는 '완주'의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손열매의 이름 역시 여름을 지내고 여물어가는 크고 작은 열매의 의미도 있을 것이고요. 김금희 작가의 말처럼 삶의 속도와 방향이 다르더라도, 때로는 부족한 완주라 하더라도 자기만의 완주를 해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 뜨거운 여름이 지난 뒤 자신만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소중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 보아야 하겠습니다.
(원고 작성 당시 1인 출판사였는데 벌써 직원이 생겼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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