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왕>을 통해 보는, 살아가는 청년 세대.
이번에 논해볼 영화는 바로
<장기왕 : 가락시장 레볼루션>입니다.
본 리뷰에는 스토리에 대한 전반적인 네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시기에 불편함은 없으실테나, 혹시 불편하신 분은 페이지를 뒤로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 형아쌤의 반짝 평점
참신성 : ★★★★☆
(소소하고 평이한 소재에서 얻을 수 있는 참신함이 있는 법이죠.
전개가 클리셰 범벅이었지만 장기라는 흔치 않은 소재 때문에 클리셰 자체가 반갑게 느껴지는 신기함!)
몰입도 : ★★★★☆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어쩌면 욕심일 수도 있으나, 현 청년세대의 실제 라는 큰 주제로 통일됩니다.
그래서 공감이 되고, 몰입 역시 됩니다.)
메시지 : ★★★★☆
(몰입도에서 쓴 말 그대로가 메시지네요.)
심리 : ★★☆☆☆
(메시지 중심의 영화입니다.
코믹하고 가벼운 분위기로 그렸기 때문에 세세한 심리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전체 : ★★★★☆
(형아쌤이 사랑하는 특유의 B급 정서를 관통하는 작품!
하지만 내포한 메시지는 B급이 아닌 청년 전체를 담고 있는 작품!)
대략의 줄거리를 살펴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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떳떳한 직장보다 실속 있고 따뜻한 주머니를 원한 두수는 비밀리에 가락시장에서 일을 한다.
하루하루 허리가 휘는 고된 노동과 노예계약서를 앞세운 사장님의 전횡에도 꿋꿋한 두수에게는 숨겨진 재능이 있었으니 나름 장기판의 숨은 고수였던 것!
가락시장의 장기판을 휩쓸며 실력 하나로 통쾌하게 악인을 응징하기도 하며 내기 장기에 빠진 사장님을 장인어른으로 만들기도 하는 등 대활약을 펼친다.
어느 날, 진정한 고수들의 진검승부가 펼쳐지는 장기판의 무림, 탑골공원에 대한 소문을 듣고
두수는 탑골공원 앞을 어슬렁 거리다 우연히 고등학교 때 짝사랑했던 민주를 만나게 된다.
체 게바라를 좋아했던 민주는 노숙인들의 보금자리인 다시서기센터 철거반대 서명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
민주와 함께 노숙인들을 도우면서 두수는 오랜만에 보람과 즐거움, 삶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다시서기센터를 철거하려는 건물주 박영감이 내기장기의 제왕임을 알게 된 두수는 센터를 지켜내기 위해 일생일대의 장기 대결에 도전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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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영화 소개에 적혀 있습니다.
사회의 약자를 그리고 있으나, 이미 그 약자가 평균치 이상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소소하나 진솔하고 맑은 감성을 얘기하는 작품 장기왕!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장기왕은 캐릭터 하나하나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편은 특히 캐릭터별로 한 스푼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순서
낙훈 – 2. 두희 – 3. 민주 – 4. 두수
1. 낙훈 한 스푼
낙훈은 연기자를 꿈꾸는 연기 지망생입니다. 29살까지 마냥 연기 지망생으로써만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실상은 중국집 배달 알바를 하고 있지요. 영화 상에서 낙훈은 당당합니다. 자신의 꿈을 위해 투자하고 있는 시간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런 낙훈을 마냥 생각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치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낙훈의 겉모습만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낙훈이 겪고 있는 세상 역시 평탄하지 않습니다.
마침내 연기력을 인정받아 캐스팅이 된 작품도 아이돌 출신 배우에게 배역을 밀리게 되죠. 마냥 진심 어린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세상. 이것이 낙훈이 보고 있는 세상일 것입니다.
“열정을 갖고 자신의 꿈을 꾸준히 노력한다면 못 할 일은 없다!”
라는 말이 희망으로 들리지 않는 것은, 그 열정으로, 꿈을 믿고, 꾸준히 노력했던 시간 속에서 나는 어느 덧 29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겠죠.
낙훈은 이렇게 말하고 싶겠죠. “도대체 언제 이뤄지는데?” 라고요.
2. 두희 한 스푼
두희는 두수의 누나입니다. 어느 기업에 들어가서 일을 하고 있지요. 야근은 일상이고, 야근이 없는 날은 항상 회식의 연속입니다. 게다가 부서 내에 홍일점인 두희는 항상 과장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과장에게 부당함을 말한다는 것은 곧 회사에서 잘린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가족에게도 얘기할 수 없습니다. 가족에게 얘기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고, 도리어 걱정만 하실테니까요. 게다가 그런 회사 당장에 그만 두라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도, 실제 그만 두는 것은 많은 리스크를 지니니까요.
이러한 이유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게 두희입니다. 두희가 나타내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남성 중심 조직 문화 속에서 보호 받지 못 하는 젊은 여성 모두일 것입니다.
두희가 바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정상적 업무 시간이 지켜지고, 그로 인해 여가 시간이 늘어나길 바라는 것. 성추행을 당하는 부당한 상황에서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나라는 사람이 수단이 아니라 두희 그 자체로써 있을 수 있는 것. 그 정도죠. 대단한 게 아닙니다.
두희가 낙훈에게 호감이 가게 되는 이유 역시 이에 빗대어 생각할 수 있죠. 두희를 존중해주고 지켜줄 수 있는 아주 사소한 배려와 관심. 그것이 두희와 낙훈을 이어주는 열쇠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성추행 사실을 사내 고발한 두희에게 돌아온 것은 문제의 시정이 아닌, 퇴사 압박과 외부 발설 시의 협박입니다. 두희는 어쩌면 그렇게 해서 받게 된 퇴직금이 몹시 더럽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습니다. 1,000만원이라는 거금을 두수의 장기 대결에 쾌척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돈이 모두를 위한 좋은 일에 쓰이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겠지요.
여전히 사회는 여성들에게, 또는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직장 초입자들에게 “그것 하나를 못 견뎌? 나때는 더한 것도 참아냈어!” 라고 얘기합니다. 두희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참아내는 게 미덕이 아니라, 못 견딜만한 일을 하지 못 하도록 바로잡아가는 것이 미덕입니다.” 라고요.
3. 민주 한 스푼
민주는 엘리트입니다. 캐나다에서 정치학 전공을 했고, 취직해서 일까지 하고 있었던 민주는 휴가 기간 우연히 공연을 하나 보게 됩니다. 그것은 노숙자들이 연습을 하여 연기를 선보이는 공연이었고, 그것을 보고 민주는 ‘아, 이것이 내가 갈 길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민주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는 ‘가치관’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합니다. 자신의 신념이 이끄는 방향을 망설임 없이 지속할 수 있는 당당함과 뚜렷함이 있죠. 그러나 이러한 가치관을 지니고 나아가기엔 그 방해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자연스럽지만 씁쓸한 민주의 대사가 그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네요.
“여긴 한국이잖아요.”
사회는, 이해관계는, 자본은 민주가 지향하는 가치관을 자꾸만 위협합니다. 노숙자들을 만나 봉사를 하겠다는 순수한 의지는 센터 건물을 빼앗기고, 용역이 들이닥치는 등의 수모를 겪으며 난항을 겪지요. 그래서 민주의 옆에서 사리사욕 없이 진실되게 도움을 주는 낙훈과 두수가 힘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민주가 원한 건 잘난 사람, 돈 많이 버는 사람 등이 아니니까요. 그저 좋은 사람끼리 좋은 일 하는 것이니까요.
어쩌면 민주가 진정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여긴 한국이잖아요.” 라는 말이 아니었을 지도 모릅니다. “아직의 한국은 이렇잖아요.” 라고 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적어도 현재의 부조리, 부패를 보고 분노하진 않는 그야말로 ‘강직한’ 인물이니까요.
4. 두수 한 스푼
두수의 처음 모습에 두수는 없습니다. 살면서 가지게 된 여러 역할들이 모이고 모여 두수를 이루고 있을 뿐 그 안에 두수는 살아 숨 쉬지 않지요.
두수는 아들입니다. 집에서는 아들의 모습으로 있기에 엄마의 취미 활동을 응원해주고, 소소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버젓한 직장인으로써 엄마에게 안심을 주죠. 이를 위해서 두수는 가락시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숨깁니다.’ 아들로써 버젓한 직장 하나 가지지 못 했다는 것이 엄마에게 가져다줄 속상함을 알기 때문이죠.
두수는 노예 계약을 한 노동자입니다. 인신 공격, 인권 비하, 기초 생활권 불이행 상태의 부당한 직장이지만 자신의 스펙으로 가능한 가장 높은 연봉만을 바라보며 근면하게 일을 하죠. 조금이라도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서 하루 2,000원 받는 식대 역시 쓰지 않고 모아둡니다. 이를 위해서 노동을 하면서도 끼니를 포기하고, 정상적인 바이오리듬을 포기하고, 취미 생활을 포기하고, 여가 생활도 포기합니다.
29살의 인생은 그저 돈 벌고, 돈 모으고, 주변 사람들 안심시키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사치고 철 없는 일이죠.
그러나 이런 두수가 정해진 틀을 깼던 경우가 있습니다. 민주에게 첫 눈에 반해서 다짜고짜 민주를 쫓아갔던 때가 첫 번째고요, 두 번째는 장기라는 재능을 통해 부조리한 사회에 자신이 무언가 힘을 보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가 두 번째입니다.
진정 하고 싶은 일이 생긴 두수는, 망설임 없이 사표를 쓸 수 있게 됩니다.
두수에게 민주는 죽어있던 두수를 숨 쉬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장기는 숨 쉬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죠. 이것이 진정한 두수 자신이 나타나도록 만듭니다. 나 자신을 믿고 사랑할 수 있게 되지요. 두수의 인생은 그 어떤 때보다 빛나 보입니다.
5. 미안하다 한 스푼
장기왕은 인물 하나 하나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혼자일 때는 하나같이 약자입니다. 그러나 그 약자들이 서로 지지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더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강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해진다는 건 잘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방향으로, 성장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일까요. 장씨 아저씨는 두수에게, 두수는 재수를 한 재수생에게 말합니다. 미안하다고.
어른이라서, 그런데 너희한테도 이런 세상을 물려줘서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장기왕에서는 현재 자신이 놓여진 상황을 한탄하고 분노하지 않습니다.
그저 열심히 살아갑니다. 물론 완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름 행복합니다.
우리네 살아가는 이야기를 심각하지 않게, 그러나 진솔하고 극진하게 그린 작품.
살아가는 위로를 받고 싶다면 오늘 장기왕 한 편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