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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장영실일세

소설 감성 #008



 비가 오는 날이었다. 올해 23세가 되는 지훈씨가 늦잠을 잔 후 깨어나 처음 꺼낸 말에 모두가 당황했다. “내 이름은 장영실일세. 아, 측우기 얘기는 하지 말아주게.”


 물론 처음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아직도 철이 덜 든 아들의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훈씨가 조선 시대에나 쓸 법한 어휘를 구사하고 장영실에 대한 이야기를 막힘없이 대답하는 걸 보며 심각해졌다. 장난의 도가 지나쳤기 때문이다.


 자신을 장영실이라 주장하는 지훈(이하 지훈영실)씨는 지훈씨로 살았던 기억은 아무 것도 떠올리지 못 했다. 현대인에게 너무 편한 사회에서 무척 불편해했다. 적응하지 못 한 채 자신에게 일어난 비극에 실감했다 부정했다를 반복할 뿐이었다.


 신경정신과에서 해리성 정체감 장애라고 진단했다. 인격이 장영실이 된 후 본 인격이 한 번도 출연하지 않는 점, 장영실이 살던 시대에 대한 고증이 무척 정교하고 망설임 없다는 점, 장애가 일어날만한 특별한 계기를 찾을 수 없다는 점 등을 들어 학계에 발표를 문의했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하지 못 했다.


 어머니는 착하고 성실하던 아들이 부디 원래대로 돌아오길 바라며 새벽 기도를 나설 뿐이었다.


 한 집안의 비극적 사건으로 끝날 것 같던 일이 한국을 넘어 세계를 들썩이게 된 건 그 다음이었다. TV를 보던 지훈의 어머니는 미스테리한 사건을 다루는 TV 프로그램에서 ‘자신을 장영실이라고 주장하는 남자’에 대한 내용이 방영됨을 알아차렸다. 그 방송 내용은 완벽하게 지훈씨의 증상 그대로를 방영했다. 다른 게 있다면 TV에 나오는 남자가 지훈씨가 아니라는 거였다.


 올해 32세의 직장인이던 현철씨는 7개월 된 첫째 아이를 품고서 아침을 준비하던 아내에게 “내 이름은 장영실일세. 아, 측우기 얘기는 하지 말아주게.” 라고 했다. 똑같이 해리성 정체감 장애 진단을 받았지만, 아내는 남편을 학계 차원에서 다루는 데 동의했다.


 형언할 수 없는 혼란함으로 방송을 보던 어머니에게 전화가 온 건 그 때였다. 지훈씨의 담당 주치의였다. 어머니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며칠 후 방송사에서 찾아왔다. 지훈영실씨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했던 답변을 그대로 하였다. 검증을 위한 면담 시간이 길어진다고 느낄 즈음 PD가 문을 열었다. 그는 특종에 대한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PD는 지훈영실씨와 현철영실씨의 대면을 추진했다. 서로를 만난 그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비극을 위로해주듯 만나자마자 하염없이 울었다. 개별 면담에서도, 대면 인터뷰에서도 그들은 완벽하게 장영실이었다.


 전례 없는 사건에 정신의학계 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뜨거웠으며 역사의 공백을 채울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앞에 독대를 제의하는 학자들까지 문전성시를 이뤘다. 철학자 사이에서 껍데기와 영혼이 다른 이를 어떻게 규명하면 좋을지는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이들은 지훈씨일까? 현철씨일까? 아니면 정말 장영실일까? 분명한 건 지훈영실씨와 현철영실씨는 자신이 장영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다행히 이들은 당시대에 천재라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전 세계적 논란이 보름을 넘기며 이들의 당황스러움도 질서를 찾았다. 그들은 생각했고, 고민했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궁리했다.


 활로는 생각지도 못 한 곳에서 열렸다.


 은지씨는 올해 36세의 여성으로 직업은 방송국 PD였다. 미스테리한 사건을 다루는 TV 프로그램의 메인 연출자였으며 최근 ‘자신을 장영실이라고 주장하는 남자’에 대한 내용을 방영하며 출세 가도에 올랐다. 그녀가 편집실에서 과로 끝에 쪽잠을 잔 후 깨어나 처음 한 생각은 ‘내 이름은 장영실이야.’ 였다. 지훈영실씨와 현철영실씨가 눈을 떴을 때 옆에 누군가가 있었던 것과 달리 은지영실씨가 눈을 뜬 시각은 모두가 퇴근한 새벽이었다. 편집실엔 ‘자신을 장영실이라고 주장하는 남자 2편’이 무한 재생 중이었다. 그는 이제 자기 이야기가 되어버린 다큐멘터리를 유심히 보았다. 


 *


 유튜브와 트위터에서 시작한 외신의 보도는 충격적이었다. 이른바 ‘장영실병’이라 불리게 된 이 현상은 전염성을 지니고 있었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한국 정부와 군대는 숙주를 사살하기 위한 대대적인 작전을 시작했으나 이미 전국의 장영실들이 몸을 숨긴 후였다.

 어제까진 직원이었다가 잠에서 깬 후 스파이가 된 신규 영실들은 영혼을 공유하는 또 다른 자신을 위한 방해공작을 펼쳤고 영실의 수는 날마다 늘어나 정확한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세계 각종 기구들은 다양한 논의 끝에 정체모를 전염병의 창궐지인 한반도를 지도에서 지우자는 결론을 내렸다. 공포 앞에서 인권은 소설 같은 이야기였다. 비밀리에 핵 버튼을 누르는 책임자의 손이 떨렸다.


 같은 시각 영국의 조용한 시골 동네 올해 영국 나이로 28세가 되는 Steve씨는 늦잠을 잔 후 깨어나 가족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 이름은 아이작 뉴턴일세. 아, 사과 얘기는 꺼내지 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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