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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강의를 취소해야 할 것 같아요.

코로나19는 프리랜서의 숨통을 이렇게 옥죄어 오는구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메일함을 켰다. 


 "선생님.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이번 교육을 취소하기로 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하아... 이러다가 정말 굶어죽겠네.

 무거운 한숨을 쉬며 답장을 보낸다.


 "네, 상황이 상황인만큼 아쉽지만 별 수 없네요. 다음에 꼭 좋은 교육으로 뵐 수 있으면 합니다. :)"


 이모티콘은 웃고 있지만 전송 버튼을 누르는 내 표정은 울상이다.




 교육 담당자 연락만 오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이것도 취소되나?' 하는 걱정부터 든다. 최근 코로나19 때문에 외부 강의 및 집합 교육을 지양하는 분위기다. 이런 공기 속에 누가 웃겠냐마는 고정 수입 없이 집단 상담과 교육만으로 생활 유지 중인 프리랜서 입장에선 죽을 맛이다.


 나는 심리 상담 전문가이다. 정확하게는 심리극(사이코드라마) 전문가이고 심리극이 집단으로 모여 상담을 하는 프로그램인만큼 사람이 많은 곳으로 출강을 나가는 게 주된 수입원이다. 사람의 미묘한 말투, 제스처, 짧은 대화만으로도 상대의 심리 상태를 그럴 듯하게 파악하는 기민함,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 가능한 전달력, 순간순간 남들이 생각하지 못 했던 기발함을 만들어내는 창의성, 당장 반응이 없더라도 꾸준하게 노력을 쌓는 꾸준함 등을 무기로 심리극 전문가로 살아가고 있다.

 꽤 축복받은 삶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추후 '인문'과 '관계'는 의심할 여지 없이 각광받을 것이기에 잠재력 있고, 그 분야를 훌륭히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능력을 구현할 매개를 만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이 일을 하며 즐겁기 때문이다. 잘 하는 일을 재미있게 하며 돈도 벌 수 있다니 드문만큼 큰 축복이다.


 밑천도 없고 빽도 없는 저소득층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교육 사업을 하겠다고 덤벼든 것도 시대의 흐름과 수요, 나의 능력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지금의 내가 말해주고 있다. 출범 3년차 반디심리연구소는 생면부지 서울/경기에서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번창하고 있으니까. (내 번창의 기준이 수입이었다면 말이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냥 유지 가능한 정도로 근근하게 버틴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공포 여론이 조성 되면서 확정되었던 교육 일정을 취소한다는 연락이 잇따랐다. 그러나 비축해둔 생활 자금도 있고, 프리랜서 사이에 부적처럼 떠도는 '꾸준히만 한다면 지금 일정이 없어도 나중에 몰아서 바빠진다.' 를 되새기며 마음 관리를 했다.

 '나는 아무 문제 없는데.' 라며 인간적인 불만이 고개를 들 때도 있지만 모두가 이렇게 안일한 생각을 할 때 일어날 참사를 떠올리면 '모두가 나눌 고통이지' 하며 납득하였다. 다행히 정부와 질병관리본부는 신속하고 투명하게 정보 제공을 했고, 조치 또한 적절했다. 몇 일간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고, 확진자 역시 퇴원하는 분위기 속에 공포는 줄고 소강기에 접어들었다. 다행스럽고 감사했다. 지갑을 쥐어짤 일은 없겠구나 하는 안심을 한 것도 사실이다.

 3월부터의 일정이 하나둘씩 잡혔다. 2020년도 잘 해보자! 


 그러나 사태가 신천지를 필두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며 희망이 와르르 무너졌다. 잡혔던 일정이 바로 취소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행하겠다던 교육마저 급격히 늘어나는 코로나19 확진자 수에 버틸 수 없던 모양이다. 결국 3월 일정도 텅텅 비는 중이다. 코로나19가 프리랜서의 숨통을 이렇게 옥죄어 오는구나.




 상황을 보며 새롭게 알게 되는 게 있다. 프리랜서에게 치명적인 독은 정도보단 시간이라는 거. 아무리 큰일이 일어나도 1,2달 주춤하고 끝날 일이라면 문제 없다. 보복형 소비라고 했던가. 그간 못 했던 것을 모아서 하기에 오히려 더 바쁘고 알찬 날을 보낼 수 있다. 자기 발전과 컨텐츠 제작을 위한 방학이라고 위안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잔잔히 장기화 사태로 바뀐다면? 이건 타격이 크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기 때문이다. 봄이 되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소강 상태를 맞이할 거라는 희망적 관측에 그래도 안도하고 있으나 마음 한 켠은 여전히 불안하다.


 필자는 4차 산업 시대에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 인간 관계라고 생각했다. 힘들고 귀찮은 일을 대신 해줄 로봇과 AI가 발달하고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아질 때 인간은 변화를 맞이한다. 눈 앞의 과제만 해결하려 바둥대다가 생을 마감하는 삶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우울해진다. '내가 누군지.', '나는 뭘 하고 살아야 하는 지'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대부분이 심리, 인문, 공감 에세이가 되고 힐링 등의 키워드가 떠오르는 이유 또한 이런 시대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일이 가치 있고 잠재력이 크다고 믿었다.


 내 믿음은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 있다. 사람이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해야 한다. 나는 그 어떤 변수도 인간의 관계 욕구를 흔들지 못 할 거라 확신했는데, 코로나19 사태를 보며 흔들리고 있다. 사람이 바이러스가 되어 나를 해치는 존재가 된다면 우린 모이지 않을 것이다. 전쟁이 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 욕구는 가슴 한 켠에 있겠지만 관계 욕구보다 앞서는 게 생존 욕구다.

 코로나19는 생존과 건강의 위협을 전 세계에 경고하는 메시지이며 내 프리랜서 생명에도 어쩌면 실패가 있을 수 있다는 비보이다. 




 논리 전개 상 이후 얘기를 지구 환경 보호와 안전 의식 개선으로 나갈 수 있으나, 이건 교육 내용으로 남겨두고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돌파구를 정리하려고 한다. 어차피 이 글은 넋두리니까.


 반디심리연구소의 초기 계획은 이러했다. 2Track 이었다.


 [1 Track]

 1. 우선 서울/경기권에 심리극, 역할극 상담을 통해 학교, 센터, 관공서 등 입지를 다진다.

 2. 프로그램 경력을 쌓으며 자연스레 마련된 실적 포트폴리오를 통해 기업 강의에 진출한다.

 3. 기업의 강의료로 기본 생활이 충당되면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는 단체 및 기관 등에 무료 상담을 진행한다.


 [2 Track]

 1. 일상 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심리학을 쉽게 그러나 깊게 다룰 수 있는 생활심리학을 소개한다. 이 과정은 네이버 블로그, 브런치, 유튜브 등을 통해 접근성을 높인다.

 2. 정기적인 출판으로 연결하여 생활 심리학을 강의할 수 있는 나만의 플랫폼을 만들고 무료 강좌를 만들어 SNS와 출판, 강의의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3. 내가 성공 케이스가 되어 대중들이 필요로 하는 심리학을 깊이가 얕은 이들이 아닌 수준 높고 진정성 있는 전문가들이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주로 집단으로 이루어지는 2가지 방향 이외에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소규모이고 개인적인 세번째 트랙이다. (이 과정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3 Track]

 1. 매 주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비구조화 개방형 무료 심리극 집단상담을 진행한다. 

 1-1) 집단은 단일 회기가 아닌 위클리 집단으로 계속 이어가며 대상은 심리 전문가보다 일반 대중의 비중이 많도록 한다. 
 1-2) 상담 전체 내용은 촬영하여 유튜브에 공개한다. 컨텐츠 목적보단 정보 전달 목적.
 1-3) 집단 규모는 10명 안팎으로 제한한다. 누군가가 종결하면 뒤이어 추가하는 밀어내기 방식

 2. 대중에게 심리극 집단상담이 알려지면(검색, 입소문 등) 유튜브 공개가 부담스러운 이들을 위한 집단상담을 추가 개설한다. 

 3. 1, 2의 집단에서 추가적인 상담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심리상담(마음공부/마음과외)을 진행하여 일상 생활에서도 심리극의 내용이 적용 가능하도록 돕는다. 이 과정에서 마음공부는 지불 혹은 심리상담을 빌려드립니다 형태 중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소규모이고 개인적인 방향이지만 외적으로 볼 때 한상심 2급 전문가일 뿐이기에 반디심리연구소만이 가진 메리트를 어필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추후 개인적인 부분이 더 커지는 상황이 올 때를 대비해서라도 지금부터 미리미리 쌓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다.




 2020년의 연간 계획을 코로나19가 만들어 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그러나 넘어진 김에 쉬면서 벌크업하는 게 내 주특기인만큼 천천히 나아가야지. 방황하며 달려가기보다 찬찬히 걸어가는 게 결과적으로 빠른 것임을 내 평생 증명하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작가의 이전글 심리상담(마음공부)을 빌려드립니다. (유튜브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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