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마세요 심리학과에 #003]
#003. 심리학 전문가가 되기 위해 밟아야 하는 과정 (3~4학년)
이전 글 세 줄 요약
1) 심리학과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하는 훈련으로 ‘기초 심리학’을 배운다.
2) 일반적으로 재밌고 흥미로운 분야는 ‘응용 심리학’ 계열이다. (‘기초 심리학’은 어렵고 생소하고 재미가 없다.)
3) 대중 서적에서 취급하는 심리학의 깊이로도 가십을 즐기기엔 충분하다.
앞선 글에서 저는 평균적으로 심리학과 1~2학년 때 배우는 과목이 어떤 것이 있는 지 그리고 이들을 왜 배워야 하는 지 설명했습니다. 가십 거리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심리학이지만 본격적으로 ‘전문가’가 되려면 얼마나 깊게 지반을 다져야 하는 지 말이죠. 이번 주제는 그렇게 기초 심리학을 2년 간 배운 후 접하게 되는 ‘응용 심리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대중적으로 취급되는 심리 관련 서적은 흔히 관계, 성공, 양육, 자기 위로, 자기 이해 등을 이야기합니다. 또는 자극적이고 신기한 심리 관련 현상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물론 ‘응용 심리학’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중 서적이 가지고 있는 얕고 재밌는 지식을 기대하고 수업에 임했다간 큰 코 다칩니다. 이것이 제가 심리학과의 공부를 ‘수업’이 아닌 ‘훈련’이라고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훈련’이 필요해요. 3~4학년에 배우는 ‘응용 심리학’은 실전이 아닌 심화 훈련 같은 의미입니다.
테크트리라는 용어를 아시나요? 숙련된 기술을 연마하기 위한 단계를 이야기하는 용어입니다. 게임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죠. 처음에 ‘전사’의 테크를 탔다면 이후에도 고도의 ‘전사’로써 발전된 테크트리를 탈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도 이런 테크트리가 있습니다. 전체적인 그림을 보도록 하죠.
물론 각 영역마다 교집합이 존재하기에 그림처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습니다만, 어쨌든 중요한 건 1~2학년 때 배웠던 내용을 다시 한 번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응용 심리학 분야를 모두 열거하면 이전 글과 같은 내용이 반복됩니다. 다 줄이고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는 범죄 심리학, 상담 심리학, 임상 심리학에 대한 이야기만 하도록 하죠.
저는 응용 심리학이 과목마다 특유의 질병에 걸리게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질병에 걸릴까요?
범죄 심리학
프로파일러를 꿈꾸며 범죄 심리학 전공을 하고 싶어하는 학생이 많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PD수첩 등을 애청하거나 추리 만화, 외국 범죄 드라마를 감명 깊게 본 학생에게서 많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해야 그런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는지 알고 싶다는 정의감과 호기심이 바탕이 됩니다.
그러나 심리학과 3학년이 되어 범죄 심리학을 배울 때가 되면 프로파일러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학생의 수가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그 이유는 바로 T/O 때문입니다. 즉, 일할 곳이 없습니다. 공무원 채용이나 회사 신규 채용 같이 해마다 일정 인원을 받는 식이 아닙니다. 필수 정원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가끔 경찰청에서 범죄분석요원 채용 공고가 나기만을 기다려야 해요.
한국사회및성격심리학회에서 주관하여 발행하는 범죄심리사 자격증이 있지만, 교육 뿐만 아니라 실무 연수도 나가야 합니다. 만약 이 과정을 거쳐 자격증을 취득했어도 경찰청에서 심리학과 출신에게 원하는 건 가해자 중심이 아니라 피해자 중심의 업무입니다. 피해자심리전문요원이라는 명칭으로 범죄 피해를 입은 피해자를 보호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2014년에 우리나라에 약 40여명의 프로파일러가 근무하였으니 현재 아무리 많아봤자 100여명 남짓일 거에요.
우리나라에서 프로파일러를 대량으로 임용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연쇄살인마 유영철의 등장이었죠. 이수정 프로파일러님은 “유영철 때문에 프로파일러라는 직업군이 등장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영철은 한국 과학수사가 발전하는 것에 기여를 했다.” 고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직업으로써 프로파일러를 원한다면 범죄심리학을 전공해야 합니다. 그러나 프로파일러가 되기 위해선 유영철, 강호순 같은 연쇄살인마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T/O가 나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혹여 경찰청에 채용이 되더라도 범인보단 피해자를 더 많이 볼 확률이 큽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부처 간 업무 협조를 하기 힘든 구조입니다. 검경 갈등은 뿌리 깊은 사회문제죠. 어디나 마찬가지에요. 소통, 협조 정말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 이해 관계가 겹쳐 있기 때문에 심리 전문가로써 기존에 있던 직업군에 합류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어요. 정작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갖게 되는 순간 우리는 전문성을 내려놓아야 하는 아이러니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에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을 위해 아껴두도록 하죠.
범죄심리학을 배우면 무슨 병에 걸리냐고요? 안 걸리겠어요? 지금까지 공부했더니 “네 직업은 자리가 없어서 기다리는 수 밖에 없어.” 라는 소리 들으면?
상담 심리학
상담 심리학은 상담에 관심이 있거나, 나를 이해하고 싶어서 심리학과를 택한 이가 재밌게 들을 수 있는 과목입니다.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을 배우고, 여러 상담 사례를 듣는 과정에서 ‘아, 그래서 내가~!“ ”아, 어쩌면 그래서 네가~!!“를 외칩니다. 상담사의 길을 걷는다면 평생 듣게 될 프로이트, 아들러, 로저스, 엘리스 등을 접하면서요.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게 나와 관련된 이야기라고 하던가요? 수업 시간마다 나의 성장 과정, 나의 심리적 문제, 건강한 성격 등을 내 삶에 대입하다보면 공부도 쉽게 됩니다. 생소한 개념이 많지만,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라 비교적 이해가 쉽습니다.
그러던 와중 치명적인 병에 걸립니다. 바로 ‘상담병’입니다.
상담병의 증상은 대략 이렇습니다.
1) 친구가 고민을 얘기할 때 자기 생각은 얘기하지 않고 “그렇구나. 네 생각은 어때?”만 반복한다.
2) 친구의 과거 상처 받았던 기억을 탐색하려고 한다.
3) 친구의 가족 관계를 듣고 나면 그 아이의 낮은 자존감이 ‘어릴 적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 해서’ 라고 이해한다.
4) 결국 친구에게 “나 상담하려고 하지 마.” 소리를 듣는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1) 친구가 고민을 얘기할 때 자기 생각은 얘기하지 않고 “그렇구나. 네 생각은 어때?”만 반복한다.
내가 얼마나 고민 해결을 잘 해주는데? 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신감에 찬물을 끼얹는 개념이 있으니, 상담은 고민 해결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배움입니다. 그렇습니다. 상담에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내담자가 스스로 문제를 깨닫고 해결할 수 있도록 한 발짝 뒤에서 걸어가 주는 것입니다. 상담사가 하는 건 적절한 질문 그리고 경청입니다. 내담자가 하는 말을 적절하게 반영하여 다시 돌려주는 훈련에 익숙해지다 보면 자기 생각이 있어도 그저 상대방 말만 따라하는 앵무새가 됩니다.
잘 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곧이곧대로 말만 돌려주는 건 어색하고 때로 기분 나쁩니다. 상대방도 뻔히 느껴요. 아, 얘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있는데 왜 말을 안 하지? 답답하게... 이런 느낌이요.
2) 친구의 과거 상처 받았던 기억을 탐색하려고 한다.
학과 농담이라는 게 있죠. 해당 학과에서만 공감대를 사서 널리 퍼지는 농담들이요. 심리학과에선 이런 농담이 있습니다. “자기가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으니 심리학과에 오지.”
비약입니다만, 개인적으로 뜨끔했던 말입니다. 저는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심리학과를 택했지만, 가장 알고자 했던 건 ‘나는 뭘까?’ 에 대한 답이었어요.
정신분석, 아들러상담, 인간중심상담 등 초기 상담 이론을 듣다보면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야 합니다. 발달심리, 성격심리를 들으며 부모의 양육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듣죠. 나의 과거를 반복해서 떠올리다보면 부모님이 내게 줬던 크고 작은 상처들이 떠오릅니다. 나의 부모는 이상적이지 않았고, 폭력적이었으며 부부로써 모범을 보이지 않았고, 부모로써 권위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 했습니다. 그런 양육 과정을 겪었던 나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지금의 나를 만들었던 경험과 감정이 하나하나 기억납니다. 그러다보면 묘한 기분이 들어요. 이제껏 못 찾았던 나의 문제를 비로소 찾은 것 같은 깨달음. 그로 인한 안도감, 동시에 갈 곳 없는 원망감.
‘내가 이렇게 된 건 과거 그 사건 때문이구나.’를 알게 되면서 다른 친구들에게도 역시 과거 상처 받았던 기억을 탐색하려고 합니다.
3) 친구의 가족 관계를 듣고 나면 그 아이의 낮은 자존감이 ‘어릴 적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 해서’ 라고 이해한다.
대개 상처 받았던 기억은 가족과 연결됩니다. 부모에게 상처 받은 기억을 떠올리다보면 ‘이건 다 부모님이 나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야.’ 라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그 친구의 성격도, 특성도, 고민도, 감정도 모두 자존감이 높으면 없었을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자꾸 파고 듭니다. “어릴 적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 한 때가 있지 않을까?”
물론 정말 사랑 하나 받지 못 했을 수도 있죠. 그러나 부모도 사람입니다. 어떻게 100% 완벽했겠어요. 허나 ‘심리적 문제 = 가족’ 프레임에 갇히면 그 프레임 속에서 뭐라도 찾으려고 해요. 자존감이 낮은 이유는 가족에게 있을 것이니 어서 기억해봐 식입니다.
4) 결국 친구에게 “나 상담하려고 하지 마.” 소리를 듣는다.
이런 어설픈 상담병은 고민을 토로 하는 친구 입에서 욕이 나오게 합니다. 고개만 끄덕일라 치면 “나 상담하려고 하지 마.” 소리를 듣죠. 우스운 현상이에요. 상담하지 말고 말만 들어달라니.
사람은 진심에 반응합니다. 능숙하지 않은 어설픈 기술은 되려 상대의 기분을 망칩니다. 차라리 멋지지 않아도 진심으로 다가가면 됩니다. 상담병은 이걸 가로막아요. 아무리 간단한 일도 가족 근원을 찾으려고 하다보면 오히려 내게 고민을 토로하는 사람이 줄어듭니다.
더불어 “너 변했어.” 얘기를 듣는 경우도 생깁니다. 진정한 나에 대해 알아가고, 각종 상담 이론에서 말하는 건강한 성격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예전에는 “그렇구나.” 했던 상대방의 아쉬운 점이 이제 왜 그런 건지 이유가 보입니다. 어떻게 해야 나아지는 지 방법이 보여요. 이게 쌓이면 예전엔 하지 않았던 잔소리, 쓴소리를 참을 수 없습니다.
또, 내 생활 습관을 바꿉니다. “나를 사랑하기로 했어.” 라며 어색한 셀프뻔뻔함을 갖추는 경우도 있습니다.
괜찮던 얘가 상담 수업을 듣더니 평소에 하지 않던 잔소리를 하게 됐다? 돌려줄 말은 하나죠. “너 이상해. 변했어. 너랑 얘기 안 해.”
대학교 3~4학년에 배우는 상담은 초등학교 저학년에 배우는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같습니다. 분명 맞는 말인데요. 지키기 힘들어요. 변수도 많고, 각자의 사정에 따라 오히려 어기는 게 유리할 때도 생깁니다. 교과서는 기본을 알려줄 뿐입니다. , 생활에 적용할 땐 수많은 응용이 필요합니다. 그 응용이 기본에 담긴 핵심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을 찾는 게 ‘경험’입니다. 그러기에 20대 초반은 아직 많이 어려요.
임상 심리학
임상과 상담의 차이가 뭘까요? 종사자마다 해석이 다르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임상은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경우 즉, 정신질환이 있는 대상을 진단하고 치료합니다. 반면 상담은 정신적인 성장을 바라는 이에게 위로, 공감, 또는 직면과 좌절을 줍니다. 상담이 할 수 있는 건 자신을 컨트롤할 힘이 남아있는 개인의 성장을 함께 걷는 겁니다.
만약 내면의 에너지만으로 자기를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 (뇌 장애, 성격 장애 수준의 중증 이상 등)라면? 그땐 병원에 가야죠. 임상 심리학에서 다루는 건 이런 영역입니다.
첫째, 이 사람의 내면의 에너지가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인 파악이 필요합니다. 심리를 점검할 수 있는 검사 툴, 객관화된 지표, 보고서 등을 익히는 게 모두 이런 필요성에 의해서입니다.
둘째, 이 사람의 정신질환이 어떤 범주에 속하는 지 구분합니다. 국제적으로 정신장애 분류체계를 마련하면 그 체계에 적힌 증상 기준에 따라 나눕니다.
그러니 임상 심리학을 위해 배우는 건 심리 검사와 정신병리학입니다. 물론 이 두 지점 모두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씩 짚어볼까요?
1) 심리검사
심리검사. 말만 들으면 정말 재밌어 보이죠? 인터넷에서 하던 심리테스트 보면 어떻게 이렇게 내 마음을 정확히 맞추는 지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TV 어딘가에서 봤던 물감 얼룩이나 그림, 나무, 가족 그림 그려서 아동들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 검사는 ‘나도 한 번 받아보고 싶다!’ 했을 거에요.
심리검사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눠집니다. 객관적 검사와 투사 검사. 객관적 검사는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구조화란 채점의 방식이 표준화 되어 있고 해석의 규준이 비교적 명확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흔히 하는 설문지 조사 있죠? 그게 객관적 검사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여기서 객관화란 수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만든 수치를 정리했다는 얘기입니다. 익숙하죠? 네, 통계입니다. 1~2학년 때 피눈물을 흘리며 배웠던 심리통계는 다 이것을 위해 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통계의 원리는 모르셔도 됩니다. 그건 나중에 설명할 논문 작성 파트를 위해 고이고이 모셔두세요.
객관화 검사 공부는 누군가가 모아놓은 통계적 결과물을 하나씩 암기하는 시간입니다. 각 척도가 무엇을 나타내고 있는 지, 이 척도들이 모이면 어떤 의미가 되는 지 복합적인 갈래를 다 외워야 하나의 검사를 공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MBTI? 애니어그램? 물론 심리검사에서 다루지만 임상 영역에선 그다지 비중을 두지 않는 검사입니다. 더 복잡한 걸 배워요. MMPI 의 애매모호한 척도 및 척도 쌍만 공부해도 지치는데 거기에 K-WAIS, PAI, TCI, Big-5, LCSI 등등 배우다보면 이 척도가 어떤 검사에 쓰는 건지도 모를 정도로 뒤죽박죽 엉킵니다.
만약 단순 암기를 잘 한다면 객관화 검사 공부가 유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리검사 전반에선 유리하지 않습니다. 투사 검사가 우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죠.
투사 검사는 애매모호한 자극을 해석하는 내담자의 태도나 반응을 보며 숨겨진 심리상태를 파악하는 검사입니다. 대표적으론 SCT, 로르샤흐 검사, TAT 등이 있습니다. 집, 나무, 사람 등을 그리는 검사, 비 오는 장면을 그리거나 물고기를 그리는 검사 등 단번에 의미를 알아차리기 어려운 검사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목적이 뚜렷한 질문엔 나를 드러내기 꺼리는 사람도, 애매모호한 자극이기에 비교적 쉽게 대답합니다. 임상전문가는 그 자극에 숨은 심리를 찾아냅니다. 심리검사 시간엔 무엇을 할까요? 그렇죠. 일정 자극에 어떤 심리가 있는 지 외웁니다.
이 암기는 객관화 검사보다 어렵습니다. 객관화 검사는 척도를 보며 의미를 유추하는 게 가능합니다만 투사 검사는 애매모호해요. 공부하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애매모호합니다.
재밌는 심리 테스트를 할 수 있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간 시험 기간에 후회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렇지만 솔직히 공부하기 쉬운 과목이 많겠나요? 다 어렵죠. 이건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심리검사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과제입니다.
심리검사는 실습 위주입니다. 그렇기에 과제는 심리검사 진행 후 보고서 쓰기일 확률이 높습니다. 보고서를 쓰려면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구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와 서로의 정보를 주며 상부상조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심리검사 수업을 듣다보면 지인에게 나의 심리 상태가 샅샅이 파헤쳐집니다.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들어요.
게다가 이것도 한두 번이죠. 교수님이 과제를 많이 내는 스타일이라면 수업 메이트 상대로 진행하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이럴 땐 대학 내 게시글로 홍보하거나 주변 지인에게 심리검사를 해주겠다고 할 수 밖에 없어요.
대학로에서 갑자기 내게 다가와 심리검사를 해주겠다고 하는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 없으신가요?
네, 사이비 종교 권유입니다. 그들 중 심리검사를 토대로 접근 후 본론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대학가엔 ‘그들을 무시하라.’는 상식이 널리 퍼져있습니다.
아무리 나쁜 사람 아니다, 정말 과제 때문에 그런다고 얘기해도 그들은 경계합니다. 참여? 당연히 안 하죠.
결국 과제를 위해 나는 물론이고, 부모, 친척, 친구, 동기까지 다 팔아먹게 됩니다. 학점을 위해 내 인간 관계를 팔아먹는 느낌이 들어 묘한 죄책감이 듭니다. 그런데 어쩌겠어요? 이 수 밖에 없는 것을.
2) 정신 병리학
흔히 정신병리라고 하면 어떤 이가 떠오르나요?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는 묻지마 범죄의 가해자? 동네마다 꼭 있다는 지능 장애? 자폐아?
정신 병리학에 이렇게 (대중적인 이미지 상) 우리와 동떨어진 정신병리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정신장애 분류체계인 DSM-5에 나오는 질병 하나를 예로 들어볼까요?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주요 진단 기준입니다.
반사회적 성격장애는 다음의 7가지 특성 중 3가지 이상의 항목에 해당해야 한다.
* 법에서 정한 사회적 규범을 준수하지 못하며, 구속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들을 반복적으로 한다.
*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을 위해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하며, 가명을 사용하거나 타인을 속이는 것과 같은 사기를 일삼는다.
* 행동이 계획적이지 못하며 충동적이다
* 자극과민성과 공격성으로 육체적 싸움이 잦으며, 폭력사건에 연루된다.
* 자신 및 타인의 안전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서슴없이 무모한 행위를 한다.
* 직업 활동을 성실하게 수행하지 못 하며, 채무를 이행하지 못 하는 등 무책임한 양상을 보인다.
* 자책의 결여로 타인에 대한 상해, 학대, 절도행위를 하고도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거나 오히려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한다.
다음 항목 중에 생소한 개념 있나요? 그렇지 않아요. 결국 정신 병리도 사람의 행동 영역입니다. 진단 기준의 워딩으로만 판단할 때,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특성이 있어요. 내가 그 기준에 해당하는 경우도 있고, 부모, 선배, 친구, 애인, 알바 집 사장 등을 떠올리면 꼭 들어맞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신병리학을 듣다보면 불안해집니다. ‘혹시 내가?’, ‘혹시 그 사람이?’ 하며 주변 관계가 정신병리의 늪으로 보여요.
3학년 이상이 모여 있는 심리학과 복도에서 쉽게 들립니다. “나 건강염려증 있잖아.”, “걔 완전 자기애성 성격장애야.”, “내 동생 분열성 성격장애 같은데 어떡하지?”
필드에 뛰어든, 그래서 리얼 정신장애를 본 전문가는 혀를 찰 풍경입니다. 높은 확률로 그거 그냥 특징입니다. 정신질환이 아니에요.
원래 사람 사는 곳이 그래요. 어느 정도 이상한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신병리학을 공부하다보면 사람들이 다 이상하게 보이는 병에 걸립니다.
응용 심리학은 우리가 살면서 한두번은 겪었을 법한 상황 또는 사람에 대한 심리학적 지식을 전달합니다. 하나씩 알아 갈수록 재밌습니다. 마치 세상 모든 현상이 심리학으로 설명 가능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확실히 말할게요. 아니에요.
심리학을 응용하려면 이론이 빠삭한 정도로 안 됩니다. 이론만큼 개인의 경험과 성장이 동반되어야 해요. 꼭 다양한 경험을 할 필욘 없습니다. 그러나 심리학을 실제 삶에 적용하려면 좌절과 실패 그에 따른 성숙이 필요해요. 마음의 깊이가 깊어져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같은 것을 보아도 깊이가 달라요.
저는 심리학과 3~4학년 시기를 ‘아기한테 식칼 쥐어주는 시기’라고 말합니다. 식칼이 있어야 요리를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아기는 아직 식칼을 다루지 못 합니다. 훌륭한 레시피, 날이 선 식칼이 있더라도 다루는 이가 그걸 다루지 못 한다면 위험하죠.
그렇다고 아예 칼을 뺏을 수도 없습니다. 칼이 없으면 시도조차 못 하니까요. 그래서 식칼을 쥐어주는 부모(여기선 교수님이 되겠네요.)가 당부합니다.
“아무리 재밌어도 조심히 다뤄라. 아직 너는 미숙하니까.”
이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이론적 기반과 실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혹은 경제사정 상 그럴 수 밖에 없어서 실전에 뛰어듭니다. 그러나 실전을 하다보면 조금씩 느낍니다. ‘부족하구나. 나.’
물론 자각하지 못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럴 땐 주변 상황이 알려줍니다. 깊이 없는 심리 전문가는 반짝 스타가 될 수 있어도 길게 끌고 가지 못 하거든요.
그래서 심리학을 직업으로 삼고자 하는 심리학과 학부생은 학부 졸업 후 한 가지 방법밖에 없음을 알게 됩니다. 대학원 진학이죠.
그럼 대학원까지 하면 될까요? 그 후엔 내가 원하던 심리 전문가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제가 이렇게 일일이 설명하며 심리학과 오지 말라고 하는 일도 없겠죠. 다음 편에선 심리학과 대학원의 민낯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 글은 경험자들의 다양한 제보로 빚어갑니다. 혹 수정할 부분, 추가할 부분이 있으면 가감 없이 이야기해주세요. 마찬가지잖아요. 오지마세요. 심리학과에 라고 생각하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