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마세요 심리학과에 #004]
#004. 심리학 전문가가 되기 위해 밟아야 하는 과정 (석사)
이전 글 세 줄 요약
1) 학부 3~4학년 때 드디어 응용 심리학을 배울 수 있다.
2) 응용 심리학의 겉핥기를 하다보면 과목마다 특유의 질병에 걸린다.
3)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발 빼라. 안 그러면 당신 석사 된다.
앞선 글에서 저는 평균적으로 심리학과 3~4학년 때 배우는 과목이 무엇이며 과목마다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설명했습니다. 실전에서 사용하는 ‘전문 영역’을 하나씩 알아가는 건 좋으나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와 같습니다. 학부를 마치고 “저 이제 상담해도 되는 거죠?” 라고 묻는 건 “걸을 수 있으니 육상 대회에 나가도 되죠?” 라는 소리와 같습니다. 얼토당토 않습니다.
흔히 학부 후배들이 제게 묻습니다.
“선배, 진짜 상담하려면 무조건 대학원까지 가야 돼요?”
그들의 물음표엔 걱정과 공포가 담겨있습니다.
문장을 쪼개봅시다. ‘진짜 상담’, ‘무조건’, ‘가야 돼요?’
‘진짜 상담’이 뭘까요? 후배 입장에선 “상담을 직업으로 삼으려면 대학원까지 가야 한다는 게 진짜인가요?” 라는 의미이겠지만 듣는 선배 입장에선 “가짜 상담이 아니라 진짜 상담을 하려면” 으로 들립니다. 그만큼 심리 상담 영역은 학부 졸업생과 석사 졸업생의 차이가 큽니다.
학부 졸업을 하고 바로 심리 상담에 뛰어드는 사람이 있다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곳을 내담자들에게 추천하지 않을 겁니다. 그 이유는 대학원에 접어들어야만 알게 되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원에서 하게 되는 고강도 훈련들에 담긴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자세한 이야기는 후술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조건’은 뭘까요? 그 전에 대학원의 원래 개념부터 알아볼까요?
대학원 [명사] [교육]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보다 전문적으로 학술, 기예를 연구하는 과정. 대학 과정보다 한층 더 심오한 연구와 교수가 이루어진다.
만약 직업으로의 심리상담을 학부 졸업장만으로 할 수 없다면 대학원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이것이 ‘무조건’이 가진 무게입니다.
문제는 심리학과 학부생이 되는 새내기들 대다수가 이 사실을 모르고 심리학과에 들어왔다는 거죠. 4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면 꿈에 그리던 심리상담가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꿈에 부풀어있던 이들에게 선배가 이렇게 말합니다.
석사 선배 :
(한 손에 교수님이 준 번역 과제물 들고)
후... 심리학을 직업으로 삼으려면 대학원 필수야. 몰랐어?
그 옆에 있던 박사 선배 :
석사 뿐만이겠냐? 박사도 필수야.
(교수님이 준 과제물을 양 손 가득히 들고 있음.)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나는 친구들 얘기 들어주는 게 좋아서 왔을 뿐인데?’, ‘부모님이 앞으로는 심리학과 전망이 좋을 거라고 해서 왔을 뿐인데?’, ‘그냥 재밌게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왔을 뿐인데?’ 석사, 박사까지 해야 한다니. 복잡한 마음이 되어 물어볼 수 밖에요.
“‘무조건’ 가야 하나요? 안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이 절박함이 마지막 ‘가야 돼요?’에 나옵니다. 가기 싫은 거죠. 적당히 배워서 적당히 취직해서 내가 좋아하는 일 하며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대학원까지 가게 되면 그 학비는요? 내 20대는요? 서른 될 때까지 부모님한테 손 벌리라고요?
네. 심리상담 전문가가 되시려면 대학원 진학이 필수입니다. 그러니 심리학과 오기 전에 알고 있으셔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유망 직종을 찾아,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단순히 이게 재밌을 것 같아서 심리학과를 생각 중이라면 진지하게 고민해보시길 바랍니다.
시작해볼까요? 대학원에 갈 수 밖에 없는 이유.
1-1) 취업이 안 된다.
저는 석사 1학기를 심리학과 5학년이라고 표현합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지금 6학년까지 한 셈이네요. 저 역시 끝이 아닙니다. 9학년 어쩌면 그 이상이 남아있을 지도 모르겠어요.
이상합니다. 그러면 학사 졸업이 왜 있죠? 누가 석사까지 다니라고 법 만든 것도 아니잖아요? 제가 아는 누구는 심리학 전공도 아닌데 자격증도 엄청 많고 그거로 센터 차려서 돈도 많이 벌고 있대요. 인터넷만 봐도 2주 동안 수업 받으면 자격증 준다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 거로 취업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네, 아닙니다. 그런 자격증으로는 취업이 안 됩니다. 이게 대학원에 갈 수 밖에 없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직업은 돈을 벌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심리 상담이 좋더라도 수입이 없으면? 직업으로 삼겠다는 사람이 있을까요?
왜 대학원이 필수인지는 이 질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학부생들이 심리상담사로써 취업을 할 수 있는가?”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학부 졸업만으론 아무 것도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실력을 닦아봤자입니다. 채용이 안 돼요. 비싼 돈 주고 어디 협회의 심리상담 자격증을 땄다고요? 당신이 가고자 하는 센터에선 그 자격증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센터에서 인정하는 공식 자격증은 한국심리상담학회와 한국상담학회의 자격증(이하 모학회 자격증이라고 할게요)입니다. 이 자격증이 있는 상태에서 다른 자격증을 갖고 있다면 그건 ‘아, 이런 분야로도 공부를 했나보다.’ 정도의 정보를 줍니다. (근본 없이 아무 자격증이나 다 따는 사람이구나 하는 부작용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만약 모학회 자격증이 없는 상태로 다른 자격증만 가지고 있다면? 깊이도, 근본도, 실력도 없는 어중이떠중이 이미지 확정입니다. 실제로 어디 협회에서 땄던 자격증을 나중에 이력서 쓸 때 일부러 미기재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끄러운 약점 내지 주홍글씨임을 알기 때문이죠.
문제는 모학회 자격증을 딸 수 있는 기준이 최소 석사라는 겁니다.
한국상담심리학회의 자격 기준을 볼까요? 준회원 가입도 쉽지 않습니다. 최소 상담 관련 학사학위를 취득해야 가입 승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비상담 관련 학사도 가입이 가능했지만 회칙이 개정되면서 2018년 12월 15일부터 상담경력만으로 입회가 불가능합니다.
석사 입학 후 12개월 이상의 상담 경력이 있으며, 석사 과정 중 학회에서 제시한 과목을 이수해야 비로소 자격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물론 석사로 1년 했다고 바로 자격증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학사 졸업 후에도 자격 시험에 응시할 방법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려면 2년(24개월) 이상의 상담 경력을 증빙해야 합니다. 증빙인데 그냥 “저 언제부터 상담 했어요.” 식으로 통과될 리 없죠. 상담 센터에 취업해서 2년 간 근무했다는 증빙 서류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누가 자격증도 없는 사람을 합격시켜줄까요? 한 손엔 모학회 자격증, 한 손엔 석사 졸업장을 든 사람들도 취업 못 하고 응시 원서 넣고 있는데.
그래서 제가 최소 기준을 석사라고 하는 겁니다. 다른 기준들은 방법일 뿐 현실성이 없어요. 취업하려면 석사 졸업증과 모학회 자격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파구를 찾아보겠다는 분들을 위해 석사를 하지 않아도 심리상담가가 될 수 있는 방법 몇 가지를 안내해드릴게요.
한국상담심리학회가 자격이 깐깐한 편입니다. 다른 자격증들은 여기보단 자격이 느슨해요.
우선 한국상담학회를 볼까요? 수련 자격이 느슨합니다. 대학에서 상담관련과목 36학점 이상의 이수자는 학사 졸업자라 해도 자격 요건 충족입니다. 시험 및 심사 응시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수련 과정이 발목을 잡습니다. 자격증을 따려면 개인상담, 교육분석, 집단상담 등 많은 수련을 해야 하는데 이거 하나씩 찾아서 할 바엔 대학원 들어가서 지도교수님 관리 하에 하는 게 훨씬 간단합니다.
이 두 학회 자격증을 따지 않더라도 방법이 있습니다. 아무리 상담 업계에선 공신력을 자랑한다지만, 모학회 자격증의 약점은 ‘민간자격증’이라는 겁니다. 국가 자격증이 아니에요.
현재 우리나라에 상담 관련 국가 자격증은 1) 교육대학원, 교원대를 졸업하거나 교직 이수를 한 졸업생이 받을 수 있는 ‘전문상담교사 자격증’ 2) 산업인력공단에서 제공하는 청소년상담사 3) 산업인력공단에서 제공하는 임상심리사 4) 산업인력공단의 직업상담사입니다. 특히 직업상담사는 응시 자격에 별다른 조건이 없어 많은 분들이 응시를 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취업이 어렵습니다. 저 자격증을 석사 재학, 졸업자들도 딸 수 있잖아요. 같은 조건이라면 모학회 자격증까지 있는 사람을 뽑겠죠.
만약 어거지로 취업문을 열었다고 해도 학사 졸업자들은 ‘그래도 이 길로 가려면 석사까진 해야지.’ 라는 압박을 받습니다. 사실 이게 더 큰 문제인 ‘전문가로써의 입지’입니다. 남들의 시선이라고 봐도 되겠네요.
1-2) 남들의 시선
모두 두 개의 눈을 가진 세상에서 하나의 눈을 가진 사람이 편견 없이 살 수 있을까요?
석사 진학이 당연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학부 졸업장만으로 상담해보겠다고 하는 사람이 편견 없이 살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 어떤 마음으로 상담에 임하고 있는지, 어떤 사정이 있는지 그런 건 상관없어요. 겉으로 보이는 당신의 스펙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은 곱지 않습니다.
이걸 텃세라고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저 역시 심리상담을 하려면 적어도 석사이상은 나와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이유와 텃세로써의 이유가 다를 것 같긴 하네요. 텃세로써의 이유를 추측해보죠.
석사, 박사 심지어 교수님 중에도 무능력한 사람이 있습니다. 전문가라는 직함만 달고 있을 뿐 실력은 형편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나는 학부 졸업생이지만 누구보다 사명감이 있고 실력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분들 있겠죠? 그런 분들은 억울할 겁니다. 이렇게 얘기하겠죠.
“그깟 자격증이, 석사 졸업증이 뭐라고 나를 함부로 판단하느냐? 부조리하다!”
그러나 주위를 살펴보세요. 학부 졸업자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이들이 하는 행동이 어떤지.
몇 시간 동안 수업하고 자격증을 양산하는 자격증 양산족이 있습니다. 이들은 심리상담사가 되는 거 어렵지 않다며 최대한 쉽고 빠르게 자격증을 줄 방법을 제시합니다. 학부생들도 알만한 간단한 내용으로 강의를 하고 수강료를 챙깁니다. 심지어 강의는 무료로 하고 자격증 발급 비용만 받는 이들도 있어요.
이들의 주목적이 뭘까요? 돈 될만한 분야에 그럴듯한 자격증을 만들어 판매하고 이득을 취하는 겁니다. 그들의 타겟층은 아직 상담업계를 잘 모르는 사람, 자신의 진로와 미래가 불안한 사람, 실력보단 자격증의 개수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심리상담센터를 개설하는데 이렇다 할 법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도 자신의 자격증으로 센터 개설을 할 수 있습니다. 프리랜서를 할 수도 있고, 인문학 강좌를 만들어서 비싼 값에 팔기도 합니다. 양산형 자격증이 양산형 강의를 만들고, 위험한 심리 상담을 만들어냅니다.
전편에서 말했듯 심리상담은 공부가 아닙니다. 수련의 과정입니다. 진심어린 사색과 다양한 훈련이 한 사람을 심리상담 전문가로 빚어냅니다.
‘심리상담가’ 라는 같은 이름을 갖고 있지만 누구는 간단하게 딴 자격증으로 센터를 내고, 누구는 몇 년 간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취업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객관적인 틀(모학회 자격증, 충분한 공부를 했다는 다양한 검증) 없이 심리상담 수련자를 골라낼 수 있을까요?
전문가로의 길은 많은 사람 중 더 훌륭하고 전문적인 옥석을 골라내는 과정입니다. 그 기준에 ‘석사 과정’이 들어가는 건, ‘이건 시간이 연관된 일이다. 하루 아침에 된다는 생각을 버려라.’ 는 뜻입니다.
정말 심리상담을 사명감 있게 하는 분인지, 아니면 심리상담이라는 상품을 판매하기에 급급한 장사꾼인지 판단하는 제 나름의 기준이 있습니다. 저는 물어봅니다. “심리 상담 잘 하세요?”
구구단 신동이 있다고 칩시다. 다른 친구들이 4단 외우고 있을 때 9단까지 외운 아이입니다. 이 아이가 의기양양하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수학 잘 해!”
이 아이는 수학을 잘 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구구단을 빨리 외운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건 이 아이가 ‘구구단 외우기’를 잘 했다는 사실입니다. 추후 중학교에 가서 방정식과 함수를 배울 때도, 고등학교에 가서 미적분을 배울 때도 잘 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학부까지 배우는 심리학은 기초 중의 기초(1~2학년), 응용 중의 기초(3~4학년) 입니다. 만만하지 않은 과정이지만 그나마 쉽습니다. 암기 또는 이해력만 좋아도 할 수 있습니다. 자신감이 생깁니다. 상담 이론 살짝 배운 사람들에게 “심리 상담 잘 하세요?” 하면 ‘솔직히 나는 상담 잘 하는 것 같아.’ 라고 생각하는 사람 적지 않습니다. 상담을 판매할 목적이 더 큰 사람이라면 “내 상담은 뭔가 다르다!” “빠르고 효과적이다!” “나만 믿어라!” 라는 얘기도 서슴없이 하겠죠.
그러나 본격적인 상담가 수련 과정으로 들어간 경우 가장 먼저 알게 되는 건 ‘내가 조또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부끄러움입니다. 실전은 수준이 다릅니다. 해야 하는 것도 많고 챙길 것도 많습니다. 내담자와 상담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밑바닥, 한계를 보게 됩니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나약함이 속삭입니다. “이건 내 길이 아닐 지도 몰라.” “나는 상담 못해.”
그래서 심리상담을 사명감 있게 하는 분들에게 “상담 잘 하세요?” 물어보면 오히려 겸손합니다. “평생 공부하는 거죠. 뭐.”
물론 자신 있게 “난 심리상담 잘 한다!” 이야기하는 대가들도 있지만 그 분들은 풍기는 아우라부터 다릅니다. 누가 봐도 급이 다른 분들이기에 논외!
이쯤되면 ‘아니, 도대체 뭘 해야 하길래 이렇게까지 말하는 거야?’ 궁금할 겁니다. 저의 경험과 모학회에서 요구하는 수련 과정 그리고 상존하는 견해들을 바탕으로 정리하겠습니다.
2-1) 수업 및 과제
상담 이론은 수학 공식이 아닙니다. 인간을 어떻게 규정하고 바라보는지에 따라 신경증의 원인도, 해결 방법도, 상담의 과정도 다릅니다.
“이런 말을 했으니까 우울증”, “이런 반응을 했으니까 불안” 이런 공식이 없습니다. 내담자의 전반적인 모습을 통해 앞으로 어떤 상담을 해갈 건지 파악하려면 이론, 경험, 상담적 센스가 동시에 요구됩니다.
당연히 이론이 중요하겠죠. 수업 및 과제를 통해 이론을 공부합니다.
이게 쉬울까요? 며칠 공부한다고 알 수 있을까요? 알아도 알아도 모르겠고 공부를 하고 하고 또 해도 헷갈립니다. 많이 알수록 모르겠다는 말이 정확합니다. 사람에 대한 학문이기에 그 깊이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대학원을 다닐 때 한 주에 수업을 4개 들었습니다. 고급상담이론 첫 주는 정신분석상담이론, 둘째주는 인간중심상담이론 이런 식으로 한 주에 상담 이론을 하나씩 배웠습니다. 이게 말도 안 되는 분량입니다. 학부 때는 이론 하나를 한 학기에 하는 곳도 있어요. 한 학기 전반을 다뤄도 모자랄 내용을 매 주마다 해내는 게 대학원 수업입니다.
수업이 이거 하나 뿐인가요? 다른 수업도 비슷한 분량을 해내야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매일 저녁, 주말을 내내 과제 폭탄으로 삽니다.
하물며 과제가 책을 파고드는 것만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상담과 관련된 실무 과제들이 하나씩 생깁니다. 교과목에서 요구할 수도 있고, 어차피 학회 자격증 응시를 하려면 필요한 과정이기에 독자적으로 요구하는 곳도 있습니다.
심리학은 사회과학입니다. 그냥 ‘내가 경험했더니 이래~’ 라는 직관만으로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에요. 그래서 실전 역시 이론을 알아야 할 수 있습니다. 조금씩 여가 생활이 사라져갑니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2-2) 개인상담
상담가가 되기 위한 과정이니 당연히 개인상담을 해야겠죠? 교과서를 통해 배운 심리상담을 직접 진행하면서 실전 감각을 익히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좌절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론으로 공부했던 것을 실전에서 사용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상담적 대화를 나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호되게 배웁니다.
상담이라고 해도 그냥 대화 나누는 거 아니냐? 그게 뭐가 힘드냐? 라는 의문이 드는 자체가 이 막막한 어려움을 가늠하지 못 하기에 가질 수 있는 의문입니다. 심리상담은 그저 단순히 말을 듣고 적절한 조언을 해주는 게 아닙니다. 내 마음이 건강하기 위해 나 역시 상담을 받아야 하며 상대방이 상담 없이도 적응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고급 기술입니다.
또 이렇다 할 자격증이 없는 수련 상태이기에 내담자를 구하는 일 자체가 어렵습니다. 대자보를 붙이고 SNS에 게시해도 신청자를 찾기 힘듭니다.
결국 실습을 도와준다는 기관에 ‘일정 금액을 내고’ 센터 상담을 나눠 받는 경우도 생깁니다. 보수요? 오히려 실습비 명목의 돈을 내지나 않으면 다행이죠.
2-3) 수퍼비전
개인상담하며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그러나 더 절망적인 건 수퍼비전입니다. 상담내용을 전문가에게 점검받아야 합니다. 엉망으로 낮아진 자존감으로!
수퍼비전이란 1급 전문가 등 선배 전문가에게 자신의 상담 내용을 보여주고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 어떤 부분이 잘 했는지 듣고 자신의 상담을 분석, 발전시키는 과정입니다. 상담 컨설팅이라고 생각해도 되겠네요.
전문가 스타일에 따라 호되게 혼나기도, 상담자(나)의 반응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분석당하기도, 심지어 수퍼비전을 갔다가 상담자(나)가 수퍼바이저에게 상담을 받기도 합니다. 상담이 문제가 아니라 일단 네가 내면의 문제를 푸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 하에 이루어지는 거죠.
상담은 평생의 훈련입니다. 처음부터 잘 해내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문제투성이 상담 기록을 자신이 정리하며 한 번, 수퍼바이저에게 분석당하며 또 한 번 좌절을 겪습니다. 남들에게 평가받기 두려워하는 사람일수록 이 수퍼비전이 지옥 같습니다.
2-4) 심리평가 수련, 집단상담 수련, 학회 참석.. 주말이 없다.
임상심리보다 덜 하지만 심리상담사도 심리평가에 필요한 해석툴을 알아야 합니다. MMPI, HTP, DAP, SCT, K-WAIS, MBTI 등등 수많은 툴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배우려면 정규 수업 외에도 시간을 내어 워크샵을 다녀야 합니다.
워코숍, 집단상담, 학회 등 대부분 주말에 개최합니다. 주말마다 여기저기 다니다보면 오히려 주말이 더 바쁘고 피곤합니다. 매주 교통비, 숙식비 등의 부담도 무시할 수 없죠.
2-5) 교수님에 따라 프로그램 진행, 집단보조, 해외저서 번역 등을 하기도
게임 중 자동전투 시스템을 차용하는 곳이 많아졌죠. 버튼 하나 누르면 게임 캐릭터가 알아서 레벨업하고, 퀘스트하고, 성장하고, 아이템 가져다주는 식입니다. 항간에는 교수님의 자동전투 캐릭터들이 대학원생이라는 블랙 유머도 있더군요.
재주는 대학원생이 부리고 그 혜택은 교수님이 보는 식이죠. 이 교수님의 갑질 문제가 사회 전반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걸 보면 어디 대학원생들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심리학과라고 다를까요?
교수님께서 진행하는 집단상담의 무보수 보조가 되기도 하고, 교수님의 마음에 든 해외 전공서를 대학원생들끼리 영역을 나누어 번역하기도 합니다. 차후 나올 책에 대학원생들의 이름은 지워진 채 말이죠.
물론 제 경우 이런 부조리한 일까지 당하진 않았습니다. 지도교수님을 잘 만난 것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다양한 대학교에서 수많은 대학원생들의 여전히 교수님의 노예처럼 살고 있습니다.
2-6) 논문 준비
이미 평일도 주말도 할 것 없이 대학원생이지만 아직 해야 할 것이 남았습니다. 바로 논문입니다. 석사의 논문은 이제 막 걸음마하는 단계입니다. 써봤자 학계 내에서 중요하게 취급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걸음마를 위해 얼마나 많은 석사들이 피와 땀을 쏟을까요?
학교마다 다릅니다만, 해외 논문을 매주 번역해서 스터디를 하거나 선배들의 역대 논문을 읽고 분석합니다. 논문 주제 선정을 위해 적어도 몇 십, 몇 백 편의 논문을 검색하고 익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이 기각하시면 전면 취소하고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대학원생 개개인이 다른 흥미 분야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몇몇 교수님은 자기 관심사가 아니면 무조건 기각시킵니다. 울며 겨자먹기로 교수님의 관심사에 해당하는 논문을 써야 합니다. 그래야 졸업할 수 있으니까요.
관심 있는 분야로 써도 힘든 게 논문입니다. 그런데 관심 없는 주제의 논문을 매일 쓰는 심정이 어떨까요? 이 쯤 되면 내가 심리상담을 해야 하는 건지, 받아야 하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2-7) 다 좋아요. 근데 돈은요?
그래요. 개인 생활 줄이고 잠 줄이고 여가 줄여서 이 많은 것을 다 해낸다고 치자고요. 그런데 가장 치명적인 건 돈입니다. 이 많은 과정에서 돈이 안 들어가는 곳이 없어요.
수업 받으려면 당연히 학비를 내야합니다.
개인상담한다고 돈 받을 수 있나요? 수련생인데? 실습 비용으로 돈 안 내면 다행이죠.
수퍼비전도 매 회 비용을 냅니다. 나의 상담을 도와주고, 분석해주신 수퍼바이저에 대한 인도적 감사 차원도 있지만, 상담 윤리에서도 명시한 내용입니다. 무료 수퍼비전을 하는 것만으로도 상담가 윤리에 저촉됩니다.
심리평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련 비용, 수퍼비전 비용이 듭니다.
상담하려면 일단 내가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했죠? 이걸 교육분석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당연히 상담비용을 냅니다.
워크숍과 집단 상담 등도 무료일 리 없습니다. 적어도 10만원 이상, 평균 20~40만원 정도입니다. 교통비, 숙식비 등 따지면 어마어마합니다.
벌 곳은 없고, 쓸 곳은 많습니다. 없는 시간 쪼개서 알바를 하려 해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최저 시급으로 충당 가능한 지출도 아닐뿐더러 몇몇 교수님은 알바 등의 경제활동을 금지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수련에 집중해야 할 시기라고요.
이상 심리상담 석사의 길이었습니다. 임상전공도 다르지 않아요. 대신 임상전공은 대학원 졸업 후 ‘임상 수련’이라는 수순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지내는 ‘인턴’ 개념으로 보면 될 것 같네요. n년의 수련 기간을 무급 혹은 돈을 내며 지내고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그 후에야 비로소 임상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즉, 엄청난 부자가 아닌 이상 상담전문가의 길은 사회생활 초입부터 빚더미입니다.
오직 심리상담을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지출하게 되는 빚의 규모가 몇천만원입니다. 나이는 아무리 빨라도 20대 중후반이겠네요.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싶은 나이지만 모아둔 돈이 없습니다. 연애도, 결혼도 부담이 됩니다.
물론 아무리 깊은 동굴이었어도 그 끝에 빛이 가득하다면 괜찮겠죠. 하지만 석사 졸업 후 학회 자격증을 들고 취업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다양한 실망감과 박봉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심리학과를 나온 사람들의 취업과 직장 생활 그리고 연봉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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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경험자들의 다양한 제보로 빚어갑니다. 혹 수정할 부분, 추가할 부분이 있으면 가감 없이 이야기해주세요. 마찬가지잖아요. 오지마세요. 심리학과에 라고 생각하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