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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과에 들어오면 무엇을 배울까? (1~2학년)

[오지마세요 심리학과에 #002]

#002. 심리학 전문가가 되기 위해 밟아야 하는 과정 (1~2학년)



이전 글 세 줄 요약

 1) 상담과 심리상담을 나누는 것은 ‘전문성’이다.
 2) 전문성만 포기하면 상담은 상담대로 하면서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다.
 3) 그러니 오지마세요. 심리학과에.     



 앞선 글에서 저는 심리학과에 들어가면 심리 상담의 전문성을 쌓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훈련을 위해 배워야 하는 것이 많고, 그 과정이 길며, 험난합니다. 이번 주제는 그럼 심리학과는 어떤 훈련을 하는 곳인가? 입니다.     


 심리학과에선 무엇을 배울 것 같나요?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 상담을 잘 할 수 있는 이론과 기법? 관계를 돈독히 하는 대화법? 행동만으로 상대방의 생각과 마음을 알아내는 행동 과학? 

 아쉽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Photo credit: raccooncity on VisualHunt.com / CC BY-NC // Photo on Visual Hunt


 심리학을 배우려는 우리를 반겨주는 건 뇌입니다. 뇌가 정보 처리를 어떻게 하는지를 배우기 위해 온갖 신경전달물질을 외우고 그 전달 과정을 익혀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배우고 싶어서 왔지만 오히려 개나 쥐가 침 흘리고 레버 누르는 것을 배웁니다. 수학도 해야 합니다. 심리 통계라고 불리는 통계학이죠. 소수점 아래의 숫자를 가만히 세고 있자면 내가 지금 심리학과에 왔는지 수학과에 왔는지 헷갈릴 겁니다. 

 역시 다시 한 번 외쳐야겠네요. 심리학과 오지마세요. 특히 문과는 더 오지마세요. 심리학과를 진학하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문과생이라는 함정이 있지만요.     



 심리학과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하는 훈련은 이 ‘기초 심리학’을 배우는 것입니다. 기초 심리학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1) 심리학 개론 : 심리학 전반을 겉핥기식으로 훑습니다.

 2) 생리 심리학 : 뇌 과학을 배웁니다. 신경전달물질 등을 외웁니다.

 3) 인지 및 지각 심리학 :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배웁니다. 어렵습니다.

 4) 통계학 : 수학 공부하셔야 합니다.

 5) 발달 심리학 :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발달하는지 배웁니다.

 6) 사회 심리학 : 사회(집단)는 어떤 심리로 움직이는지 배웁니다.

 7) 학습 심리학 : 개가 침 흘리고 쥐가 레버 누르는 것을 배웁니다.

 8) 성격 심리학 : 개인마다 왜 다른지 배웁니다. 기초심리학 끝판 왕입니다.     



 압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이런 게 아니라는 것을요. 그러나 기초 심리학은 심리학을 이루는 뼈대입니다. 도대체 이것들이 왜 필요한지, 배우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 필요가 있겠네요.      



 1) 심리학 개론
Photo credit: DI Library on Visual Hunt / CC BY-NC-SA


 심리학과에 들어오면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녀석입니다. 심리학의 다양한 분야를 기초부터 응용까지 집대성했기에 책 두께로 사람을 위축시킵니다. 흔히 1주 별로 분야 하나씩을 다루기에 방대한 내용을 쏜살같이 훑고 지나갑니다.

 그야말로 수박 겉만 모아놓은 과목입니다. 알맹이를 어느 정도 아는 상태로 공부하면 무척 쉽습니다만, 그렇지 않다면 매 주 새로운 개념에 머리를 싸매야 합니다. 

 심리학 개론은 각 분야의 핵심적인 내용을 엑기스만 추출해놓은 노다지입니다. 처음 배우는 입장에서 당연히 익숙하지 않겠지만, 이후 각 분야를 세부적으로 공부할 때 그 과목의 중심축을 잡는 지침서로 커다란 공헌을 합니다. 원래 나무가 아닌 숲을 다루는 분야이기에 공부하기가 힘들다면 ‘이 분야는 이런 내용을 핵심으로 담고 있구나.’ 하며 넓게 공부하는 것이 좋습니다.     



 2) 생리 심리학


 뇌 과학이라고 불리는 녀석입니다. 뇌의 영역마다 오감, 감정, 생각, 행동 등을 별개로 담당하고 있으니 이를 모두 익혀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각 작용이 뇌의 어떤 경로를 통해 전달되는지, 신경 작용물질이 분비되고 받아들여지는 원리는 어떠한 지 등을 하나하나 공부하게 됩니다.

 엄밀히 따지면 심리는 뇌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정, 생각, 행동 모두 뇌의 작용이 일으킨 결과물이기에 그 시작점이 되는 ‘뇌’는 반드시 알아야 하는 기초 과목입니다.

 흔히 용어와 뇌 영역에 압사되어 뇌 과학을 어렵게 여기기 십상인데요. 웃기게도 뇌 과학을 발전시킨 건 ‘비윤리적인 행위’와 ‘특이 케이스’입니다. 과거 비윤리적인 뇌 실험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이 남겨놓은 데이터를 통해 ‘뇌의 어느 부분이 잘려나가면 이 감각이 마비되는구나.’가 경험적으로 쌓인 것이 뇌과학의 발전입니다.

 그렇기에 그나마 뇌과학을 쉽게 익히려면 해당 이론을 밝혀냈던 실험이 어떤 것인지, 그 실험 내용은 무엇인지 익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입니다만...     



 3) 인지 및 지각 심리학
Photo credit: d26b73 on VisualHunt / CC BY


 뇌 과학에서 각종 자극이 어떻게 뇌에 도달하고 해석되는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인지 및 지각 심리학은 ‘오감’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인식되는 지를 연구합니다. 왜 우리는 단순한 글씨의 향연에서 의미를 찾아낼까요? 웅얼거리는 소리도 알아듣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렇게 인간과 동물이 하는 인지(생각)와 행동을 ‘정보 처리’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학문입니다.

 당연한 것일수록 검증하기가 어렵다는 거 알고 계신가요? 그걸 하는 학문이 이것입니다. 그 착안점과 실험 과정은 흥미로울 수 있지만 그 실험을 통해 익혀야 하는 ‘정보 처리’의 순서는 ‘내가 근데 이걸 왜 알고 있어야 하는 거지? 그냥 이렇게 되는 게 당연하잖아?’ 라는 의구심을 품게 합니다.

 컴퓨터의 등장으로 모든 정보는 입력과 출력이 있다는 생각이 퍼지게 되면서 발전하게 된 분야입니다. 그러니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상대적으로 쉽게 익힐 수 있습니다. 물론 심리학과는 문과생이 더 많이 온다는 게 함정입니다.     



 4) 통계학
Photo on Visual Hunt


 분명 사람 심리를 배우러 왔는데 Z가 뭐니 t랑 F가 뭐니 이런 수업을 듣고 있자면 자퇴 원서를 내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솟아납니다. 하지만 잔인하게도 심리학의 꽃은 통계입니다. 이를 납득하기 위해서는 심리학이 인문학, 철학과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심리학은 흔히 ‘사회과학’ 계열로 나눕니다. 사회적인 현상을 과학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사회 과학이라고 불리는 건데요. 과학의 핵심은 ‘검증 가능함’입니다. 그래서 심리학에서 자신의 이론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험과 검증이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통계학입니다.

 심리학 전문가는 최소 석사 졸업이 필수입니다(이유는 나중에 따로 다룰 예정). 그리고 석사 졸업의 필수 항목은 ‘논문’이죠. 그리고 논문에 이 통계가 필요합니다. 즉, 통계 없는 심리학은 심리학이 될 수 없습니다. 학과에서 통계학을 가장 먼저 가르치는 이유입니다.

 쉽게 공부하는 방법이요? 음... 으음... 그냥 오지마세요. 심리학과....     



 5) 발달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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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살아가며 어떤 발달 단계를 걷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목입니다. 대표적으론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성격발달 8단계를 암기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요. 태아부터 노년까지를 아우르며 어떠한 발달 과정을 겪는지, 그 발달의 원리와 이론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배웁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이 있거나, 아이를 낳아 길러본 경험이 있는 학생은 이 과목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합니다. 조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도 이론을 배우기 전에 경험으로 그 특징을 알 수 있어 유리합니다. 공부하는 학생 역시 어떠한 발달 단계에 있기 때문에 경험에 따라 그 공감도와 난이도가 결정되는 분야입니다. 즉, 이 과목을 잘 하려면 대가족 사회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핵가족화 된 지 20년이 넘었죠 아마?     



 6) 사회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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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이 아닌 집단, 나아가 사회에 관련된 심리를 배우는 과목입니다. 도식, 휴리스틱 이런 것부터 배우기 시작하는데 용어 정리만 잘 버티면 그나마 기초 심리학 분야 중 재밌게 배울 수 있습니다. 특히 사회 전반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관심이 있다면, 인류 역사를 전반에 일어났던 바보 같은 일을 이해하고 싶었던 사람이라면(세계사나 한국사에 능통하다면), 정치 및 사회 이슈에 관심이 있다면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리학에 관심을 갖는, 특히 상담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은 사회가 아닌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외는 범죄 심리학을 전공하고 싶어 심리학과를 선택한 학생들인데, 사실 이들도 ‘범죄’와 ‘정의’에 관심이 있는 것이지, ‘사회 질서’라던가 ‘법’에 관심이 있는 경우는 적습니다. 무엇보다 사회 심리학은 적당한 진로가 없는 편입니다. 재미만 믿고 팠다가는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질 수 있습니다.     



 7) 학습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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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가 침 흘리고 쥐가 레버 누르는 것을 배우는 학문입니다. 아니, 생물이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학습’에 대해 연구한 학문입니다. 수많은 동물 실험과 학자를 알게 됩니다. 파블로프만 있는 줄 알았던 실험실에 얼마나 많은 연구자가 다양한 동물을 대상으로 시간을 보냈는지 알게 되는 수업입니다.

 그래도 실험 사례가 많으니 재밌게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네요. 학습을 하려면 어떤 능력이 있어야 할까요? 무언가를 인지해야 할 거고 개인 성향에 따라 방식도 달라질 거고, 뇌에서 어떤 작용을 통해 일어나는 지도 알아야 합니다. 뭔가 익숙한 말이죠? 학습 심리학을 공부하려면 다른 기초 심리학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있어야 됩니다. 좋게 말하면 다른 과목에서 배운 것이 겹치므로 두 번 공부하는 효과를 주지만, 그 과목들이 참 어렵습니다.     



 8) 성격 심리학
Photo credit: merwing✿little dear on Visualhunt.com / CC BY-NC-ND


 사람들 사이에 있는 개인차에 대해서 공부하는 학문입니다. 사람을 이해하고자 했던 다양한 학자와 그들의 이론을 정리해주고 있기에 기초 심리학 중에서 그나마 심리학과에 진학하게 된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분야입니다.

 그러나 학자가 많습니다.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학자 하나하나가 참 많은 이론을 주장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공부할 게 너무 많습니다. 즐기면서 하기는커녕 외우기만도 벅찹니다. 인지 심리학이 ‘오감’을, 생리 심리학이 ‘뇌’를 설명한다면 성격 심리학은 ‘정서’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느낌은 눈에 보이지 않죠? 그렇기에 개인이 느끼고 있는 정서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 역시 과학이 아닌 가설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도 다양한 가설이 있습니다. 네, 다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공부하자면 할 수 있는 분야이지만, 기초 심리학과 응용 심리학을 이어주는 가교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대개 2학년쯤은 되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이미 다른 기초 심리학에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상태에서 만나는 끝판 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그제야 응용 심리학을 하나씩 배울 수 있습니다. 대학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기초 심리학을 2년 동안 배우고 응용 심리학으로 넘어갑니다.     




 심리학은 재밌고 흥미로운 학문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거의 모든 것이 심리학과 연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대중 서적에서 취급하는 심리학, 일반적으로 재밌고 흥미로운 분야는 ‘응용 심리학’ 계열입니다. 

 모든 일에는 순서라는 게 있습니다. 높은 건물을 세우기 위해서는 지하 깊이 땅을 파야 합니다. 기초가 탄탄해야 응용 과정도 순탄히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심리학 전문가가 되려면 기초부터 제대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아기돼지 삼형제에서 만약 늑대가 나타나지 않았다면요? 힘겹게 벽돌집을 지었던 막내 돼지보다 간단하게 따스한 보금자리를 만든 첫째 돼지가 더 현명했던 거 아닐까요? 

 대중 서적에서 취급하는 심리학의 깊이로도 가십을 즐기기에 충분합니다. 애써 땅 파내고 기반 잡지 않아도 가벼운 선에서 다룰 수 있습니다. 특히 그 땅이 쉽게 팔 수 없는 단단하고 거친 땅이라면? 어지간한 각오를 하지 않았다면 애당초 시작을 안 하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이래도 심리학과에 오셔서 전문성을 쌓고 싶다고요?

 2년 노력하면 이제 알고 싶었던 내용을 배울 수 있으니까 공부도 쉬워지고 즐거울까요? 심리학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기초 심리학만 배울 때보다 재밌게 공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응용 심리학은 과목마다 특유의 질병을 걸리게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응용 심리학의 종류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각 과목에 동반되는 질병을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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