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교과서로 게임을 만들면 당연히 재미없지.

#007.

2017년 청주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소위 ‘신분제’ 학급 운영이 논란을 빚고 있다는 기사가 있었다. 일단 첨부.



사람마다 시각의 차이가 있겠지만, 난 기사 제목을 보고 짜증이 올라왔다. 내 입장부터 말하겠다. 나는 저 담임 선생님의 방식에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

1)
5학년 담임 선생님인 B교사는 칠판 오른쪽 환경판에 ‘오늘 나의 신분은?’ 이라는 제목으로 5칸에 위로부터 각각 왕, 귀족, 중인, 평민, 노비 캐릭터를 설치했다. 그리고 해당 칸에 한복 캐릭터의 학생 얼굴 사진을 부착했다.

2)
숙제, 청소, 선행, 욕설 금지 등 학기 초 약속을 토대로 상벌을 줬고, 그 여하에 따라 신분을 조정했다.

3)
학생 대부분 왕 칸에 있었다. 평민과 노예 칸에 학생 얼굴이 걸린 적은 없었다.

4)
이 신분제에 대해 일부 학부모들이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5)
아동보호전문기관 조사에서 학생들이 B교사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였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정서 학대 소견을 내렸는데 이는 일부 학생이 “그렇게 하는 것은 싫었다.”고 대답한데에 배경을 두고 있다.

7)
2017년 1학기 초에 여학생 간 학교폭력 건을 매뉴얼대로 적절하게 대응하지 않았던 점도 가중 징계의 원인이 되었다.

8)
그 결과 B 교사는 담임에서 교체된다.

이런 사실을 토대로 하나하나 짚어보며 내 의견을 말하겠다.


- 선생님은 어떤 의도로 이런 놀이를 시행했는가?

학교의 정의를 찾아보면 이렇다.

학교 : [명] 일정한 목적·교과 과정·설비·제도 및 법규에 의하여 계속적으로 학생에게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



교과서에 학교는 제 1차적 사회화 기관이며, 공식적 사회화 기관이라고 표현된다. 즉, 학교는 가정 이후에 접하는 공식적 ‘사회’이다. 이번엔 사회의 정의를 찾아보겠다.

사회 : [명] 같은 무리끼리 모여 이루는 집단.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형태의 인간 집단. 가족, 마을, 조합, 교회, 계급, 국가, 정당, 회사 따위가 그 주요 형태이다.



즉, 사회는 집단이다.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은 합의된 약속을 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더불어 사는 법을 익히게 되는데, 이게 바로 ‘사회화’이다. 학교가 사회화 기관인 이유는 지켜야 할 규칙과 공익이 있고, 이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학교가 ‘공부 가르쳐 주는 곳’ 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이 글을 보지 않아도 좋다. 볼 필요가 없다.)


선생님이 ‘신분제’ 운영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명하다. 학교라는 사회가 규칙을 정하고 시스템을 만든 후 그것을 지킨다면, 모두가 이를 이해하고 따라야 한다. 그리고 그 기회는 평등하게 실행되어야 한다.
규칙이 없을 때 권력은 대개 힘의 논리로 흐른다. 궂은 일에 모두가 내 일처럼 나서는 유토피아는 책에나 나온다. 그러므로 청소, 당번 등의 귀찮은 업무를 일부는 지키고 일부는 지키지 않는 상황이 일어난다. 이 때 이 선생님은 잔소리나 훈계보다 ‘게임화’를 통한 자발적 준수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잔소리나 훈계는 답을 정해두고 이를 주지시키는 일방향 소통이다. 반면 ‘게임’을 통한 체험은 자발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양방향 소통이다. 둘의 차이는 이렇듯 커다랗다.

물론 '왕부터 노비까지 인위적인 계급을 형성한 게 아예 문제가 없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결국 사람 사이에 계급을 형성한 거고 이에 따른 부작용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계급 형성 자체는 사회에서도 필요한 개념이다. 학기 시작부터 왕~노비 계급을 정한 후 절대 불변을 외친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합의된 규칙을 정하고, 그걸 조금 더 잘 지킨 아이들에게 상(편히 있음)을, 못 지킨 아이들에게 대가(허드렛일)를 줬을 뿐이다. 이게 정서 학대라고?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한 것이? 아이고. 손들고 서있으라고 했으면 FBI를 불렀겠다.

문제가 있는 건 이를 바라보는 일부 학부모와 아동 전문기관의 시선이다. ‘신분제’에 인권, 정서, 학대, 차별 등을 전부 집어넣어 본 그 시선! 이건 글 말미에 다시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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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분제’가 학급 아이들에겐 어떻게 받아들여졌나?

젠더 이슈 1편에도 얘기했지만, 의미의 완성은 하는 사람이 아니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있다. 하는 사람은 장난이었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기분이 나쁘다면 그건 그만 둬야한다. 하지만 반대로도 생각할 수 있다. 받아들이는 사람 역시 장난으로 넘길 수 있다면 그건 장난이다. 즉, 의미를 결정하는 건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본 사건에서 가장 귀 기울여야 하는 대상이 학급 아이들인 이유다.

대부분이 담임 선생님에 대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담임의 존재가 보호자이자 교육자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 아이들이 ‘신분제’를 마음에 들지 않다고 했으니 잘못된 방침이라고? 정서를 학대한 것이고 인권을 침해한 거라고?

억측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대로 진행했으니 인권침해라고 보는 자체가 과대 해석이다. 기관은 일부 아이들에 대한 인터뷰를 더욱 심층적으로 진행했어야 한다. 일부 애들이 어째서 그 제도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을까? 제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불합리성이 자신의 인권을 침해해서? 에이, 설마.
모두에게 환영받는 법이란 없다.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 라는 규칙이 대다수에게 합의되었다고 해서, 살인을 해서 벌을 받고 있는 이가 불만이 없는 건 아니다. 그로 인해 자신이 불편해졌으니까. 과속이나 신호 위반을 하면 벌금을 무는 제도 역시 사회 안전을 위해 합의되었으나, 벌금 딱지가 날아오면 참 싫다. 책임이란 이런 것이다. 손해를 보기 싫어서 지키지만, 지킴으로써 다수에게 이익이 된다.

애들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규칙을 지키는 것이 힘든 아이가 있었을 것이다. 벌점을 받을까 무서웠을 것이다. 그래서 하기 싫은 청소, 봉사 등을 해야 했다면 ‘신분제’ 제도는 그들에게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제도가 마음에 들어?” 가 아니라 “그 제도가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제도라고 생각하니?”, “담임 선생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물었어야 할 이유이다.
‘맘에 안 들면 잘못된 규칙이다.’ 가 대체 무슨 말인가. 공공의 안전과 균형을 위한 규칙이 공고히 된 것이 법인데.


- 정서 학대 및 인권 침해적인 부분이 있었는가? 그렇다면 얼마나?

위험한 말이긴 하나, 소신이니 밝히겠다. 필자는 초, 중학생까지는 동등한 인간의 선으로 규정하면 안 된다고 보고 있다. 같은 인간이니 원탁에 앉아 이야기를 하면 도리어 문제가 커진다.
참 많은 연구에서 청소년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이 또래 관계라고 말한다. 즉, 청소년에게 또래관계란 가치 판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어른의 모습을 한 누군가가 “안녕? 나는 친구야. 우리 동등하게 이야기하자. 하지만 나는 네 선생님이기도 해. 그러니 지킬 건 지켜야지!” 라고 하면 어떨까? 아동이 이런 추상적인 경계를 이해하고 조절할 수 있을까? 도리어 혼란스러울 뿐이다. 어찌 되었건 애는 애다. 존중받을 존재이지만 동시에 미성숙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초, 중학생을 대할 때는 ‘어른’, ‘가르치는 사람’으로써의 권위에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심지어 자명한 사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강제성을 가지고 이끌 때도 있어야 한다. 이것이 미성숙을 대하는 성인의 태도이다. 그 성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점검할 필요는 있겠지만, 초등학교 교실이 민주적이지 않았다고 벌을 주는 건 옳지 않다. 벌을 줄 거라면 투표권을 7세 이상으로 낮추고 얘기해라. 그러면 내가 잘못 생각했었다고 인정할테니.


- 처분의 근거와 시행은 정당했는가?

이 대목이다. 가장 화가 났고, 이 에세이를 쓰게 된 이유.
처벌 근거가 온당치 않다. ‘신분제’ 학급에 대한 처벌 자체도 말이 안 되는데, 처벌 근거가 하나 더 있다. 1학기에 여학생 간 학교 폭력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매뉴얼대로 처리하지 않았다는 건이다.
화재가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진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괴한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느 허름한 터미널에서 한 사람이 자신을 ‘희귀 성을 지닌 3대 독자’라고 소개하며 허기를 채울 간식 거리를 사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모든 상황을 일축하는 마법 같은 해답이 과연 존재하는가?
매뉴얼은 왜 만드는가? 예상 가능한 피해에 있어서, 유사시에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체계적인 대응을 위해 만든 게 매뉴얼이다. 매뉴얼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도 문제지만, 모든 일에 상황이 있고, 맥락이 있는데 무조건 매뉴얼만 따른다면 그것 역시 문제이다.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판단도 할 수 있기에 사람이다. 주입한대로 일 시킬 거면 차라리 로봇을 놓겠지. 매뉴얼이 도깨비 방망이도 아니고 전후 맥락 아무 것도 없이,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을 하다니 어이가 없다. 게다가 1학기의 학교폭력 사건과 2학기의 ‘신분제’ 사건은 별개의 사건이다. 이 일을 묶어서 처벌했다면, 평소에 말도 안 듣는 괘씸죄로 처벌한 것 이외엔 생각되지 않는다.


- 도덕 교과서로 게임을 만들면 당연히 재미없지.

다시 돌아와서, 결과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이를 바라보는 일부 학부모와 아동 전문기관의 시선이다. ‘신분제’에 인권, 정서, 학대, 차별 등을 전부 집어넣어 본 그 시선!

정부에서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게임을 하나 만들었다고 치자. 이 게임을 하면 정서적 차분함도 길러주고, 언어 학습, 수리적 추론 능력, 윤리 의식 증진, 스마프폰 중독 감소 등의 효과가 있어서 청소년 권장 프로그램이 되었다고 해보자. 이제 이런 프로그램이 나왔으니 다양한 청소년 문제가 해결되는 건 시간 문제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교육적 의도를 가득 담아 만든 게임이 재미가 있을 리 없다. 게임을 왜 할까? 적어도 ‘공부하려고’는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놀겠다는데 그 시간마저 공부에 쓰는 것을 과연 반가워할까? 학부모 빼고.

이 사건 역시 그렇다. 어른의 시선으로 볼 때 ‘신분제’는 인권 침해, 정서 학대, 차별 등이 있다. 문제이고, 이를 시행한 사람은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말 안 되는 일도 애들 입장에서는 그냥 놀이일 수 있다. 어른이 볼 때 유치하고, 더럽고, 잔인한 일도 애들은 깔깔깔 웃는다. 이는 애가 잘못되어서가 아니고, 아직 그 행위에 끼어있는 곁가지 해석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의 시선으로 무언가를 바라볼 때에는 점잖음을 최대한 빼야한다. 방귀 대장 뿡뿡이가 혐오 표현을 조장할 수 있는 ‘방귀’를 대상으로 했다고 해서 청소년 유해물로 지정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이번 징계로 인해 B교사는 다소 주눅 든 교과 운영을 보일 것이다. 체제에 납득했든, 자기 방어의 결과이든 어쨌든 간에 학급 운영에 대한 정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참 속상할 것 같다.

마무리하겠다. 이 대목은 문제 삼았던 일부 학부모들도, 정서 학대라는 소견을 밝힌 아동보호전문기관도 꼭 봤으면 좋겠다. B교사가 담임직에서 해임된 이후 파장에 대해 심리학자로써 감히 예측해본다.
2학기 중반까지 학생들과 끈끈한 정서적 유대감을 유지하고 있었던 담임 교사를 해임시킨 건 아이들에게 ‘상실 경험’이다. 아이들은 이 상실 경험을 자기 나름대로 납득하고자 할 것이다. 일부는 아무 잘못 없는 담임 선생님을 앗아간 기관 및 학부모를 통해 ‘어른에 대한 불신감’을 쌓을 것이다. 일부는 해임 이유에 대한 납득을 위해 자신 내면의 담임 선생님 기억을 ‘왜곡’할 것이다. 일부는 이전 친절했던 담임과 해임된 담임을 분리시키지 못 하고 ‘도덕적 가치관 혼란’을 느낄 것이다.
덧붙여 규칙이 마음에 안 들었다고 대답한 일부 아이들 중 몇몇은, 자신의 대답이 담임 선생님을 해임시켰음에 죄의식을 가지고 위축될 것이다. 가장 심한 몇몇은 자기 맘에 들지 않자, 규칙이 바뀌고 관리자가 처벌되었음에 만능감을 느낄 것이다. 앞으로도 이들은 체제에 대한 납득과 수긍보다 자신의 ‘비합리적 권리’를 외치며 ‘그릇된 인권’을 주장할 것이다.

정서 학대를 막음으로써 일어날 이 디스토피아적 전망이 부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정말 믿고 싶지 않지만 행여라도 이번 처분이, 해당 교사의 평상시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벌인 보복성 처분이라고 한다면... 축하한다. 당신들의 짧은 판단이 만든 거대한 결과 속에서 “우린 평화 수호자야~!” 하면서 자축이나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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