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차선 #008.
상담을 ‘장사’하는 사람과 ‘제공’하는 사람
‘착한 직업’은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 세상에 병이 없어진다면 의료계 종사자는 굶어죽는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법조계 종사자는 굶어죽는다. 상담도 마찬가지다. 힘든 일이 없는, 그래서 마음의 상처를 지닌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되면 그들은 굶어죽는다. 그렇기에 아이러니하다.
상담사는 아픔의 녹을 먹고 사는 직업이다.
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그 생각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상담이 ‘마음이 힘든 사람을 고쳐주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상담은 문제 해결에서 끝나지 않는다. 도리어 문제점을 발견하고 고치겠다는 마음가짐 자체가 상담의 편협함을 만들어낸다. 그냥 다 같은 사람인 거다. 힘든 점이 있다면 그것 역시 삶의 일부로 인정하며, 성숙한 나를 ‘공부’해가는 과정. 그렇기에 상담은 ‘성장과 성숙’의 심리학이다.
이런 시점에서, 상담을 ‘장사’하는 사람과 상담을 ‘제공’하는 사람의 차이는 그 지향점으로 볼 수 있다. 상담을 장사하는 사람은 ‘상담이 당신에게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다.’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상담을 제공하는 사람은 ‘상담이 당신을 더욱 견고하게 할 수 있다.’에 초점을 맞춘다. 그렇기에 상담은 ‘힘든 일 있으면 꺼내놓는’ 일 이상의 범주를 담은 거대한 개념이다.
묻고 답하는 모든 일이 상담이다.
심리학의 역사는 짧지만, 심리 및 상담의 역사는 길다. 모르긴 몰라도, 인류가 언어를 사용함과 동시에 상담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대화를 하는 행위 자체가 매우 얕은 범주의 상담이니까. 그렇기에 ‘상담사’가 되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타인의 말을 알아듣고 그에 대답만 해줄 수 있으면 된다.
그러나 ‘상담 전문가’가 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전문가는, 해당되는 일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실제적인 적용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람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 쉽지 않은데 실제적인 적용까지 해야 하다니. 그래서 쉽지 않은 것이다.
‘힘든 일(생활의 문제점)을 해결한다.’는 얕은 수준의 상담이다. 그 이상을 할 수 있어야만 전문가라는 호칭을 얻을 수 있다. 내가 경험했던 바로, 전문가가 진행하는 상담은 경이롭고 찬란했다.
대중들은 상담 전문가를 원하는가?
그러나 대중들이 ‘상담 전문가’를 원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글쎄요...” 이다. 뛰어나고 실력 좋은 사람에게 상담 받고 싶은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라고 하지만, 사실 아니다. 상담에 관심을 갖는 일반인의 수요는 가볍다. 그들의 고통과 아픔이 가볍다는 말이 아니다. 원하는 바가 “나 힘들어요. 이 힘든 부분을 ‘해결’하고 싶어요.” 까지라는 거다, “더욱 성숙한 사람으로 발전해서 세상의 이바지가 되고 싶어요.” 가 아니다. 애당초 이것이 상담의 범주라는 사실 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이 부분을 효과적으로 파고 든다. 문제를 넣으면 답이 나오듯이 효과 빠른 해결을 상담으로 부각 시킨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부분을 그럴듯하게 제공해준다. 원하는 사안만 집중적으로 공략하여, 빠른 효과, 높은 성취, 저렴한 가격으로 진행한다. 시장 경제적으로 이보다 좋은 것이 또 있겠는가?
덧붙여 그 과정이 재미까지 있으면 금상첨화. 그래서 상담을 ‘장사’하는 사람들은 신기하고 재미있는 흥밋거리를 통해(재미) 당신을 힘들게 하는 문제를(집중 공략) 짧은 시간 내에(빠른 효과) 효과적으로 고칠 수 있는(높은 성취) 아이템을 저렴한 가격(낮은 비용)으로 판매한다. 그 시도는 매우 성공적이다. 수요자가 원하기 때문이다.
상담을 ‘제공’하는 사람들은 다르다. 성장은 노력과 실패 등 수많은 힘이 드는 과정이다. 마냥 재밌지 않다. 보고 싶지 않았던 내면의 깊은 문제를 점점 발견하는 과정이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잔인하게 말하면 평생을 해도 부족하다). 성취는 더디고 오히려 퇴보되는 듯 싶기도 하며 상담료는 비싸다. 허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면 나라도 안 하겠다 이런 상담은.
뜨내기 사기꾼과 위세떠는 샌님의 기 싸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보니 두 접근 간에 서로를 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사람 마음 갖고 장사하는 뜨내기 사기꾼 VS 자기들만의 학문에 갇혀 고고한 척 위세 떠는 샌님이다.
상담의 경이로움을 체험한 나로써 당연히 상담을 ‘제공’하는 분들의 편이다. 객관적으로도 그게 더 옳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만의 리그인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1) 속도 늦추기 와 2) 연계 활성화 이다.
속도 늦추기란 ‘내가 전문가이기 이전에 어땠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상담을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 대부분은 상담을 ‘고민 해결’ 정도로 생각한다. 공부하다보니 그 이상의 세계가 있구나 하며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다. 그 체험 자체가 소중하다보니 이 좋은 일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여전히 상담의 시작은 ‘고민 해결’이다. ‘힘든 일의 해결’이며 ‘나를 바꾸고 싶다.’는 처절한 절규다. 이 소망을 악용하여 전문 지식 없는 자극성만 추구하는 이들에게 손가락질하며 ‘저들은 잘못 되었다.’ 라고 해봐야, 소용 없다. 직접 행동해야 한다.
진짜배기 전문가들이 자세를 낮추고 시선을 낮춰야 한다. 그래서 뜨내기 지식으로 전문가 이름을 단 가짜배기들과 경쟁해야 한다. 더 이상 자극적이고 검증되지 않은 얕은 상담이 상담의 전부인 양 대중들에게 인식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전문가로써의 속도를 늦춰서 일반적인 인식과 함께 젖어가야 한다.
연계 활성화란 자신의 한계와 역할, 그리고 뛰어난 상담가에 대한 존중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모두가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상담 전문가는 매우 높은 인격 수행을 동반하는 직업이다. 평생을 마음 공부를 하며 수양해야 하는 일인데, 모든 상담사에게 이 정도 수준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얕은 수준의 상담을 하는 이들이 본인의 한계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대중의 수요 이상의 작업이 필요할 때는 ‘전문가’에게 연계토록 하는 상호 존중이 있다면 이는 마찰이 아닌 통합된 단계로서 이어지게 된다. 수요자들이 원하는 부분을 인정하고, 얕은 상담을 기초 과정으로 시작한 후, 점차 심화 과정까지 해나갈 동기를 형성하는 계단식 심리 상담인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달리다가 일반 국도로 나오면 시속 80Km/h도 굉장히 느리게 느껴지는 경험 많이 해봤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느리고 답답하게 느껴지더라도 국도가 원하는 속도가 있다. ‘나는 빠른 거 경험해봤으니까’ 라며 고속도로에서의 속도를 고집한다면, 문제가 있는 쪽이 누구인지는 자명하다. 차분하게 오른쪽 차선으로도 달려버릇 해야 나중에 빠른 속도로 낼 때 왼쪽 차선으로 주행 할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느린 차는 양보해주고 빠른 차는 달려주고 하면서.
나는 옆 차에게 삿대질하며 욕하는 도로보단, 흐름에 맞게 조절하며 양보하고 존중해주는 도로에서 사고가 덜 난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