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들어가면서
정신건강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며 정신의학, 심리학, 상담 등이 주목 받고 있습니다. 서점에 가면 바로 알 수 있어요. 매장마다 심리·인문 코너가 따로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스트 셀러 코너에 매번 새로운 심리 관련 서적이 올라와요. 이러니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이 사랑 받는 시기입니다.
개인적으로 심리학이 주목 받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사람들이 살기 팍팍 & 막막해졌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는 심리학 이전에 각광 받았던 ‘성공학’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유행이라는 게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정신 건강을 논하는 건 일부 (그들이 말하는) 정신병자에게나 해당하는 얘기였어요. 오로지 공부. 좋은 대학 입학, 대기업 취직, 조건 좋은 사람과 결혼, 아이 낳고 도란도란 키우기. 이렇게 정해진 삶의 수순을 잘 지킬 수 있다면 그게 곧 성공한 인생이었어요.
이를 위해 시간을 아끼고, 체력을 쓰고, 노력과 열정으로 실력을 쌓아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앞설수록 성공할 확률이 커졌으니까요.
1) 남들은 갖추지 못 한 고급 기술을 쌓는다.
2) 고급 기술이 있는만큼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
3) 쌓아놓은 부를 바탕으로 가족을 이루고, 잘 키운다.
정해진 성공 공식이 있었죠.
그런데 대부분 이 공식대로 살다보니 부작용이 생깁니다.
1) 남들은 갖추지 못 한 고급 기술을 쌓는다.
1-1) 고급 기술을 쌓으려면 남들보다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
1-2) 그런데 남들도 열심히 공부한다.
1-3) 나는 열심히 공부하는 남보다 훨씬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1-4) 쉴 틈 없다.
2) 고급 기술이 있는만큼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
2-1) 고급 기술이 없으면 아무리 노력했다한들 좋은 대우를 받지 못 한다.
2-2) 노력은 했으나 상위 몇 %에 들지 못 한 이들은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 한다.
2-3) 지치고 억울하다. 더 열심히 하지 못 한 내가 밉고, 나를 알아주지 않는 남이 원망스럽고, 나를 외면하는 세상이 싫다.
3) 쌓아놓은 부를 바탕으로 가족을 이루고, 잘 키운다.
3-1) 치열하게 살기 위해 쌓은 건 돈이 아니라 빚이다.
3-2) 앞으로 살아갈 미래는 빚을 갚아나가는 삶이지, 부를 쌓아가는 세상이 아니다.
3-3) 가족을 이룰만한 마음의 여유, 경제적 여유가 없다.
성공의 문턱이 지나치게 높아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잘 살겠다는 웰빙 열풍이 잘 버티겠다는 힐링으로, 저축에서, 욜로(한 번뿐인 인생 지금을 즐기자!)로 갔던 관심이 지금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추구)로 흘렀습니다.
예전에 상대에게 건내는 좋은 말이 ‘파이팅!’이었다면 요즘은 ‘괜찮아’ 잖아요. 이 말 자체가 더 이상 ‘성장’보다 ‘휴식’과 ‘위로’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보여요.
그러니 슬픈 말입니다. 환절기에 병원이 붐비듯, 심리학에 대한 관심 급증은 역설적으로 현대인의 취약한 정신 건강을 증명하거든요.
“어쨌든 대중적으로 각광받으면 종사자한테는 좋은 거 아니야?”
종사자로써 전공 영역이 대중들의 관심을 받으면 좋지 않나? 라고 묻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네요.
허나, 현재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는 심리학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밝히자면 ‘염려’ 스럽습니다.
대중 친화적으로 가는 것과 달리 심리학에 대한 대중들의 이해는 이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거든요.
“저 심리학과를 나왔어요.”
“오오~!”
익숙한 풍경입니다. 강의에 갔을 때도, 익숙치 않은 곳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도, 미용실 잡담 중 직업이 무엇인지 얘기할 때도 마찬가지에요. ‘심리학과를 나왔다.’, ‘심리상담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대부분이 놀랍니다.
사람을 보자마자 무슨 심리인지 바로 알 수 있느냐, 그림 보면 성격을 파악할 수 있냐, 내가 지금 무슨 생각 하는 지 맞춰봐라 등 얼토당토 않은 요구가 뒤따릅니다. 대개 농담이지만 그 중 몇몇은 진지한 얼굴로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요.
“내 친구가 지금 우울증인데 너랑 말 좀 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친구네 아들이 고2인데 공부는 안 하고 게임만 한 대! 네가 가서 잘 타이르고 와.”
“제가 사람들 앞에만 서면 위축되는데 일주일 후에 중요한 발표가 있어요. 고쳐주세요.”
심리학과에 들어가면 초능력을 배운다고 믿는 걸까요?
이게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게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심리상담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을 마법 같이 풀어주는 해결사? 나도 모르는 나를 꿰뚫어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주는 역술가? 아니면 한 시간 동안 앉아서 잡담 떨다가 비싼 돈 받아가는 어... 사기꾼?
“그럼 심리학이 아무 쓸모 없다는 거냐?”
그럴리가요. 심리학은 삶에 커다란 도움을 줍니다. 저 역시 그랬어요.
어린 시절 저는 운동 신경이 좋지 않아 아이들과 뛰어놀지 못 했습니다. 항상 병을 달고 살다가 초등학생 때 두 번, 중학생 때 두 번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어요. 특히 중학생 때는 수술이 필요할 정도의 커다란 병을 앓았습니다. 학교보다 병원이 친숙했어요.
그러다보니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날이 많았어요.
그랬던 제가 지금은 수많은 사람 앞에 서서 말하는 강연자가 되어있습니다. 나의 강점과 단점을 명확히 알아가며,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돈을 쓰는데에 죄책감이 있었습니다. 병원을 전전하다보니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고, 부모님께서 싸우는 모습을 항상 봐야했습니다.
‘내가 없었으면 그나마 부모님이 싸우지 않았을텐데.’
어릴 때부터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인지 저 자신한테 쓰는 돈이 너무 아깝고 쓸모없게 느껴졌습니다. 먹고 싶은 거 참고, 갖고 싶은 거 없고, 불편한 거 견디며 살았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했지만, 지금 저는 프리랜서를 하며 ‘안전한 삶’보다 ‘가슴 뛰는 삶’을 선택했어요. 이런 모험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어린 시절 가졌던 ‘내 존재에 대한 죄책감’을 심리학으로 다룰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항상 자신감 없고 눈치 보던 저였지만 제 생각을 자신 있게 책으로 낼 정도로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심리학을 만난 덕에 가능했어요. 심리학은 제 인생을 크게 바꿔 놓았습니다.
‘나도 바뀌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 나처럼 해라!’
이런 식의 연설은 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저이고, 여러분은 여러분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어떤 노력을 통해 변화할 수 있었는지를 길게 얘기하지 않을 거에요.
그러나 ‘심리학’ 자체에 대한 추천이라면 기꺼이 할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심리학은 ‘나에 대해 알 수 있는’ 학문이니까요.
‘사람 마음을 읽는다.’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능력입니다. 급한 일로 돈을 빌려달라는 친구 마음을 읽어 상환 의지가 있는 지 알 수 있다면, 짝사랑하는 사람의 속마음을 알 수 있다면 세상을 좀 더 내 뜻대로 안전하게 살 수 있을테죠. 뿐만 아니라 까다로운 직장 상사의 변화무쌍한 요구에도 맞출 수 있고, 관계에서 상처 받을 일이 없을 겁니다.
내 삶을 안전하고, 탄탄대로로 바꿔줄 마법의 무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심리학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흐름이 지금과 같다면 반가움보다 노파심이 앞섭니다. 지금의 심리학은 뭐랄까. 허세 가득 과장 된 드라마 같거든요.
“아이가 잘 먹어요.” 와 “아이가 소시지만 잘 먹어요.”는 느낌이 다르잖아요.
다양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는 과정에 맛있는 거, 좋아하는 거도 함께 먹어야 합니다. 땡기는 것만 먹고, 나머지는 먹지 않는다? 돌아오는 건 병 뿐이죠.
현재 대중들에게 각광 받는 심리학도 마찬가지에요. 편식합니다.
혈액형에 따라 성격을 나누었던 혈액형 성격론이 우리나라를 꿰뚫었던 때가 있었어요. 관련 웹툰, 영화, 드라마가 쏟아졌고 조금만 토라져도 “너 A형이지?”를 들었어요. (네, 저는 A형입니다.)
대중들의 인식이 발달하고, 유사 과학에 대한 검증이 보다 정교해지며 이런 경향이 줄었을까요?
세상에는 여전히 수많은 성격 테스트가 있습니다. 가령 이런 식이죠.
<당신이 사막에 떨어졌습니다. 무엇을 가장 먼저 할 건가요?>
이런 테스트를 진지하게 듣는 사람은 없습니다. 맞으면 신기하고 틀리면 에이~ 뭐야. 하고 넘어가죠. 이른바 재미있는 가십거리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게 성격 검사의 틀이 되면 말이 달라집니다. MBTI의 예를 들어볼까요? 16 유형들이 각각 사교 모임을 만들어서 자기 유형의 공통점을 찾고 다른 유형들을 평가하는 일이 다분합니다.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심리에 대한 이해가 얕고 편파적인 분들의 경우 '유형'을 절대적으로 신봉합니다.
심리학은 사람의 심리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렇기에 100% 그렇다/아니다는 없다고 보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향성을 찾아내고자 노력합니다. 그래야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으니까요. 그 경향성은 말 그대로 '참고'입니다. 맹신하면 안 돼요. 사회과학에 진리란 없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유형' 기반 이론은 위험합니다. 특히 심리학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이가 단순히 '유형'에만 빠졌을 때 생기는 문제는 큽니다. 사람에게서 특징을 찾아내는 게 아닌 '유형' 속에 사람을 가두거든요. '유형' 외의 모습이 나타나면 그건 '이상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성격유형 검사가 대중화가 되어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처럼 취급되는 순간 상당한 부작용이 시작됩니다. 소화 능력 없이 우유를 마시는 꼴이에요. 우유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유당불내증이 있는 사람에게 우유를 먹이는 건 문제가 있잖아요?
심리검사 툴은 MMPI-2, SCT, PAI, TCI, K-WAIS 등 상당히 많습니다.
이들은 왜 대중적으로 퍼지지 않을까요? MBTI, 애니어그램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바로 간편성과 명료성입니다.
MBTI를 겉핥기로 익힌 사람은 “너는 ESTP 구나!”, “ESTP 유형은 이러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 어때? 맞지?” 라고 얘기합니다. 16가지 유형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간편합니다. 유형마다 구분이 확실하므로 모호하지 않아요. 무엇보다 재밌고 쉽습니다. 훌륭한 가십 거리입니다.
하지만 이는 기본 전제에 어긋납니다.
성격이라는 게 애초에 모호한 개념이에요. 원래 모호한 것을 조금 더 쉽고 간단하고 딱 떨어지게 얘기하다보니 군집 간의 구분을 짓습니다. 그렇게 그어진 선 안의 성격은 모두 같은 유형이 됩니다.
그 사람을 보지도 않고 일본인은 전부 ~~하다. 남자는/여자는 OO해야 한다. 당신은 반드시 ☆☆하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공통 분모를 바탕으로 나누었으니 분명 ‘경향성’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경향성’ 내에 스펙트럼이 존재해요. 누구는 ‘매우 그렇다.’ 인 반면 누구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복잡하고 모호하니까요.
물론 성격 검사를 시행하는 전문가들은 이런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의 손을 떠나 대중적인 가십이 되어버린 성격유형검사는 그렇지 못 합니다. 반드시 알아야 할 주의점을 익히지 못 한 채 확산만 합니다.
그들은 쉽게 취급하고 간편하게 믿습니다.
이런 검사는 아무리 정교한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혈액형 테스트만도 못 합니다. 지식만큼 중요한 게 ‘지식의 활용’이니까요.
심리학은 우리 삶에 큰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범람하는 심리학 정보는 심리학에 대한 올바른 사용법 대신 간편성과 명료성만 부각합니다. 때문에 심리학을 오해하거나, 심지어 잘못된 심리학 정보를 정답처럼 알고 있는 경우가 많죠.
심리학은 살아가는데 훌륭한 무기입니다. 그러나 사용법을 제대로 알 때 한정입니다.
사용법을 숙지하지 못 한 채 휘두르는 심리학은 나를 해치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며, 인생을 도리어 힘겹게 하고, 관계를 망칩니다.
이젠 심리학이라는 무기에 대한 오해를 풀 때입니다. 이해를 할 때입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삶을 살아갈 때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는 심리학을 소개하겠습니다. 동시에 그 무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적절한 사용법을 알려주겠습니다.
매력적인 무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알려주는 본격 심리학 안내서. 지금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