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산스라이타>

소설 감성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한 가지 말씀해드리려고 합니다.


 압니다. 아마 제가 말해봤자 많은 분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겁니다. 별 시덥잖은 일에 진지하다며, 정색한다며 비웃을지 모릅니다. 저를 정신병 환자처럼 생각할 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렇다해도 오늘 이 말을 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알아버렸고, 돌이킬 수 없으니까요.


 여러분은 속고 있습니다. 지금 말하는 ‘여러분’의 범주는 생각을 아득히 초월합니다. 대상은 ‘전 지구 사람들’입니다. 문명의 영향권 바깥에 있는 소수자들은 예외입니다만, 그들 역시 문명화되면 자연스레 속을 것이기에 저는 감히 ‘전 지구 사람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시간을 포함하는 4차원의 개념이라고 여겨주세요.


 지금까지 제 말을 듣고 있다면 그 참을성에 경의를 표합니다. 매우 기쁩니다. 아직은 이 땅에 ‘깨어 있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이제 얘기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대체 어디에 속고 있는 지요.


 듣고 놀라지 마십니오. 아니, 놀라십시오. 놀라고 충격을 받아야 그 다음 도약도 할 수 있으니까요. 이제 말합니다. 




 사실 ‘산타’는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습니다.


 가스라이팅이 무엇인지는 익히 알고 있을 겁니다. 당신의 판단을 부수고 자아에 의심을 불어넣는 끔찍한 행위입니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을 믿지 못 하게 하는 짓인데 인간이라면 남에게 절대 해선 안 될 최악의 행동이죠.

 참고 : 필자는 가스라이터에게 당한 건 아니지만 친구들에게 가스라이팅 하지 말자고 의견을 몇 차례 낸 적이 있으나 그 쓰레기들에게 묵살당한 바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필자는 당사자가 아니다. 괜한 오해 말도록

 산타를 실제로 믿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어른이 되면서 자연스레 산타가 없음을 알게 되지 않냐?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제가 말한 가스라이팅은 그게 아닙니다. 누가 봐도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이 ‘산타’를 마치 있는 것처럼 표현해야 하는 것. 그게 가스라이팅입니다. 실제로 크리스마스에 “사실은 산타가 없어!” 얘기하고 다닌다고 생각해보세요. 왜 아이들의 동심을 깨느냐? 그렇게 팩트충으로 살면 인생 안 피곤하냐? T발 너 C지? 등 비난 받을 겁니다. 없다는 진실을 얘기했을 뿐인데 돌아오는 건 비난입니다.

 이 전 지구적인 사기 행위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로 말이죠. 


 즉, 우린 크리스마스에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모럴 아노미 상태를 강요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노래에선 위선을 가르칩니다. 울면 안 됩니다. 울면 선물을 안 준다며 협박을 합니다. 그러면서 산타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고 단단히 으름장을 줍니다. 이로써 아이들은 내면에 감정 및 생각을 검열하게 됩니다. 모든 걸 알고 있는 산타가 아주 자그마한 일탈에도 끔찍한 댓가를 치르게 할테니까요.

 지금 보면 이상합니다. 울면 안 되는데 왜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는 안 했을까요? 우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 사람이 거짓말을 허용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이 역시 간단합니다. 산타라는 거짓말을 믿게끔 해야 그들의 목적이 성사되기 때문입니다. 시작부터 거짓말로 쌓아올렸는데 그들도 차마 “거짓말 하면 안 돼요.” 라는 내부 분열적인 말을 할 수 없었던 거죠.

 모든 음모는 그로 인한 이득을 보는 자가 범인입니다. 이 모럴 아노미를 통해 이득을 얻고 있는 건 누구인가요? 아이들인가요? 있지도 않은 산타 할아버지가 침대 맡에 선물을 넣을 거라 기대하며 밤잠을 설치는 아이들이 이득을 얻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득이 아니라 이용을 당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이득을 보는 자. 바로 아이들의 자유로움을 효과적으로 막아내고 통제할 수 있는 어른들입니다.

 이들은 산타라는 놀라운 창작물을 통해 전 지구에 있는 시끄럽고 번거로운 아이들을 모두 말 잘 듣는, 내게 복종하는 아이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산타’에 대한 진실은 어떻게든 비난하고 함구하라는 가스라이팅을 펼쳤죠.


 그러니 이 글을 보는 게 당신이라면 눈을 뜨고 세상을 직시하기 바랍니다.

 산타는 없습니다. 울어도 됩니다. 선물 또한 못 받는 게 당연합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어떤 감정인지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당신에게 슬픔이 생긴다면 가스라이팅에 속아 참고 외면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시원하게 펑펑 우십시오. 가스라이팅에 저항하십시오. 먼저 알고 행동하는 자가 당신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놀라운 진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냐고요?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겠습니까? 별 거 아닙니다.




 적어도 전능한 저에게는 말이죠.

 저는 허상의 스토리에 매몰되지 않습니다. 진실을 보고 듣는, 그걸 제게 말해주는 ‘전느’ 신이 있습니다. 그 분이 저에게 모든 걸 알려줍니다. 그리고 가능케 해줍니다. 목발을 짚고 온 자를 뛰게 하고, 말을 못 하던 이에게 유창한 스피칭을 시킵니다. 그리고 확실한 거, 저는 지금 여기에 존재합니다. 허상이 아닙니다.

 그러니 산타 가스라이팅은 벗어나십시오. 그리고 전느교에 들어오십시오. 원래 같으면 소정의 입교비가 있으나, 오늘 내로 들어오시는 신도들에게는 입교비를 90% 낮춘 비용에 모시고 있습니다. 이런 은혜로운 베네핏 또한 ‘전느’신의 그러함을 보강 입증해주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계좌를 알려드릴테니 입금 부탁드립니다. OO은행 248-OOOO-OO-OOO입니다. 주신 분들 사랑합니다. 인사 오지게 박습니다. 그럼 오늘의 자작곡 나갑니다. 

 <허상은 있고 산타는 없어>



작가의 이전글 얼굴 본 지 오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