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시련이 다가올 때, 지혜로운 사람은 힘차게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다. 역경을 이겨내고 위대한 일을 이룬 인물 가운데 다산 정약용을 들 수 있다. 다산은 조선 후기 실학자로 개혁 군주 정조와 함께 조선의 개혁을 담대하게 추진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정조 사후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39세에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에게 유배는 생이 통째로 무너지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벼슬길은 끊겼고, 주변 사람들은 참수되거나 유배되었으며 가문은 폐족이 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귀양살이 속에서 희망조차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다산은 갑작스러운 시련 앞에서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유배 생활을 ‘여가’라 여기며 자신을 다독였고, 긍정의 마음으로 삶을 다시 바라보았다. 학문에 몰두하며 독서와 저술에 힘썼고, 세 번이나 복사뼈에 구멍이 날 정도로 정진했다고 전해진다. 그 결과 그의 저술은 우리 역사상 가장 방대한 양과, 모든 영역에 걸쳐 남게 되었다.
강진 유배지에서 마음의 안정이 절실하여서 할 수 있는 것은 글 쓰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들녘을 바라보며 들리는 소리며, 보이는 풍경을 글로 옮겼다. 그것은 곧 글이 되었다. 강진 들판의 약동하는 생명력과 농무들의 모습을 노래하며 세상과 소통하였다.
다산이 유배 시절 전라우도 수군절도사 이민수에게 전한 어사 재기(於斯
齋記)를 보면 얼마나 주변에서 좋은 것을 찾아내 억울하고 불안한 유배 생활을 극복하여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 했는지 알 수 있다. 이민수가 거처에 바로 이곳(於斯齋)이라는 편액을 달고 글을 간청하였다.
「어사 재기(於斯齋記)」에는 그의 지혜가 잘 드러난다. 이 글에서 다산은 ‘저것’과 ‘이것’을 대비하며, 멀리 있는 것을 부러워하기보다 지금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안에 다산 시문집 제13권에
어사재기(於斯齋記) 산문(한문)을 쉽게 정리한 글이다.
“자신에게 있지 않는 물건을 바라보고 가리키면서 ‘저것’이라고 말하고,
자신에게 있는 것을 깨닫고 굽어보면서 ‘이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내가 이미 내 몸에 지닌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미 지닌 것이 나의 바람에 미치지 못한 면 마음은 만족할 만한 것을 선망하여 바라보고 가리키면서 ‘저것’이라고 말하기 마련이니, 이것이 천하의 공통된 병통이다. 땅의
형태는 둥글고 사방의 땅은 평평하니, 그렇다면 천하의 내가 앉아 있는 자리보다 더 높은 곳은 없다. 그런데도 백성들 중에는 오히려 중국의 곤륜산에 오르고 항산 산과 곽산에 올라서 높은 곳을 찾아다니는 자가 있다. 지나간 일은 좇을 수가 없고 미래의 일은 기약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천하에 지금 이 상황보다 더 즐거운 때가 없다. 그런데도 백성들 중에는 오히려 좋은 수레와 말을 수고롭게 하고 논밭을 탕진하면서 즐거움을 구하는 자가 있다. 땀이 흐르고 숨이 차는데도 종신토록 미혹되어서 오직 저것만을 바라고, 이것이 누릴 만한 즐거운 것임을 모른 지가 오래
되었다.” (다산 시문집 제13권 어사 재기)
다산은 57세에 귀양살이를 마치고 고향인 경기도 남양주 조암으로
돌아와 저술 활동을 하다가 74세에 세상을 떠났다,
시련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달라진다. 다산처럼 현재를 인정하고, 지금 가진 것 속에서 의미를 찾는 지혜가 있다면 우리는 어떤 역경도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다. 시련은 불행이 아니라, 지혜를 배우는 또 하나의 기회일지 모른다.
책 : 다산의 평정심 공부, 진규동 저. 다산의 마음(산문집), 박혜숙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