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언덕을 지나 아파트 사잇길로 올라가면, 소나무와 참나무 숲이 우거진 아름다운 산기슭이 나온다. 그곳에 서면 ‘여기가 천국이구나’ 싶은 평화로운 밭이 펼쳐진다. 그 밭에서 한 해 농사를 돌아본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자, 완두콩과 상추를 시작으로 감자, 땅콩, 고구마, 토란, 생강을 심었다. 가을에는 배추와 무를 심어 병충해를 잘 견뎌주길 바랐고,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며 지켜보았다.
농사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다. 흙을 고르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지만, 결국 작물을 자라게 하는 것은 자연의 몫이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한 해 농사는 수포로 되기도 한다.
올해 여름 평균기온은 25.7도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6월 중순부터 폭염과 열대야가 일찍 시작되었고, 8월 처서 이후에도 늦더위가 이어졌다. 밭에 나갔다가도 더위 때문에 되돌아오는 날이 많았다.
평소라면 7월에 오던 장맛비가 올해는 9월~10월에 이틀에 한 번꼴로 내렸고, 강수량과 강수일수 모두 역대 최고였다. 우리 밭에서도 배추는 무름병이 생기고, 마늘과 양파는 파종이 지연되었으며, 포도는 열매가 제대로 익지 못하는 피해가 있었다.
시골에서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농가들은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여름 고온과 잦은 비로 인해 벼나 배추 등의 병해, 품질 저하, 수확 포기 소식이 이어졌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농사가 이렇게 고된 일인데 ‘시골 가서 농사나 짓지’라는 말이 얼마나 가벼운 말인지 새삼 느꼈다.
올해는 밭농사 면적이 늘어 걱정이 많았지만, 다행히 이웃의 지인 세 분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농사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우리가 모두 내년에도 기후 재난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지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 또한 유기농·친환경 농사법을 실천하며 비료와 농약 사용을 줄여 기후 재난 방지에 동참하고, 토양 산성화를 막아 더 건강한 흙에서 농사를 짓고 싶다.
내년에는 흙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배우며 마음의 쉼을 얻고,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자연으로부터 위로와 희망을 얻으며 평안하게 살고 싶다.
“땅은 자연의 은혜를 받는 문을 열어준다.”(토머스 에디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