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고마운 보물

by 김시을

여행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기차 여행이다. 서민적이고 안전한 교통수단으로써 기차는 우리에게 언제나 안성맞춤이었다. 우리 가족의 생계 또한 기차 덕분에 이어졌으니 내게 기차는 참으로 고마운

존재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기차는 우리 가족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다. 어머니는 장사를 하시기 위해 전국을 기차로 다니셨다. 길게는 일주일 짧게는 2박 3일 동안 집을 비우시곤 했다. 읍내 역 기차에서 내려 집으로 오시면 번 돈으로 식량을 사고 가끔은 맛있는 간식도 사 오셨다. 어린 나에게 그것만큼 기쁜 일도 없었다.


우리 오 남매가 매일 기차를 기다린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하루에 두세 번 지나가던 기차가 오르막길을 오를 때면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힘겹게 달렸다. 그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반가움에 기찻길로 달려 나가곤 했다. 혹시나 어머니가 그 기차에 타고 계시지 않을까 기대하며 마음이 설렜다. 하지만 기차가 지나가도 어머니가 보이지 않으면 어린 마음에 서러워 눈물이 나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 기차역까지는 이십 리 떨어져 있었다. 대부분 걸어서 다녔고 가끔은 승합차를 이용하기도 했다.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읍내 역에서 집으로 가던 길 철길로 가면 가깝지만, 거대한 공동묘지를 지나야 했다. 겁이 많던 나는 돌아서 가자고 떼를 썼고, 결국 먼 길을 돌아서 집으로 오기도 했다. 이모부가 기차역 가까운 읍내로 이사하면 잘살게 된다고 말씀하시어 그 말에 희망을 품고 소달구지에 이삿짐을 실어 읍내 도시로 이사 갔지만 가난은 여전했다.


읍내로 이사한 후에도 어머니는 중년 이후까지 우리를 먹이고 가르치기 위하여 기차를 계속 타고 전국에 장사하러 다니셨다. 우리 어머니는 여장부로서 쉬지 못하고 평생을 고단한 삶을 사셨다. 다행히도 건강한 복을

주시어 큰 병으로 고생하지 않으시고 무병장수 하셨다.


며칠 전, 나도 오랜만에 기차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어머니와 함께 장사하려고 온양온천 여인숙의 하룻밤 추억이 떠올라, 목적지를 온양온천으로 정했다. 토요일 무궁화호 열차(수원–온양온천)를 예매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무궁화호는 가장 낮은 등급의 기차지만 너무 깨끗하고 조용했다. 창가에 앉아 가을 풍경을 바라보니 기차가 달릴수록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들판과 산등성이가 눈길을 잡아끌었다. 노랗게 물든 논과 밭이 추수를 앞둔 들녘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고 그 순간 마음이 참 평안했다.


온양온천 시가지와 주요 관광지 현충사 등을 여행하였다. 그리운 그 시절의 기차여행을 앞으로도 승용차 이용은 지양하고 느린 기차 여행을 하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도서관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