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좌표
북한산
새벽에 일어나 북한산을 쳐다보다,
문득 해 뜨는 곳이 북쪽 하늘에 있는 걸 보니
내 집이 북한산보다 더 북쪽에 있더라.
해 뜨는 곳이 매양 있던 곳이 아닌
북쪽 하늘에 가까이 있는 것도,
내가 저 산 새벽노을 아래로
밝은 아침이 오기만을 고대하는 것도,
사람 사는 일이 또 이와는 다르게
마음먹은 대로 숫제 되는 것도,
세상사가 그리 꽤나 녹록지만도 않더라.
서울 북쪽에 살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쳐다보았을 저 산도...
나는 살고 있는 형세를 알지 못한 채
이렇게까지 북쪽에서 알게 된
가까운 사람들과의 연고도 등한시하는 사이,
비록 자전을 가늠하지는 못하지만
지구의 축도 또 그만큼 기울어졌나 싶더라.
[기울어진 좌표]
새벽 공기는 차가웠지만 정신을 맑게 깨웠다. 나는 습관처럼 창문을 열고 북한산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북쪽 끝자락, 늘 그 자리에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바위산의 능선은 오늘따라 유독 낯설게 다가왔다.
문득, 지평선 너머로 붉은 기운이 고개를 내미는 곳에 시선이 멈췄다. 당연히 정동쪽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해가, 북한산의 머리맡보다 더 위쪽, 그러니까 북쪽 하늘에 치우쳐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 생경한 광경을 보고서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사는 이 집이, 그리고 내가 선 이 자리가 북한산보다 더 깊숙한 북쪽에 치우쳐 있었다는 사실을.
“해 뜨는 곳이 언제나 같을 수는 없지.”
나는 헛웃음을 삼켰다. 해가 뜨는 위치가 계절마다 변하듯, 내가 바라는 아침의 모양도 늘 내 예상과는 달랐다. 산 너머로 밝은 아침이 오기만을 고대하며 살았지만, 세상사는 숫제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 주지 않았다. 삶은 그리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더 서글픈 것은 내 삶의 ‘형세’를 너무 늦게 알았다는 점이다. 내가 이토록 북쪽 깊은 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지내는 동안, 나는 이곳에서 맺은 소중한 인연들을 등한시해 왔다. 춥고 외로운 북쪽 자락에서 서로의 온기를 나누던 가까운 사람들의 연고를, 나는 마치 남의 일인 양 방치하며 살아온 것이다.
어쩌면 내 마음의 축이 기울어져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지구가 자전하며 스스로의 위치를 가늠하지 못하듯, 나 역시 내 삶이 어디로 기울어 가는지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렸다. 해가 북쪽으로 치우쳐 뜨는 것이 지축의 기울어짐 때문이라면, 내 삶이 이토록 쓸쓸해진 것 또한 내 마음의 축이 누군가에게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이리라.
북한산 위로 완전히 솟아오른 해가 차가운 방 안을 비추기 시작했다. 나는 해 뜨는 방향을 다시 확인하며, 내 곁의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수첩을 뒤적였다. 지축은 바로잡을 수 없어도, 사람을 향한 내 마음의 기울기만큼은 다시 돌려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울의 북쪽, 이 서늘한 자락에서 비로소 나의 진짜 좌표를 확인한 새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