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17화)

빈 집의 법도

by 씨킴




빈 집


귀한 물건에 미련을 두는 것도

오랜 사랑에 비할 바 아니지만,

그런 연인이 언제 올지 몰라서

내 집 현관에는 자물쇠가 없다.


비까번쩍한 대리석 담벼락에

담쟁이넝쿨, 연못이 있는 집도

그 속에 행복이 살지 않는다면

울타리 없는 빈 집만도 아니다.


















[빈 집의 법도]


​내 방 현관에는 자물쇠가 없다. 4년 전 이곳에 들어올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문설주에 박힌 낡은 잠금장치를 뜯어내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치기 어린 객기라거나 잃을 것이 없는 자의 포악함이라 떠들었지만, 내 이유는 단순했다. 자물쇠란 결국 안의 것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밖에서 올 누군가를 영원히 유예시키기 위한 장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랜 사랑에 대한 미련과는 결이 달랐다. 귀한 물건을 도둑맞을까 전전긍긍하는 상인의 마음보다 훨씬 더 지독하고 비루한, 일종의 기다림의 관성이었다. 언제고 그 사람이 문을 밀고 들어왔을 때, 자물쇠라는 차가운 금속이 그와 나 사이의 마지막 장벽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비겁한 희망. 나는 매일 밤 문을 걸어 잠그는 대신, 어둠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문을 열어두었다.

​창고 너머 대로변에는 대리석을 발라 올린 저택들이 즐비했다. 햇빛을 받으면 비늘처럼 번뜩이는 그 집들의 담벼락 위로 담쟁이넝쿨이 혈관처럼 뻗어 있었고, 정원에는 인공적인 평화를 연기하는 연못이 고여 있었다. 사람들은 그 화려한 울타리 안을 동경했지만, 내 눈에 그곳은 거대한 무덤과 다를 바 없었다.

행복이 살지 않는 집은 사방이 벽으로 가로막힌 감옥일 뿐이다. 주인이 떠난 대리석 저택의 연못은 썩어가는 물웅덩이가 되고, 넝쿨은 집의 숨통을 조이는 밧줄이 된다.


​“아저씨네 집은 왜 문을 안 잠가요? 무섭지도 않나.”


​소녀가 내 방 문턱에 앉아 신발 끝을 툭툭 치며 물었다. 나는 담배 연기를 뱉어내며 열려 있는 문밖의 소음을 응시했다.


​“지킬 게 없으니까.”

“거짓말. 아저씨는 누굴 기다리는 거잖아요. 자물쇠를 채우면 그 사람이 돌아왔을 때 문앞에서 그냥 가버릴까 봐.”


​나는 대답 대신 주머니 속의 500원짜리 동전을 만지작거렸다. 자물쇠가 없는 집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외로움을 향해 열려 있는 정거장이었다. 울타리 없는 빈 집. 그곳은 비록 가난하고 서늘했지만, 적어도 거짓된 행복을 연기하기 위해 자신을 가두지는 않았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자물쇠를 버린 순간부터 나는 이미 그 '빈 집' 자체가 되어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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