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16화)

가랑잎의 무게

by 씨킴



실연



연인을 잃은 슬픔과도 같이

희망은 거기 절망 속에서도 핀다.

너와 이별해서 너 없이는 다시

어느 누구와도 사랑할 수 없듯이,


어떤 사랑은 사람의 심금을 울려서

평생을 추억으로 살게 하는 한편,

어떤 이별은 가슴이 너무 아파서

하물며 가랑잎이 떨어져도 눈물짓는다.














[가랑잎의 무게]


​그녀가 떠난 지 벌써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하지만 시간은 치유의 약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움을 더 날카롭게 벼리는 숫돌이었다. 나는 그녀가 없는 세상에서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 거라 믿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내게 사랑이란 오직 그녀라는 이름으로만 정의되는 고유 명사였으니까.


​"이별이 가슴 아픈 건, 추억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야."


​누군가 위로하듯 던진 말은 독설보다 아팠다. 어떤 사랑은 그저 한때의 기억으로 남는 게 아니라, 사람의 심금을 통째로 울려 평생을 그 소리 속에 살게 한다. 내게 그녀와의 기억이 그랬다. 눈을 감으면 어제의 일처럼 선명한 대화들이 귓가를 울렸고, 눈을 뜨면 지독한 공허함이 발목을 잡았다.

​가을의 끝자락, 나는 공원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때, 마른 가랑잎 하나가 힘없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저 흔한 낙엽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가벼운 잎사귀가 내 마음 위로 떨어지는 순간, 참아왔던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가랑잎의 무게가 마치 세상의 모든 슬픔을 실은 듯 무겁게 느껴졌던 탓이다. 가슴이 너무 아프면, 바람 소리에도 상처를 입고 떨어지는 잎사귀 하나에도 영혼이 무너진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하지만 눈물을 닦아내던 시야 끝에, 차가운 보도블록 틈새로 꿋꿋이 고개를 내민 작은 들꽃 하나가 들어왔다.

​이상한 일이었다. 지독한 실연의 절망 속에서도, 그녀 없이는 단 하루도 숨 쉴 수 없을 것 같던 그 고통 속에서도, 마음 한편에선 아주 미세한 생동감이 꿈틀대고 있었다. 그것은 연인을 잃은 슬픔만큼이나 끈질긴 '희망'의 기척이었다.

​절망이 깊을수록 그 바닥에서 피어나는 희망은 더 선명한 법일까. 나는 여전히 가랑잎 하나에 눈물짓는 나약한 처지였지만, 내 안의 절망이 역설적으로 새로운 생의 의지를 피워내고 있음을 느꼈다.

​비록 다시는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할 수 없을지라도, 그녀가 남긴 그 깊은 추억을 동력 삼아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는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와 마른 잎사귀를 털어냈다. 눈가는 여전히 젖어 있었지만, 발걸음은 이전보다 아주 조금 더 단단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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