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잎의 무게
실연
연인을 잃은 슬픔과도 같이
희망은 거기 절망 속에서도 핀다.
너와 이별해서 너 없이는 다시
어느 누구와도 사랑할 수 없듯이,
어떤 사랑은 사람의 심금을 울려서
평생을 추억으로 살게 하는 한편,
어떤 이별은 가슴이 너무 아파서
하물며 가랑잎이 떨어져도 눈물짓는다.
[가랑잎의 무게]
그녀가 떠난 지 벌써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하지만 시간은 치유의 약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움을 더 날카롭게 벼리는 숫돌이었다. 나는 그녀가 없는 세상에서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 거라 믿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내게 사랑이란 오직 그녀라는 이름으로만 정의되는 고유 명사였으니까.
"이별이 가슴 아픈 건, 추억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야."
누군가 위로하듯 던진 말은 독설보다 아팠다. 어떤 사랑은 그저 한때의 기억으로 남는 게 아니라, 사람의 심금을 통째로 울려 평생을 그 소리 속에 살게 한다. 내게 그녀와의 기억이 그랬다. 눈을 감으면 어제의 일처럼 선명한 대화들이 귓가를 울렸고, 눈을 뜨면 지독한 공허함이 발목을 잡았다.
가을의 끝자락, 나는 공원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때, 마른 가랑잎 하나가 힘없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저 흔한 낙엽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가벼운 잎사귀가 내 마음 위로 떨어지는 순간, 참아왔던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가랑잎의 무게가 마치 세상의 모든 슬픔을 실은 듯 무겁게 느껴졌던 탓이다. 가슴이 너무 아프면, 바람 소리에도 상처를 입고 떨어지는 잎사귀 하나에도 영혼이 무너진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하지만 눈물을 닦아내던 시야 끝에, 차가운 보도블록 틈새로 꿋꿋이 고개를 내민 작은 들꽃 하나가 들어왔다.
이상한 일이었다. 지독한 실연의 절망 속에서도, 그녀 없이는 단 하루도 숨 쉴 수 없을 것 같던 그 고통 속에서도, 마음 한편에선 아주 미세한 생동감이 꿈틀대고 있었다. 그것은 연인을 잃은 슬픔만큼이나 끈질긴 '희망'의 기척이었다.
절망이 깊을수록 그 바닥에서 피어나는 희망은 더 선명한 법일까. 나는 여전히 가랑잎 하나에 눈물짓는 나약한 처지였지만, 내 안의 절망이 역설적으로 새로운 생의 의지를 피워내고 있음을 느꼈다.
비록 다시는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할 수 없을지라도, 그녀가 남긴 그 깊은 추억을 동력 삼아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는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와 마른 잎사귀를 털어냈다. 눈가는 여전히 젖어 있었지만, 발걸음은 이전보다 아주 조금 더 단단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