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22화)

낙엽의 성(城)

by 씨킴


낙엽



욕망은 쌓이다 못해 녹음이 되고

절망도 분에 못 이겨

낙엽은 진다.


어떤 놈은

눈부신 단풍 한자락을

창살에 가둔 채로 숨을 거두고,


어떤 놈은

화해의 깃을 날리지만

동족끼리는 더 매섭게 싸우고,


또 다른 놈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틈 사이로

빼곡히 목을 내밀고 있다.


욕망이 연신 떨어지는 가을날의

저무는 절망 위에서

낙엽은 진다.















[낙엽의 성(城)]


​ 욕망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자라났다. 비대해진 욕망이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해 짙은 녹음으로 우거질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그것이 영원한 권력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절망 또한 분에 못 이겨 스스로를 태우는 법이다. 붉게 타오르던 것들이 하나둘 땅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낙엽이 지는 계절이었다.

​ 교도소 담장 너머, 수감번호가 가슴에 박힌 사내 하나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창살 틈으로 들어온 눈부신 단풍 한 자락을 손에 꽉 쥐고 있었다. 죽어서야 비로소 소유하게 된 그 한 조각의 가을이 그의 유일한 유산이었다. 그는 탐욕스러웠던 생의 마지막을 그렇게 창살에 갇힌 채 숨을 거두었다.

​ 거리는 아수라장이었다. 어떤 무리는 화해의 제스처인 양 흰 깃발을 흔들며 거리에 나섰지만, 정작 그들이 가장 매섭게 칼날을 휘두르는 대상은 다름 아닌 동족들이었다. 흩날리는 낙엽 사이로 비명과 욕설이 섞여 들었다. 죽어가는 낙엽들이 서로를 짓밟으며 먼저 바닥에 닿으려 발버둥 치는 꼴이었다.

​ 지하철 입구, 사람들의 구두 굽이 쉴 새 없이 오가는 틈바구니 속에서도 낙엽들은 끈질겼다. 보도블록 틈새마다 빼곡히 고개를 처박은 채, 마치 마지막 숨이라도 몰아쉬려는 듯 필사적으로목을 내밀고 있는 낙엽의 무리가 보였다. 그것은 살고자 하는 의지라기보다는, 차라리 밟히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저항에 가까웠다.

​ 욕망이 연신 추락하는 가을날이었다. 거리는 저물어가는 절망의 잔해들로 덮여갔고, 그 비정하고도 고요한 풍경 위로 다시 한 번 낙엽이 졌다. 누구도 치우지 않는 붉은 시체들이 쌓여가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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