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한 삶을 위하여
조신
-'세월'에 부쳐
시골로 가는 길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늙으신 노모를 돌보지 않는다면,
친구의 이름을 외고 있는 것만으로는
탐탁지 않다.
오랜 동안 뉘인지 알아보지 못한다면,
형제간의 우애도 마찬가지,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는
석연치 않다.
의논 좋게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다면,
'세월'의 아픔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연안에 버려진 이웃을 걱정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치 않다.
우리네 조신하지 못한 삶으로는......
모두가 착해지자.
아이는 어른의 말을 듣고, 어른은 아이의 말을 통해
조신하게 살자.
이제는 좀, 더 가엾은 동료들에게로 눈을 돌려
더 이상 앳된 눈물을 수습하지 말자.
[조신한 삶을 위하여]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안다'는 말 뒤에 숨어 살았던가.
시골로 가는 길을 훤히 알고 있다고 해서 효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길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길 끝에 계신 늙은 노모의 굽은 등을 어루만지고 곁을 지키는 일이었다. 마음만 굴뚝같다는 변명은 더 이상 노모의 세월 앞에 정당화될 수 없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수첩 가득 적힌 이름들을 외우고 있다고 해서 우정이 지속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마주친 친구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무관심해졌다면, 그 이름들은 그저 죽은 글자에 불과했다.
형제간의 우애 또한 그리움이라는 막연한 감정만으로는 부족했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의논 좋게 술잔을 기울이며 온기를 나누지 않는 우애는 석연치 않은 공허함만 남길 뿐이었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세상은 여전히 아팠고, 연안(沿岸)에는 외면당한 이웃들이 위태롭게 서 있었다. 그들을 지켜보고 걱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나의 삶이 정돈되지 않고, 나의 행동이 조신하지 못한데 어찌 타인의 아픔을 진심으로 보듬을 수 있겠는가.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한다."
나는 스스로에게 나지막이 읊조렸다. 우리 모두가 조금 더 착해진다는 것은 결국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 시작된다. 아이는 어른의 경륜을 듣고, 어른은 아이의 순수한 눈을 통해 세상을 다시 배워야 한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 바빠 고개를 돌렸던 가엾은 동료들에게 이제는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더 이상 앳된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고, 그 눈물을 뒤늦게 수습하며 자책하는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눈물이 흐르기 전에 닦아줄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을 지탱하는 조신한 태도야말로 내가 남은 생 동안 갖춰야 할 유일한 덕목이었다.
나는 낡은 구두끈을 고쳐 매었다. 길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길을 직접 걷기 위해서였다. 가슴속에만 담아두었던 사랑과 근심을 이제는 손과 발로 옮겨야 할 시간이었다. 비로소 내 삶이 조금은 더 단정해지고, 조신해지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