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눈
눈
나는 한여름에도 눈을 쓸어내린다.
얼어붙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야외에 설치된 액화저장소의 산소공급이 중단되면
무수한 목숨들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백 명의 생명들이 물고기 떼처럼
산소용기에 매달려 뽀끔뽀끔 목숨을 연장하고 있다.
이는 먼, 비단 남의 나라에서 생긴 일이 아닌
나와 내 이웃들에게 다반사로 반복되는 일상이다.
매일 쓸어내리는 한여름의 눈처럼.......
나는 하루에 두 번씩, 또 그들에게 이동식 산소용기도 배달하고 있다.
그 중 한두 명쯤은 꼭 숨을 거둔다.
심정지가 찾아오는 순간, 코드 블루가 발령되고
원내의 저명한 의사들이 병실로 몰려든다.
수행한 간호사들도 기어코 죽음을 막아 낼 수는 없다.
대기하던 가족들이 오열하며, 차례로 호명을 터뜨린다.
격벽을 설치하고 아직 살아남은 자들의 출입을 제한한다.
옆 병동의 죽어가는 환자들에게서 희망과 용기를 차단하기 위해서이다.
비록 죽음을 막아 낼 수는 없으나
내가 주기적으로 공급하는 포터블 용기랄지
액화산소의 컴프레셔 압력계가 정상으로 가동하면
그나마 그들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는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여름에도 빗자루로 눈을 쓸며,
얼어붙은 파이프라인 위를 고무망치로 조심스레 내리친다.
[한여름의 눈]
지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팔월의 오후, 나는 두꺼운 장갑을 끼고 빗자루를 들었다. 남들은 바다로 계곡으로 향하는 이 계절에, 나는 홀로 하얀 눈을 쓸어내린다. 액화 산소 저장 탱크의 파이프라인 위로 겹겹이 쌓인 결빙,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차갑고 위태로운 '한여름의 눈'이다.
내가 이 눈을 부지런히 쓸어내리는 이유는 단 하나다. 얼어붙은 파이프가 숨통을 막아 산소 공급이 중단되는 순간, 병동 안의 무수한 목숨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병실 안, 수백 명의 환자는 마치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 떼처럼 산소 호스에 매달려 입술을 뻐끔거린다. 그들에게 이 산소는 단순한 기체가 아니라 연장된 삶의 초침이다. 사람들은 거창한 기적을 바라며 먼 나라의 뉴스를 살피지만, 사실 기적은 매일 아침 내가 고무망치로 파이프를 조심스레 내리치며 얼음을 깨는 이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간신히 유지되고 있었다.
나는 하루에 두 번씩, 거대한 탱크에서 뻗어 나온 숨결을 작은 포터블 용기에 나누어 담아 배달한다. 카트를 밀며 복도를 지날 때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걷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중 한두 명은 반드시, 내가 배달한 산소가 다 바닥나기도 전에 작별을 고한다.
“코드 블루, 코드 블루. 5층 502호.”
복도에 날카로운 기계음이 울려 퍼지면 원내의 저명한 의사들이 구두 굽 소리를 내며 달려간다. 간호사들의 다급한 손길도, 가족들의 처절한 오열도 이미 멈춰버린 심장을 다시 뛰게 하지는 못한다. 흰 천이 덮이고 격벽이 세워진다. 옆 침대의 환자들에게 죽음의 냄새가 전염되지 않도록, 남은 이들의 희망과 용기를 보호하기 위한 잔인하고도 자비로운 차단이다.
나는 그 광경을 뒤로하고 다시 야외 저장소로 향한다.
내가 죽음을 막을 힘은 없다. 하지만 액화 산소 컴프레셔의 압력계를 정상으로 유지하고, 얼어붙은 라인을 녹여 산소가 막힘없이 흐르게 할 수는 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도이자 투쟁이다.
태양은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지만, 내 손끝에는 여전히 서늘한 냉기가 어린다. 나는 다시 빗자루를 잡는다. 툭, 툭. 고무망치로 파이프를 두드리는 소리가 적막한 병원 뒷마당에 울려 퍼진다.
오늘도 누군가의 숨을 이어주기 위해, 나는 이 지독한 여름 한복판에서 시리지 않는 눈을 쓸어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