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38화)

새벽이라는 탐닉

by 씨킴



새벽



새벽이 좋다.

약간의 어둠과

너무 밝지 않은

혼조......


어둠이 걷히면

누구 한 사람은

슬퍼하고,


기껏 딴 사람이

조금 기뻐하는 줄을

내 모르는 바 아니다.


밤이 죽는 만큼

날이 밝아 오면

외로움도 클 테지만,


그럼에도 날마다

새벽이 온다는 것,

깨어 있다는 것이 좋다.


이 새벽이 너무 좋다.

내가 초저녁에 자는 것은

새벽에 깨어 있고 싶기 때문이다.














[새벽이라는 탐닉]


​나에게는 오래된 습관이 하나 있다. 세상이 가장 화려하게 불을 밝히는 초저녁, 나는 서둘러 잠자리에 든다. 남들이 하루의 남은 흥취를 즐길 때 내가 서둘러 꿈속으로 침잠하는 이유는 단 하나, 세상에서 가장 귀한 '새벽'을 온전히 소유하기 위해서다.

​눈을 뜨면 방 안은 고요한 **혼조(混照)**에 잠겨 있다. 완전한 암흑도 아니요, 그렇다고 눈부신 광명도 아닌 그 애매하고도 묘한 빛의 섞임. 나는 그 어스름한 빛의 농도를 사랑한다.

​창밖을 내다보며 나는 생각한다. 이제 곧 어둠이 걷힐 것이다. 어둠이 걷힌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가혹한 일이다. 밤의 장막 뒤에 숨겨두었던 슬픔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야 하는 누군가는 눈물을 흘릴 것이고, 그 어둠이 물러간 자리에 들어선 햇살을 받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기껏해야 조금 기뻐할 것이다.

​세상은 늘 그런 식이다. 누군가의 상실이 누군가의 획득이 되는 공평하고도 잔인한 저울질. ​날이 밝아온다는 것은 곧 **'밤의 죽음'**을 의미한다. 밤이 죽어가는 만큼 빛은 강렬해지겠지만, 그 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그림자는 짙어지고 인간의 근원적인 외로움 또한 거대해질 것이다.

나는 그 모든 인과관계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새벽이 좋다. ​밤이 죽어 낮이 태어나는 그 비극적이고도 숭고한 개벽의 순간에 내가 깨어 있다는 것. 세상 모두가 잠든 사이, 우주가 제 몸을 뒤척이며 빛과 어둠을 교차시키는 그 은밀한 작업의 유일한 목격자가 된다는 것. 그것은 새벽을 기다려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고독한 특권이다.

​사람들은 내게 왜 그렇게 일찍 잠드느냐고 묻는다. 나는 그저 웃으며 답을 아낀다. 내가 초저녁의 안락함을 포기하는 이유는, 오직 이 새벽의 혼조 속에서 깨어 있기 위함이라는 것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에.

​오늘도 새벽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나는 이 서늘한 공기 속에 깨어 있음에 무한한 희열을 느낀다.

작가의 이전글눈(3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