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 향(39화)

by 씨킴


아메리카노 향



사람에게도 냄새가 난다, 커피 향처럼

향기가 있다.

병실도 그 분위기에 편승한다.

감도가 떨어지는 사람은 커피를 보고도 향을 못 맡거나

사람을 보고도 인사를 하지 않는다.

향기에 감응하지 못하다 보니,

정확히 말해서 좋지 않은 냄새에 골몰하다 보니

병실의 분위기가 덩달아 차가와진다.


암 병동 회복실에 근무하는 김 아무개 간호사는

그런 의미에서 향기가 나는 사람이다.

그녀는 항상 상냥한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바쁠 때 눈이 마주쳤을 때에는 목례라도 빠뜨리지 않는다.

내가 곰곰 생각하기를,

아무리 사심이 없다고는 말을 해도

그녀는 이른바 말 그대로인 '백의의 천사'다.

가장 상냥했기 때문에 가장 아름답게 보였을 것이다.


5A병동에 근무하는 어떤 키 큰 간호사가 나에게,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아메리카노 커피를 권했을 때

달달한 카페라떼 말고는 마시지 않는다는 농담을 건네고 싶었던 나는,

사실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정중한 사양으로

그날 이후 병동의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정확히 말해서 한 사람의 사소한 생각과 먼저 한 행동으로

내가 바라보는 병동 전체의 이미지가 확 바뀌었다.

그 전에는,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냉랭했다.


친절상을 받은 **병동 수간호사는 좀체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서 지체가 낮은 사람의 눈길은 말하면서도 피하는 격이다.

하루에 한 번, 업무상 나는 그녀에게 꼭 한마디씩을 건넨다.

오늘은 산소청구증 몇 개가 필요하다고,

이런 말은 나도 안 했으면 좋겠으나

청구할 수밖에 없는 직무상의 난맥 구조다.

또 그런 사람들은 늦어도 한결같이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그 고운 얼굴에 작은 미소만 띠었더라면, 훨씬 더 아름다웠을 텐데......


나는 소위 수형자처럼 일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곳은 수용소와 별반 다름이 없게 된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그보다도 못하다.

이럴 때 환자들을 보면 수용소에 갇힌 죄수만 못하다는 애틋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바쁜 눈인사를 건네주는 다수의 천사들과

내가 사양했던,

그리고 나를 대신할 아메리카노 향이 물씬한 병실을 상상하면

한 인간이, 그래도 다르게 생각하고 먼저 행동해야 되지 않겠는가!


















[아메리카노 향]


병실에는 늘 냄새가 떠다닌다. 소독약 냄새, 젖은 거즈 냄새, 오래 눌러붙은 침대 매트의 눅눅한 기운.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에게서도 냄새가 난다. 커피처럼.

나는 암 병동 회복실에서 일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음과 가까운 숨결이 들고난다. 환자들은 대개 말수가 적고, 보호자들은 표정을 아낀다. 이곳은 언제나 조심스러운 공간이다. 작은 소리 하나도 지나치게 또렷하게 들린다.

그 와중에 김 간호사는 늘 먼저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크지도, 작지도 않다. 딱 사람의 체온만큼이다. 바쁠 때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숙인다. 그 짧은 목례가 병실의 공기를 조금 누그러뜨린다. 나는 그녀를 보며 속으로 생각한다.

아, 저 사람은 향기가 나는 사람이구나.

누군가는 커피를 눈앞에 두고도 향을 맡지 못한다. 누군가는 사람을 보고도 인사를 하지 않는다. 감도가 떨어진다는 건 그런 것 아닐까. 좋지 않은 냄새에만 몰두하다 보니, 좋은 향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5A 병동의 키 큰 간호사가 어느 날 내게 아메리카노를 권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사실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는다. 속이 쓰리기 때문이다. 농담처럼 “달달한 카페라떼만 마십니다”라고 말해볼까도 했지만, 그 말이 괜히 가벼워 보일까 싶어 정중히 사양했다.


“괜찮습니다. 저는 커피를 잘 안 마셔서요.”


그날 이후, 병동의 공기가 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병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그전까지 이곳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냉랭했다. 업무는 기계처럼 흘렀고, 말은 최소한으로 오갔다. 특히 병동 수간호사는 나와 좀처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친절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게는 한 번도 친절해 보이지 않았다. 말을 건네면 고개는 다른 쪽을 향해 있었다. 마치 내 눈길이 닿는 것이 불편하다는 듯.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그녀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산소 청구증 몇 개 필요합니다.”


말을 하고 돌아설 때면, 내가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억지로 꺼낸 사람처럼.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니, 그 작은 얼굴에 아주 잠깐이라도 따뜻한 미소가 걸렸더라면.

나는 때때로 내가 수형자처럼 일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 병동은 병동이 아니라 수용소 같다. 환자들을 보면 더 그렇다. 침대에 묶인 채로, 정해진 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정해진 처치를 받는다. 그들의 하루는 철저히 통제된다. 나는 그 옆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숫자를 맞추고, 청구서를 올린다.

그러다 문득, 김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괜찮으세요?”


그 한마디에 병실의 온도가 달라진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같은 공간인데도, 어떤 사람 하나로 분위기가 달라진다.

아메리카노는 쓰다. 하지만 그 향은 부드럽다. 나는 그날 이후로 생각했다. 혹시 내가 사양했던 그 커피 한 잔이, 나를 대신해 병실을 떠돌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내가 받아들였더라면 조금은 다른 표정으로 이곳을 바라봤을까.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분명히 공간을 채운다. 한 사람이 먼저 생각을 달리하면, 한 사람이 먼저 인사를 건네면, 병동의 공기는 아주 조금 달라질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먼저 인사를 건넬 생각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말을 건네는 순간, 어쩌면 이 병실에도 아메리카노 향이 은은히 번질지 모른다. 쓰지만, 따뜻한 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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