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망(40화)

운명의 설계자

by 씨킴



흥망



점괘를 보면

울울한 사주에도 즐거운 날이 많다.

기구한 팔자에도 말년 운은 좋다.

인생은 굴곡진 흥망의 연속이다.

과거의 좋은 일들만 기억하면

현재를 보다 즐겁게 지낼 수 있고

미래도 유익한 운으로 바꿀 수 있다.

무엇이 더 흥한 일인지를 구분하거나

스스로 추구할 만하다.














[운명의 설계자]


​동네 어귀, 빛바랜 간판이 걸린 ‘운수 좋은 날’ 복덕방의 김 씨는 오늘도 돋보기를 치켜쓰고 낡은 사주첩을 넘기고 있었다. 그를 찾아오는 이들은 대개 인생의 가파른 굴곡 앞에서 숨을 헐떡이는 사람들이었다.


​“김 영감, 내 팔자가 왜 이리 기구해? 하는 일마다 막히니 원.”


​사업에 실패하고 찾아온 박 씨가 소주잔을 기울이며 한숨을 내뱉었다. 김 씨는 허허 웃으며 박 씨의 생년월일을 짚어보았다.


​“이보게, 박 씨. 점괘를 보게나. 자네 사주가 좀 울울하긴 해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늘 사이에 햇살 드는 날이 천지야. 기구한 팔자일수록 말년 운은 대궐 같은 법이지. 인생은 원래 흥하고 망하는 게 파도처럼 몰려오는 법이라네.”


​김 씨는 장부를 덮고 창밖을 내다봤다. 사람들은 흔히 운명에 적힌 대로 살아야 한다고 믿지만, 김 씨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보기에 인생의 ‘흥망’을 결정하는 건 이미 정해진 점괘가 아니라, 기억의 창고를 뒤지는 방식이었다.

​“박 씨, 자네 예전에 큰 계약 성사시켜서 동네 잔치 벌였을 때 기억나나? 그때 그 기분만 기억해 보게나. 지금의 가난이 자네를 흔들어도, 그 좋았던 기억만 딱 붙들고 있으면 현재가 즐거워지는 법이야. 그렇게 오늘을 즐겁게 지내면, 내일의 운도 슬며시‘유익한 쪽’으로 발길을 돌리는 법이지.”


​김 씨의 말에 박 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김 씨는 확신이 있었다. 스스로 무엇이 더 ‘흥하는 일’인지 구분하는 눈을 갖는 것, 그리고 과거의 빛나던 순간들을 현재로 소환해 오늘을 웃으며 지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운명 개척이었다.


​“내일 당장 운이 좋아지는 비법이 있냐고? 있네. 오늘 자네가 무엇을 기억하며 웃느냐, 바로 그거지.”


​노을이 복덕방 안으로 길게 스며들었다. 박 씨는 어느덧 잔을 내려놓고 옛 기억을 떠올리는 듯 엷은 미소를 지었다. 김 씨는 다시 돋보기를 내려놓았다. 울울한 사주에도 즐거운 날이 많다는 것, 그리고 그 즐거운 날을 현재로 끌어올 수 있다는 사실.

​오늘도 그는 복덕방의 낡은 의자에 앉아, 누군가의 기구한 팔자 뒤에 숨은 찬란한 말년 운을 설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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