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36화)

엿닷새의 기록

by 씨킴




내리는 비

서글픈 맘에는 온종일 비.

엿닷새 동안,

오는 비는

하루도 쉼 없는

굵은 빗가락.














[엿닷새의 기록]


​창밖은 이미 세상의 색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무너진 곳에는 오직 쉼 없이 쏟아지는 회색빛 줄기들뿐이었다.


​비.

비가 온다.


​처음 한두 방울 떨어질 때는 그저 먼지를 씻어내는 반가운 손님인 줄 알았다. 하지만 서글픈 마음을 품은 이에게 비는 손님이 아니라 침입자였다. 마음 한구석에 고여 있던 슬픔이 빗물에 불어 오르더니, 이내 온종일 내 안을 적시기 시작했다.

​벌써 엿닷새째였다. 달력의 날짜가 다섯 번, 여섯 번 바뀌는 동안에도 하늘은 단 한 순간의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 하루도 쉼 없이 내리는 비는 이제 집 안의 모든 물건을 눅눅하게 만들었고, 내 영혼의 가장 깊은 곳까지 곰팡이처럼 번졌다. 잠시라도 멎어주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는 점점 더 거칠어질 뿐이었다.

​"내, 내..."


​나는 빗소리에 맞춰 나직이 읊조려 보았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그 소리는 마치 누군가가 내 이름을 길게 부르는 환청 같기도 했고, 내 안의 응어리가 밖으로 터져 나오는 신음 같기도 했다.


​내.

내.


​줄기차게 쏟아지는 굵은 빗가락은 투명한 창살이 되어 나를 방 안에 가두었다. 빗줄기가 굵어질수록 내 서글픔의 농도도 짙어졌다. 저 굵은 빗가락이 땅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내 메마른 가슴을 사정없이 두들기는 것만 같았다.

​엿닷새 동안의 폭우 속에 세상은 잠겼고, 나는 나의 슬픔 속에 잠겼다. 비는 그칠 기미가 없었다. 내리는 것은 하늘의 물줄기가 아니라, 엿닷새 동안 참아온 나의 굵은 눈물줄기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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