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닷새의 기록
비
비
비
내리는 비
서글픈 맘에는 온종일 비.
엿닷새 동안,
오는 비는
하루도 쉼 없는
내
내
굵은 빗가락.
[엿닷새의 기록]
창밖은 이미 세상의 색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무너진 곳에는 오직 쉼 없이 쏟아지는 회색빛 줄기들뿐이었다.
비.
비가 온다.
처음 한두 방울 떨어질 때는 그저 먼지를 씻어내는 반가운 손님인 줄 알았다. 하지만 서글픈 마음을 품은 이에게 비는 손님이 아니라 침입자였다. 마음 한구석에 고여 있던 슬픔이 빗물에 불어 오르더니, 이내 온종일 내 안을 적시기 시작했다.
벌써 엿닷새째였다. 달력의 날짜가 다섯 번, 여섯 번 바뀌는 동안에도 하늘은 단 한 순간의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 하루도 쉼 없이 내리는 비는 이제 집 안의 모든 물건을 눅눅하게 만들었고, 내 영혼의 가장 깊은 곳까지 곰팡이처럼 번졌다. 잠시라도 멎어주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는 점점 더 거칠어질 뿐이었다.
"내, 내..."
나는 빗소리에 맞춰 나직이 읊조려 보았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그 소리는 마치 누군가가 내 이름을 길게 부르는 환청 같기도 했고, 내 안의 응어리가 밖으로 터져 나오는 신음 같기도 했다.
내.
내.
줄기차게 쏟아지는 굵은 빗가락은 투명한 창살이 되어 나를 방 안에 가두었다. 빗줄기가 굵어질수록 내 서글픔의 농도도 짙어졌다. 저 굵은 빗가락이 땅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내 메마른 가슴을 사정없이 두들기는 것만 같았다.
엿닷새 동안의 폭우 속에 세상은 잠겼고, 나는 나의 슬픔 속에 잠겼다. 비는 그칠 기미가 없었다. 내리는 것은 하늘의 물줄기가 아니라, 엿닷새 동안 참아온 나의 굵은 눈물줄기였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