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시제(35화)

시제의 망령

by 씨킴


여름의 시제



여름은 항상 더웠다.

변하는 것은 사계절과 우리네 틀에 박힌 사고뿐,

지난 여름이 무척 그리운 것은

일대다형, 매 여름은 똑같은 무더위였다.

지금껏 겪어왔던 여름의 개수, 계절의 가짓수만큼이나

그리움이 함초롬히 쌓인 형태다. 이런 시제로는

실제가 바뀔 수도, 파괴될 수도 있다!

다가올 미래의 여름은 눈부시게 무덥다 - 그런 의미에서 무더웠다.

지난 여름도 겪어보지 못하게 무더울 것이다.

미래에 대한 예측은 날씨의 변화에서 보듯, 그리워질 만큼

과거사에도 영향을 끼치지만

인간의 사고는 스쳐가는 계절처럼 바뀌어, 변하고, 또 쌓인다.

그럼에도 움직이지 않는, 지고지순의 진리가 있다.

여름은 항상 더웠다.

다가올 미래의 여름도 무더웠고,

지난 여름은 눈부시게 아름다울 것이다!














시제의 망령


​매년 여름은 예외 없이 지독했다. 아스팔트는 끓어올랐고, 공기는 습기를 머금어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사람들은 "올해는 유독 덥네"라며 투덜댔지만, 기록을 들춰보면 여름은 항상 그만큼 더웠다. 변하는 것은 날씨가 아니라, 계절을 통과하는 우리네 틀에 박힌 사고뿐이었다.

​기억 보관소의 연구원인 ‘수’는 창밖의 이글거리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데이터를 정리했다. 그녀가 다루는 데이터는 특이했다. 그것은 ‘그리움의 시제’에 관한 것이었다.


​"이 시제 안에서는 실제가 바뀔 수도, 파괴될 수도 있어."


​수가 모니터에 한 문장을 입력했다.


[미래의 여름은 무더웠다.]


​비문(非文)이었다. 하지만 수의 연구에 따르면 이것은 진리에 가까웠다. 다가올 미래의 여름이 눈부시게 무더울 것이라는 확신은, 이미 수십 번 겪어온 여름의 개수만큼이나 함초롬히 쌓여 '이미 겪은 일'처럼 우리 뇌에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예측은 날씨의 변화처럼 우리의 과거사에도 영향을 끼친다. 내일의 폭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어제의 미지근했던 바람은 상대적으로 시원하게 미화되곤 했다.

​인간의 사고는 스쳐 가는 계절처럼 끊임없이 바뀌고 쌓인다. 지난여름의 고통스러웠던 땀방울은 그리움이라는 필터를 통과하며 '눈부신 무더위'로 재포장된다.


​"과거는 미래의 예측에 의해 다시 쓰이고, 미래는 과거의 기억에 의해 이미 완성되어 있지."


​수는 땀을 닦으며 혼잣말을 했다. 지고지순한 단 하나의 진리는 **'여름은 항상 더웠다'**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창문을 열었다. 뜨거운 열기가 방 안으로 밀려들었다. 이 열기는 작년의 것이기도 했고, 십 년 뒤의 것이기도 했다. 시제는 엉망으로 뒤섞였다. 겪어보지 못한 미래의 여름이 벌써부터 그리워질 만큼 무더웠고, 지금 이 고통스러운 더위도 훗날의 기억 속에선 눈부시게 아름다운 조각으로 남을 것이었다.

​수는 눈을 감고 다가올, 아니 이미 겪어버린 미래의 뜨거운 태양을 향해 웃어 보였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여가는 무더위의 가짓수만큼이나 두텁게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어제의 여름은 내일보다 더 뜨겁게 타오를 것이고, 내일의 여름은 어제의 기억보다 더 찬란하게 기억될 것이다. 여름은, 항상 그래왔듯이 그저 무덥고 아름다웠다.

작가의 이전글떠나간 사람(3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