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머물지 않는다
떠나간 사람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나를 떠난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떠나지 않으나,
그리워하는 사람은 머물지 않고
떠나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고
사랑은 사랑으로 남는다.
그리워하는 사람을 그리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으니
내 사랑도 이별을 고했다.
사랑은 사랑으로 남고
이별 또한 이별로 남는다.
한번 떠나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내가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사람도
보내지 않았지만 나를 떠났다.
내가 그리워하는 사람은
나를 떠난 사람이다.
[그리움은 머물지 않는다]
공원묘지의 입구에서 소녀가 멀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주머니 속의 낡은 동전을 만지작거렸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은 비가 그친 뒤의 공기만큼이나 서늘했다. 문득, 나를 떠나갔던 수많은 존재들이 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명확하게 갈라져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를 진정으로 그리워하게 될 사람은, 결국 나를 떠난 사람뿐이다.
살아있는 사랑은 곁에 머물며 숨을 쉬지만, 그리움은 결코 머무는 법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은 내 곁을 지키려 애쓰지만, 그리워해야 할 사람은 이미 내 손이 닿지 않는 저편으로 가버린 뒤다. 한번 떠나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십 년 전 팽나무 아래 묻었던 ‘삔치’가 그러했고, 십자가 아래 잠든 호주가 그러했다. 그리고 지금, 소복을 벗어 던지고 달아나는 저 소녀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움은 영원히 그리움이라는 이름의 섬으로 남고, 사랑은 사랑이라는 화석으로 남는다.
나는 깨달았다. 그리워하는 사람을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할 수는 없다는 것을. 내 안의 그리움이 커질수록, 내가 붙들고 있던 사랑은 역설적으로 이별을 선언했다. 죽은 호주를 그리워하는 동안 나는 살아있는 누군가를사랑할 수 없었고, 그 이별은 나를 고립이라는 방 안에 가두었다.
사랑은 사랑대로 고여 있고, 이별은 이별대로 그 자리에 박혀 있다.
내가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한 번 떠난 자는 돌아오는 법이 없다. 내가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그 모든 것들은, 내가 결코 '가라'고 등 떠밀어 보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틈엔가 나를 앞질러 멀리 떠나가 버렸다.
소녀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 나는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내가 지금 이토록 사무치게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그 사람이 내 곁에 없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는 것을.
결국, 내가 그리워하는 사람은 나를 떠난 사람이다.
나는 젖은 흙을 털어내며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내 앞에는 여전히 날지 못하는 새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지만, 나는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그리움은 그저 내 등 뒤에서 바람처럼 웅성거릴 뿐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