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을 받아들이는 것
내가 안고 눈물을 흘릴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저들 아니면.
애달픔을 달리 표하는 길이
글을 쓰는 일밖에 없는 것을,
웃자, 신들린 사람처럼 웃자.
아니, 그런 절망이 아니어도
나는 어지간하면 눈물이 난다.
저들이 나를 형제라 부르는 것을
나를 또한 아버지라 부르는 것을,
그러면서도 내게 안기는 저들을
고작 바라보며, 나는 눈물짓노라.
절망을 받아들이는 것은
신을 받아들이는 일과 같아서......
[성소(聖所)의 미소]
낡은 사택의 거실에는 희미한 등불 하나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밖에서는 밤바람이 창문을 할퀴고 지나갔지만, 방 안은 지독할 정도로 고요했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닳아버린 만년필을 쥐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이 하얀 종이 위에 애달픔을 쏟아내는 일뿐이었다.
1. 피할 수 없는 품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이제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을. 대신 그에게는 기댈 곳을 찾아 모여드는 '저들'이 있었다.
어제는 삶의 끝자락에서 길을 잃은 청년이 그를 '형제'라 부르며 손을 맞잡았고, 오늘은 갈 곳 없는 아이들이 그를 '아버지'라 부르며 낡은 코트 자락에 얼굴을 묻었다. 그들이 그를 부르는 호칭은 따스했으나, 그 무게는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내가 안고 눈물을 흘릴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저들 아니면."
그는 스스로를 추스르기도 버거운 한 인간일 뿐이었지만, 저들이 안겨올 때면 기꺼이 자신의 가슴을 내어주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어지간한 일에도 눈물이 났다. 비참해서가 아니라, 저들의 고통과 자신의 무력함이 한데 섞여 나오는 뜨거운 생의 증거였다.
2. 신들린 웃음의 의미
갑자기 그는 펜을 멈추고 낮게 큭큭거리기 시작했다. 거울 속의 남자는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 분간할 수 없는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웃자, 신들린 사람처럼 웃자."
그것은 자포자기가 아니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마주했을 때 인간이 택할 수 있는 마지막 방어 기제였다. 미친 듯이 웃어젖히지 않고서는, 이 가여운 영혼들을 품에 안고서 제정신으로 버틸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웃음은 절망의 한복판에서 쏘아 올린 비명 섞인 찬가였다.
3. 절망이라는 이름의 신
그는 다시 종이 위에 글을 써 내려갔다. 가장 아픈 문장이 머릿속을 스쳤다.
'절망을 받아들이는 것은 신을 받아들이는 일과 같아서.'
청년 시절, 그는 신이 빛과 영광 속에만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신은 거창한 기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절망의 수렁 속에서, 그 수렁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견디는 자의 떨리는 손등 위에 있었다.
절망을 밀어내지 않고 온전히 껴안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파멸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자, 자신이 짊어져야 할 거룩한 십자가였다. 그는 이제 눈물을 닦지 않았다. 대신 그 눈물로 잉크를 적셔 다시 한 자 한 자를 새겼다. 그에게 남은 유일한 구원이자 소명인 글쓰기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