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비움
작은 것들
무아가 적적히 내리는 새벽,
날도 차고 또, 안개는 적시는데...
밖은 그저 그리 희뿌윰하니
인적이 없는 길을 나 홀로 헤매다가
이 세상 누구, 어느 한 사람도
방황에 지친 몸을 눈여겨보지 않는
밤의 어둠 속까지 외로움이 다 차면
그때 나는, 나는 집으로 가리.
감감히 허욕도 잦아드는 때,
뜨건 태양이 솟구친 뒤에야 보이는
작은 것들 - 이제야 보이는
소중한 것들.
[눈부신 비움]
무아(霧芽, 안개꽃) 같은 안개가 적막하게 내려앉는 새벽이었다. 공기는 살을 에듯 찼고, 낮게 깔린 안개는 옷깃을 축축하게 적셔왔다. 세상은 온통 희뿌연 침묵에 잠겨 있었고, 그 인적 없는 길 위를 나 홀로 유령처럼 헤매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 채 걷고 또 걸었다. 세상 그 누구도, 어느 한 사람도 방황에 지쳐 비틀거리는 나의 뒷모습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지독한 고립이었다. 밤의 어둠이 차오르다 못해 내 안의 외로움과 수위가 같아졌을 때, 나는 비로소 발길을 돌렸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이제야 다 비워졌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음을 짓누르던 감감한 허욕(虛慾)들이 안개처럼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갈증이 차가운 새벽 공기에 씻겨 내려갔다.
마음이 텅 비워지자, 역설적이게도 세상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지평선 너머로 뜨거운 태양이 솟구쳤다. 밤새 나를 괴롭히던 어둠과 안개를 밀어내며 쏟아지는 그 강렬한 빛 아래에서, 나는 멈춰 섰다. 어둠 속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거기 있었다. 담장 밑에 이름 없이 피어난 작은 풀꽃, 잎사귀 끝에 매달려 햇살을 튕겨내는 맑은 이슬방울, 그리고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무심히 지나쳤던 낡은 대문의 손잡이까지.
거창한 성취나 타인의 시선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그 '작은 것들'이, 태양 빛을 받아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것들은 방황을 끝낸 내게 세상이 건네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었다.
나는 비로소 안도하며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가장 외로운 밤을 건너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오롯이 평온한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