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사랑(9화)

읽지 못한 문장, 내뱉은 고백

by 씨킴



사랑, 사랑


글로 쓰기에 좋은 말이 있고

말로 하기에 좋은 글이 있다.

사랑, 사랑이 그렇다.


어떤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할 때

그 곁에 있어 지켜주는 사람이 있으니

진정 사랑이다.


어떤 사람을 필요로 할 때에도

내 곁에 있어 지켜주는 사람이 있으니

먼저 사랑한다고 말하자.


시야가 트인 길에서 빈 들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리 복잡하거나 두렵지 않다.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자.


여기

말로 하기에 좋은 글이 있으니

사랑, 사랑이 그렇다.


우리들이 헤쳐 가는 이 세상에는

글로 쓰기에 좋은 말들로 가득하지만

사랑은 참, 말로 하기에 좋은 글이다.















[읽지 못한 문장, 내뱉은 고백]


​서점 귀퉁이, 나는 원고지 위에 '사랑'이라는 두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종이 위에서는 참으로 근사한 단어였다. 획의 굵기나 잉크의 번짐에 따라 그럴듯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 말을 건네려 하면,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듯 턱턱 막히곤 했다. 내게 사랑은 글로 쓰기엔 참 좋지만, 입 밖으로 내기엔 너무 무거운 '글'이었다.

​창밖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세상은 복잡한 미로 같았고, 홀로 그 길을 걷는 것은 언제나 두려운 일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그녀가 들어왔다.

​그녀는 내가 지독한 감기에 걸려 며칠을 앓아누웠을 때, 말없이 죽을 끓여 문 앞에 두고 가던 사람이었다. 내가 세상의 필요에 대답하지 못해 숨어버리고 싶을 때에도, 그녀는 그저 묵묵히 내 곁을 지켜주었다.


​"또 원고만 보고 있네. 저녁은 먹었어?"


​그녀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문득 그녀를 바라보는데, 마음 한구석이 환해졌다. 시야가 탁 트인 빈 들판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녀가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방금까지 나를 짓누르던 세상의 복잡함과 두려움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어떤 사람을 필요로 할 때, 내 곁에 있는 사람.'


​그게 바로 내 앞의 그녀였다. 나는 적어 내려가던 원고지를 덮었다. 종이 위에 박제된 화려한 수식어들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사랑은 활자 속에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숨결을 실어 보내야 비로소 생명이 생기는 것이었다.

​나는 침묵을 깨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있잖아, 사랑해."


​글로 쓰기엔 그토록 어렵고 복잡했던 문장이, 말로 내뱉자 놀라울 정도로 가볍고 명쾌하게 공기 중으로 번져 나갔다. 세상엔 글로 쓰기에 좋은 말들이 참 많다지만, 사랑만큼은 직접 목소리에 담아 건네기에 가장 완벽한 '글'이었다.

​내 고백에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 끝에, 우리는 비로소 이 험난한 세상을 함께 헤쳐 나갈 진짜 용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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