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가려면(3화)

넘어야 할 봉우리, 닿아야 할 푸름

by 씨킴


바다에 가려면


이 언덕을 지나고서야 산이 보일 것이다.

저 산에 오르려면 껄떡길도 헤쳐야 되고

바다에 가려면 그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폭풍이 닥치거든 거기 잠시 쉬었다 가리.

한파가 몰아치거든 나 홀로 돌아서 가리.

바다에 가려면 또, 그들과 익숙해지리라.










[넘어야 할 봉우리, 닿아야 할 푸름]


​목적지는 바다였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것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가파른 언덕뿐이었다. 지도는 이 언덕을 지나야만 비로소 거대한 산맥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도호는 등산화 끈을 다시 조여 맸다. 바다로 가는 길은 언제나 산을 먼저 내주었다.


​"이게 시작이겠지."


​언덕을 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산이 앞을 가로막았다. 산의 입구에는 이른바 '껄떡길'이라 불리는, 숨이 껄떡 넘어갈 만큼 험한 비탈길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도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덤불을 헤쳤다. 발을 딛는 곳마다 흙탕물이 튀고 가시덤불이 바지춤목을 붙잡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바다에 닿기 위해서는 반드시 저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산을 절반쯤 올랐을 때, 하늘이 급격히 어두워지더니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폭풍이었다. 나무들이 비명을 지르며 휘어졌고, 시야는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다. 도호는 무리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대신, 커다란 바위 틈새를 찾아 몸을 밀어 넣었다.


​'폭풍이 닥치거든 잠시 쉬었다 가리.'


그는 시 속에 적어두었던 문장을 되뇌며 젖은 빵 한 조각을 씹었다. 서두른다고 바다가 당겨지는 것은 아니었다. 폭풍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지, 이기려 드는 것이 아님을 그는 산을 오르며 배웠다.

​폭풍이 잦아들자 이번에는 살을 에듯 차가운 한파가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왔다. 매서운 칼바람에 뺨이 얼어붙었다. 정면으로 맞서기엔 너무나 날카로운 추위였다. 도호는 잠시 고민하다가 능선을 타려던 계획을 수정해, 바람이 덜 치는 아랫길로 빙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때로는 물러나고 돌아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임을, 그는 시린 발끝을 보며 깨달았다.

​길 위에서 만난 거친 바람, 비정한 추위, 그리고 끝없는 오르막. 도호는 이제 그것들을 밀어내지 않기로 했다. 바다에 가려면 이 지독한 것들과도 결국 친구가 되어야 했다. 비바람의 냄새에 익숙해지고, 돌길의 단단함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과정. 그것이 곧 바다로 가는 과정 그 자체였다.

​마지막 봉우리에 올라섰을 때, 희미한 소금기가 바람에 실려 왔다. 저 멀리, 산의 끝단 너머로 수평선이 반짝였다. 도호는 가쁘게 몰아쉬던 숨을 가다듬고 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제 안다. 바다에 닿은 것은 자신의 두 다리가 아니라, 그 험난했던 산과 폭풍과 한파를 기꺼이 품어낸 그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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