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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수다 왕언니 Apr 20. 2023

여행과 인생의 공통점

[여행의 기술_알랭 드 보통 저_청미래] 를 읽고...


  5살 아이를 데리고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3개국을 50일 동안 여행했었다. 자유여행이었다. 휴대용 유모차와 아이를 위한 갖가지 먹거리를 준비했다. 얼마나 잘 먹이느냐가 중요했던 나는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 같았다. 나와 남편을 위해서는 사발면 하나 준비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떠난 여행은 인천공항에서 짐을 부치면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캐리어가 무거워서 추가요금이 10만 원이 훨씬 넘게 나왔다. 친절한 항공사 직원은 일부 짐을 택배사에 가서 박스에 넣어 포장해 수화물로 보내라고 알려주었다. 택배사에 가서 마구잡이로 짐을 꺼내 트렁크와 박스 무게를 조율해 가며 포장하고 다시 데스크로 돌아오니 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다. 오랜만에 가게 되는 해외여행이라 여유 있게 면세점 쇼핑을 즐겨주리라는 나의 계획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자정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긴 비행 탓에 피곤했고, 연착되는 바람에 에어비앤비 집주인이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았을까 해서 미안했다. 수화물 찾는 곳에서 캐리어는 나왔는데, 택배 박스와 유모차는 보이지 않았다. 승객들이 모두 짐을 찾아 떠났는데도, 우리 가족의 물건은 없었다. 그때부터 식은땀이 흘렀다. 우리는 수화물 분실로 악명 높은 러시아 아에로플로트 항공을 탔기 때문이다. 불현듯 박스에 속옷 파우치를 넣은 기억이 떠올랐다. 당장 오늘 밤부터 난감했다. 우리는 수화물 신고 데스크로 갔고, 거기서 다른 벨트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데 갑자기 저 끝에서 빛이 보였다. 아이의 연두색 휴대용 유모차와 함께 택배 박스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안도감과 평안함과 행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여행의 기술의 저자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은 자신의 삶과 가치관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말한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무겁게 떠나는 여행이 얼마나 큰 짐이 될 수 있는지... 인생도 마찬가지다. 작은 일에도 걱정하고 고민하고, 오지 않을 미래의 불안과 두려움에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많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인데, 과거의 어떤 결정에 미련이 남아 후회를 하고 또 한다. 가볍게 살자. 어떻게든 되겠지. 그 수화물 사건 이후로 우리 가족은 뉴질랜드로 또 장기 여행을 떠났지만, 먹거리는 전혀 가져가지 않았다. 입을 옷만 챙겼었다. 가벼움에 대한 추구는 일상을 단조롭게 바꾸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곳이 반드시 집은 아니다.
여행의 기술 80page 중에서..



  40대에 경험한 여러 번의 여행과 제주도 한 달 살이의 경험으로 나는 자연이 주는 편안함도 깨달았다. 시간이 나면 자주 공원을 산책한다. 불필요한 인간관계에 돈과 시간을 쫓는 열정도 사라졌다. 함께 책을 읽고, 철학을 나누는 밀도 높은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명확성도 생겼다. 결국 나답게 삶을 가꾸는 방법을 찾는데 여행이 도움이 되었다. 물론 정체성 찾기가 여행으로만 완성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을 하고, 자녀를 양육하고 부모의 역할에 고민하면서도 발견하게 되었다. 결국 나라는 인간은 여러 가지 역할을 갖고 있느니 말이다.



  꿈이 생겼다. 목표이기도 하다. 물론 건강상의 이유나 넉넉지 못한 경제사정으로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남편이 은퇴를 하면 함께 물가가 싼 해외 시골마을에 가서 한 달 살이를 하면서 살고 싶다. 현지인들처럼 거리를 빈둥거리고 마트에서 식료품을 쇼핑하고 싶다. 일상의 여유는 글로 남기겠다. 물론 그전에 우리 부부는 계속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제주도로 대한민국의 내륙 어딘가로 자동차를 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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