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_다자이 오사무 저_문예출판사]를 읽고...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1948년 출간된 소설이다. 주인공 요조는 시종일관 인간을 두려워하고, 자기혐오에 빠진 인물이다. 저자는 전후 혼란의 시기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인물을 잘 그려냈다.
두꺼비
(그게 바로 나다. 세상이 용서할 것도 용서하지 않을 것도 없다. 매장할 것도 매장하지 않을 것도 없다. 나는 개보다, 고양이보다 열등한 동물이다. 두꺼비, 어기적어기적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p. 95 중에서
요조는 매사에 자신감이 없고 주체적이지 않다. 이 자전적인 소설은 다자이 오사무의 삶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주인공은 가족들에게 가면을 쓰고 대한다. 비관적이고 우울한 내면을 가린 채 웃기는 행동과 말로 자신을 포장한다. 그런 모습은 가족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그리고 우연히 활동하게 된 공산주의자 단체에서도 똑같다.
물론 나도 가면을 쓰고 살 때가 많다. 타인의 행동이나 말이 공감되지 않으면서도 공감하는 척, 이해하는 척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지 않다고 배웠고, 공동체 생활에서 갈등을 유발하지 않는다고 경험으로 깨달았다. 가면은 사회생활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더더욱 필요했다. 전업주부로 사는 요즈음에는 덜 필요하다. 하지만 가끔은 가족들에게도 필요할 때가 있다. 나의 생각과 욕구대로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살 수 있는 현대인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말이다.
요조는 인간을 두려워하고 현실을 외면했다.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결국 모르핀을 맞는다. 소질을 살려 미술공부를 열심히 해 볼 생각도, 주체적인 삶을 살아볼 결심조차 없다. 그렇다 보니 충실하지 않은 학교생활 때문에 아버지의 금전적 지원도 끊긴다. 그런 그를 도와줬던 사람들은 여성들이다. 요조에게 아무런 기대도 보답도 바라지 않으면서 도와준다. 다자이 오사무에게 여성은 그런 존재인 것 같다. 힘든 삶을 구원해 주는 자애롭고 이타적인 인간. 나는 엄마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고 느꼈다.
시종일관 의지박약한 요조를 만나는 동안 파친코의 선자가 떠올랐다. 일제강점기와 전후, 그 격동의 세월을 이겨낸 강인한 여성, 선자. 요조와 선자는 같은 시기의 사람이다. 그런데 왜 삶은 이렇게 판이하게 다른 것일까? 선자는 여성이기에 가능했을까? 선자에게는 자식이 있었기 때문일까?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자식을 키워내는 위대한 어머니들을 우리는 역사와 문학에서 많이 만날 수 있다.
지구온난화로 이상기후가 나타나고 있다. 인생에서 올해 여름처럼 더웠던 날이 있었을까 싶도록 너무 더웠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뜨겁다고 한다. 태풍과 폭우, 산불 등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자연재해를 볼 때마다 두려움을 느낀다. 물가는 너무 올랐고, 팍팍한 일상에 희망을 찾기 힘들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내 아이가 자신의 삶에서 즐거움을 느꼈으면 하고 바란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아도, 자기혐오에 빠진 요조처럼 허우적대지 않기를 바란다. 선자처럼 고난을 이겨내기를 바란다. 나의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