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를 만드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by 해뜨는집

새벽이다. 깜깜한데 더듬거리면서 휴대폰의 손전등을 켰다. 창문에 물방울이 간간이 맺쳐 있는 것이 보인다. 낭패다. 오늘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마음이 바빠지면서 내가 할 일을 생각하게 된다. 일단 일찍 가야 하고, 실내 공간에 적당한 곳을 물색해야 한다. 안내판도 새롭게 만들어야 하고, 도우미들에게도 바뀐 내용을 안내해야 한다. 벽면에 테이프를 붙이면 뗄 때 자국이 안 남을까? 물기가 있으면 접착력이 떨어지는데 수시로 왔다갔다하면서 봐야 하는 건가? 쓸데없는 걱정거리가 새벽부터 몰려온다. 동틀 때까지 더 잠자기는 애시당초 글러 버렸다. 생각이 꼬리를 문다. 어젯밤에 쓸데없이 코팅을 왜 했을까? 왜 미리 판단해서 결정하지 못했을까? 이놈의 미련 때문에 하는 일이 꼬인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했는데, 딱 그 덫에 내가 걸렸다.


아니나 다를까, 날이 밝자 한두 녀석이 톡을 보낸다.


“선생님, 어떻게 해요? 비 와요.”

“밖에는 안되겠다. 안으로 들어가자.”

“어디에서 해요?”

“학사동 1층 벽에다 붙일 거야. 8시 반에 거기서 보자.”


짧게 연락을 하고 평소보다 조금 빨리 출근을 한다. 아침부터 왠 부산함?

올해 가을 축제 이야기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1년에 한 번씩 아이들의 축제를 연다. 예전에는 거의 한 달 동안 보여주기식 축제 하나에 매달려 있던 적도 있었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1학기 때부터 수업 중에 했던 결과물을 모아두었다가 전시한다. 교과 활동전, 동아리 활동전, 사진전, 도서관전, 시화전 등을 꾸민다. 이와 별도로 체험 마당, 포토존, 노래방, 각종 체험 부스 등을 열고, 먹거리 장터를 마련해서 불량 식품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그래, 오늘 하루만이다. 하루 동안의 일탈을 학교 안에서 해라, 선생님은 눈 감아 줄게.’ 뭐 이런 식이다. 그래서 하루 종일 수업도 없고 아주아주 여유로운 날이다.

그런데 갑자기 내리는 비가 축제날 아침을 분주하게 한다. 원래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기는 했지만 얼마나 올지도 모르는 것이고, 예측와 다른 경우도 종종 있었기에 좀더 기다려보자고 했던 것이다. 당장 학교 정원에 꾸미려 했던 시화전을 실내에서 해야 한다. 푸르고 높은 계절에 야외에서 하는 축제가 딱인데, 올해는 운이 없나 보다.


부랴부랴 학교에 가서 시화전 준비를 했다. 원래부터 도와주기로 한 녀석들이 모여 있다. 급하게 해야 했기에 지나가는 학생들 몇을 불러서 도움을 요청했다. 교사 생활을 하다보면 요령이 생겨서 어떤 아이들과 함께 일을 하면 잘 되는지를 대충 안다. 그래서 확실한 에이스들을 불러서 즉석에서의 시화전 준비를 했다. 야외에서 실내로 바뀌기는 했지만, 전시해놓고보니 그럴 듯하다. 상업적인 전시회도 아니고 아이들의 올망졸망한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라면 괜찮겠지. 그 이상을 바라면 애들을 잡을 수밖에 없으니 축제가 고달픈 행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요즘 애들한테 이래라저래라 일을 시키는 것이 좀 부담스러워서 교사들이 주로 축제 준비를 하는 편이다. 애들은 거들 뿐. 원래는 교사가 거들어야 하는데, 중학생들에게 알아서 하라고 맡기는 것은 아직 어렵다. 그래서 반대가 되어 버렸다. 어제와 그제도 그래서 늦게까지 남아서 테이프를 붙이고, 낚싯줄을 띄워서 이름표를 달고, 리본을 늘어뜨리면서 장식을 했다. 전시용 탁자는 하얀색 종이로 감싸고, 예쁘게 핀 국화 화분은 붉은 색 벨벳 천으로 둘렀다. 그래도 오랜만에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저녁을 함께 먹고 저렴한 육체 노동을 하니 이것도 괜찮은 시간이다. 확실히 몸을 놀리면서 하는 일이 보람이 있다. 아마도 진척이 바로바로 눈에 보이니 그럴 것이다. 교사의 일이라는 게 하는 정도가 눈에 보이지 않는데, 축제 준비는 그렇지 않아서 그럭저럭 할 만한 일이다.


아이들 작품을 전시하면서 의외의 모습을 만난다. 부끄러움이 많아 발표하기도 어려워하던 아이가 자기 이름의 책을 썼고, 산만하던 녀석이 동아리에서 멋진 조형물을 만든 것도 본다. 주체할 수 없는 끼를 보유한 아이가 가요제 사회를 맡아서 우쭐대는 걸 보면 참 어울린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평소와 다른 모습은 그래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자리를 열어주는 게 학생을 제대로 키워내는 모습일 텐데, 그런 다짐과 궁리를 하는 기회가 바로 이런 축제라고 생각한다.

일부러 찾아온 학부모나 지역 어른들이 이렇게 한 말씀씩 하신다.


“애들이 실력이 좋네요.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요?”

“학교에서 수업만 하는 게 아니네요.”

“재주 많은 애들이 모여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환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그러면서 이런 말도 하려다가 가까스로 참는다. 오히려 맞장구를 치는 것보다 이게 더 힘들다.

”이게 다 그냥 되는 게 아니거든요. 선생님들 아니면 아무것도 안돼요.“

”다 엊저녁에 밤 9시까지 남아서 선생님들이 빗자루질했어요. 바닥 보세요. 반짝반짝하잖아요.“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을 많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알겠지. 선생님이 있어서 이렇게 자기네들이 잘난 척을 하고 활개 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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