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부처가 파설한 교법과 부처가 되기 위한 교법이다. 불은 각성한 사람, 각자라는 말로 고대 인도에서 널리 쓰였으며 특히 석가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불교는 석가 생전에 이미 교단이 조직되었고 포교가 시작되었으나 이것이 발전하게 된 것은 고타마 싯다르타, 즉 석가모니가 죽고 난 후이며, 기원 전후에 인도 스리랑카 등지를 비롯해 동남아, 서역, 중국, 한국, 일본으로 확대되었다. 14세기 이후로 이슬람교에 밀려 인도에서는 약화되었지만,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카보디아, 티베트에서 몽골에 걸친 지역인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에는 많은 신자가 있었다. 가톨릭, 이슬람, 불교는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다.
<불교의 특징>
1. 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2. 지혜와 자비를 중시한다.
3. 자비는 무한이며 무상의 애정이라 할 수 있어 증오나 원한을 전혀 가지지 않는다.
4. 지혜는 일체를 종으로 절단하는 시간적 원리인 무상과 일체를 횡으로 연결하는 공간적 원리인 '연기'가 중심에 있다.
5. 현실을 직시한다.
6. 모든 일에 집착과 구애를 갖지 않고 실천한다.
7. 흔들리지 않는 각성을 경지로 삼는다. 별칭 열반.
불교에서는 108가지로 분류한 중생의 번뇌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백팔번뇌' 또는 '백팔결'.
중생의 눈과 귀 코, 몸, 뜻의 감각기관이 감관의 대상을 접할 때, '좋다', '나쁘다', '그저 그렇다'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108가지 번뇌를 일으킨다. '괴로움', '즐거움', '괴로움과 즐거움 도 아닌 것'과 관련지어 18가지 번뇌를 갖게 된다. 이들 12 번뇌를 합한 36가지 번뇌가 다시 각각 현재, 과거, 미래를 갖기에, 36가지 번뇌에 3을 곱하면 108가지 번뇌가 된다. 불교에서는 특별한 의미를 두어 108개의 목환자를 꿰어 만든 108 수주를 만들어 돌리면서 삼보를 생각하면 108가지 번뇌를 없애고 스승과 과를 얻는다고 하여 이러한 싯다의 가르침은 널리 선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번뇌를 108종으로 세분해 본 것일 뿐, 근원은 하나다. 본래의 자기인 '일심'을 잃는데서 오는 것이 백팔번뇌기에, 일심을 잃지 않도록 하고 또 잃더라도 빨리 되찾는 것이 그것을 끊는 길이라고 한다.
다음날. 가정생활 3박 4일 중 마지막 날이 되었다. 빈약한 영혼에 일용할 양식을 채워주고, 하루를 역적 행보가 아닌 영적 행보로 걷게 해주는 특별한 거행식인 미사에 참여였다. 구원에 발끝도 미치지 못할 안주거리를 논하고 있노라면, 십시일반으로 심심한 주제가 되겠지만 여차해서는 언급하지 않을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분명 의미 있음을 영적 행위는 동기부여와 머리를 맞댄 의미부여를 한 모양이다. 신의 부름을 받았다나? 거룩한 예배 송이 홀에 울려 퍼지면 귀때기가 고양이처럼 퍼덕거리는 것을 보는 것은 일련의 심심함 내쫓기였다. 그리하여 얻어낸 것이 고작 재미라면, 양어머니를 졸라 이곳을 빠져나올 참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몽골의 고비 사막하늘을 장식하는 신비롭고도 거룩한 아우라에 홀린 듯했다. 휘황찬란하면서도 심란한 심상 속 상상력이 도륙 났던 건 장계와 묵상, 그리고 강론이었다.
첫 번째, 장계는 무릎 꿇고 기도하는 자세다. 두 번째, 묵상은 묵묵히 기도하는 것. "온 우주가 그대를 전심전력으로 도울 것입니다."와 같은 대한민국 18대 박근혜 전 대통령님의 말뜻을 내포한 기도로 잠잠히 생각하는 것이다. 창세기 24장 63절의 말씀. 묵상은 예배나 영적 갱생은 물론, 정신적인 재충전이나 영혼의 만족과 즐거움, 명철과 형통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교제를 위한 매우 유익한 신앙이라고도 하는데 천주교 신자였던 나는 딴생각하거나 자는 게 제일 중요했다.
마지막 세 번째 강론. 하느님의 말씀을 신부님이 대신해 주는 것이다. 신은 인류의 신체를 지니고 있지 아니하기에 대학 공강이나 빈 락앤락 통 똑딱이처럼 뻐끔뻐끔하지 않을 중대한 말씀이었다.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에 비할 것이 못되며, 축사나 찬송가와 견줄 수도 없다. 하니 <작별인사>의 선이의 대사 "가능할 것 같기는 해."라는 말이 꽤 그럴듯한 것도 '신념'의 껍질을 깨고 나와 기어 다니는 병아리가 암탉 주위를 겉도는 것도 이해가 갈 것이다. 우리는 병아리고 신부님은 암탉이다. 신은 사고무탁과 '온리유'를 넘나드는 누운 팔자 햇살이며 풍부한 먹이가 있는 섬과 희극을 한 점으로 베껴놓은 자연은 심오의 판도를 거꾸로 뒤집은 재앙의 선물이다.
"주님의 강론 말씀입니다. 회개는 매일 매 순간 지속적으로 수행되어야 할 일상적인 과제입니다. 신앙 안에서 참으로 경계해야 할 적들이 있습니다. 쇄신과 거듭남을 위한 시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타성에 빠진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의 성장을 위한 노력은 조금도 없이 '내가 올해로 신앙생활한 지 30년이네, 40년이네'하는 자만심입니다. 늘 치열하게 자신을 담금질하려는 노력은 뒷전인 채 쓸데없이 지니고 사는 우월의식입니다. 신앙의 핵심에는 조금도 접근 못 한 채 부차적이고 비본질적인 외형에만 잔뜩 신경 쓰는 위선적 신앙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이런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예수님 가시는 곳마다 수많은 군중이 운집하곤 했는데, 개중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었습니다. 그토록 많은 기적과 표징을 자신들의 두 눈으로 현장에서 목격해 놓고선 그래도 모자랐던지 또 다른 표징을 요구하였습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생활을 시작한 이래 그동안 보여준 표징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침식까지 잊어가며 그들을 위한 사랑의 손길을 펼치셨습니다.
마귀 들린 사람들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셨습니다. 앞이 안 보이는 이들에게 시력을 되찾아주셨습니다. 청력이 손상된 사람들의 귀를 열어주셨습니다. 심각한 언어 장애를 안고 있는 이들의 말문을 트이게 하셨습니다.
온몸이 나병으로 문드러진 말기 환자의 피부를 말끔히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꼼짝 못 하고 누워만 지내던 중풍 병자를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이미 목숨이 떨어진 회당장의 딸을 되살려주셨습니다.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의 병을 낫게 하셨습니다.
갈릴레아 호수의 거센 풍랑을 말씀 한 마디로 잠잠하게 만드셨습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그들에게 치유의 능력과 악령들을 쫓아내는 능력을 부여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전무후무한 명설교, 세세하게 살아있는 말씀으로 당신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 땅에 보내신 메시아임을 명명백백히 밝히셨습니다.
더 이상 무슨 표징이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사실 군중이 요청한 표징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표징이었습니다. 결코 요구해서는 안 될 자신들의 개인적인 욕구, 얼토당토않은 허황된 바람, 끝도 없는 이기적인 욕심들을 충족시켜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끝도 없이 엉뚱한 요구를 해대던 군중은 하느님의 뜻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자신들의 뜻을 따르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그들의 요구 앞에 예수님께서 응답하실 리가 없습니다. 마음이 완고해질 대로 완고해진 군중, 끝까지 돌아서지 않는 군중의 행태에 너무나 가슴이 아프셨던 예수님께서는 요나 예언자와 남방 여왕의 예를 들며 거의 독설에 가까운 말씀을 그들의 가슴에 던집니다.
-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은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루카복음 11장 31절에서)
참으로 불행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자신들은 스스로 하느님과 가장 가까운 민족들이라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하느님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개만도 못한 종족이라던 이방인들이 줄줄이 하느님 나라로 들어갔지만 하느님의 장자 격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나라 법정의 피고인석에 다들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결정적으로 부족했던 것은 '지속적인 회개'였습니다. 회개는 평생 한번, 아니면 일생에 한번 하고 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매일 매 순간 지속적으로 수행되어야 할 일상적인 과제가 회개인 것입니다. 다행히도 아직 우리 모두에게는 기회가 있습니다. 아직 우리가 숨 쉬고 있다는 것, 이 세상에 두 발로 서 있다는 것은 회개가 가능하다는 표시고 하느님 자비와 용서, 새 생명과 구원이 가능하다는 표시입니다."
번뇌를 하면 늘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초연했던 자아가 부대찌개처럼 뒤섞이고 엉켜서 돼지밥이 되어버렸다. 그것이 하필이면 아주 어릴 때부터 수고스러운 습관으로 행동뒤에 따르는 정조한 미행이 되었다. 생각의 연결고리. 이것이 문제였다.
고질적이고 괴랄한 태고 태초의 근심의 근원지. 생각의 늪이었다. 기웃거리다 확인하려는 심리로 쫓아온 반추, 검열, 의심은 <보리울의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일진' 부랑아였다. 그렇기에 삼촌과 양어머니를 사랑하면서도 의심했다. 결국 목에 둘러진 검은 체인을 끊어야 했던 건 절단기가 아니라 내 손이었어야 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그렇게 하도록 수많은 실험을 진행해야 했다. 무한루프를 돌린 끝에 일심(만유의 실체)을 받아낼 수 있게 되었고 신호등엔 파란 불이 켜졌다. 신의 일침이 들려왔다.
"자숙하면서 많이 깨닫고 뉘우치렴. 네게 생각할 시간을 좀 주었단다. 사회의 악이 되지 않으려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거야. 자꾸 자책하고 그러는 거 아니다. 내가 본 너는 여태껏 본 녀석 중에 가장 착한 놈이야."
신은 자신의 입 밖으로 나온 '놈'을 뱉고서 흠칫 놀랐다.
"방금 건 실수다. 아무튼 내가 말하려는 의의가 뭔지 잘 생각해 봐! 번뇌에 자만하지 말길. 깨달음에 지치지 말길. 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마친다. 열 나는 군. 에잇, 아멘."
아멘 같은 소리 하네. 생뚱맞은 신의 말투는 광대보다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그지 같은 소리였다. 어쩌면 108 번뇌를 통해 메타 유니버스를 찢고 나온 미래의 자아가 한 말 같았다.
"아니, 신이 왜 저래?"
나는 생물학적으로 신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미토콘드리아도 아니었다. 그저 미물에 속한 하나의 인간이었다. 삼촌과 양어머니, 엄마 수녀님들, 동기 친구들, 선생님들, 보육원 선후배님들, 한때 같이 있던 회사 사람들, 도움 주신 출신 형제자매님들, 집주인 할머니, 아주머니, 주방실장님, 요구르트 아주머니, 필리핀 마닐라 장애우들, 전 여자 친구, 지금은 고인이 된 내 형, 친구들, 형님들, 수녀님들, 할아버지, 할머니를 거쳐 지금의 내가 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생겼다. 그토록 죽음을 갈망음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곡옥진 날들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이들이 알려주었다. 살 맛난 인생은 어제도, 오늘도, 미래도 아니었다.
백팔번뇌를 끊게 했던 건 <눈먼 자들의 도시> 속 주인공이 눈이 멀어질 때쯤 되받게 된 '희생정신'이자 석고처럼 굳은 '신념'이었다. 그것은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를 빚어낸 붓으로도 세공 도구로도, 앙투안 라부아지에와 피에르시몽 라플라스의 수소폭탄으로도 부서지지 않았다. 월 스트릿 황소 재질보다 황송할 정도로 섬세했으며 치밀하게 빛났다. 전문 용접공들도 세치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Oh, My GOD. 행할 행. 이것이 버르장머리 없는 엉뚱한 신의 강론이었다.
신부님의 강론이 끝나고 나는 어머니와 헤어져 삼촌의 차를 타고 보육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2018년 1월 23일 겨울. 나는 양어머니가 있는 실버타운으로 도착했다. 삼촌과 양어머니와 미사를 마치고 나서 삼촌은 지병이 드신 양어머니를 대신해 양로원 원장을 도맡게 되었다. 우리는 잠시 실버타운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양어머니는 춥다며 안으로 들어가셨다. 양어머니와 같은 방에서 한 대화를 떠올렸다. 돌아누운 엄마가 물었다.
"아들아, 혹시 아쉽고 서러운 점이 있다면 털아놔도 괜찮아."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아휴, 뭐가 서운해요. 하나도 없는걸요."
대답이 나오면 안 되었다. 엄마가 너무 그리웠고 너무 보고 싶었다고 분명하게 말했어야 했다.
"정말? 그럼 비밀 하나 들어줄래?"
"네."
"엄마는 주호가 착하게 자라서 참 좋아. 첫째를 낳았을 때부터 엄마는 임신중독증에 걸렸어. 그래서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해도 살이 빠지지 않았어. 둘째인 네 누나를 낳았을 땐 증상이 악화되어 결국 몸을 가누기 힘들었단다. 엄마가 자주 못 갔던 건 몸이 많이 안 좋아서였지. 여기 실버타운에서 최연소로 입소한 사람이 엄마인 걸 아니? 가끔 주호 볼 때마다 엄마가 얼마나 미안했는지 몰라. 너무 많이 미안하구나."
양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힘들었던 시절을 조곤히 읊으셨다.
나는 양어머니 아니, 엄마가 혼자 쓰다 만 성경을 얼굴에 덮고 옅은 안개의 미면 속에서 중얼거렸다.
"엄마,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는 전혀 몰랐어요. 임신중독증은 다른 말로 전자간증이라고도 한대요. 임신할 때 걸리는 고혈압성 질환으로 임신 전부터 고혈압이 있거나 하면 불운하게 걸리고 마는 증상이죠. 임신 후 발생되는 걸 임신성 고혈압이라고 하는데요. 혈소판 감소, 간 기능 저하, 신 기능 약화, 폐부종, 두통, 흐린 시야도 동반한대요. 그게 지속되면 추가 발병이 되더군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덤덤하게 웃으실 수가 있죠? 저 너무 마음 아파요. 당장에라도 엄마한테 안기고 싶어요. 가끔 엄마가 멈춰 있는 걸 보면 발작을 떨치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럼... 부종도 심하셨던 거네요. 전 엄마가 살 빼기 싫어서 그런 줄 알았어요. 움직일 때마다 아프셨단 게 이제 이해가 가요. 저도 그랬어요. 은둔형 외톨이에 외골수, 공황장애 때문에 말이에요. 엄마, 그런 일들이 있으면 일찍 얘기해 주셨어야죠. 왜 이제야 얘기하신 거예요? 그래서 서른 중반에 손목을 그으신 거예요? 너무 아프셔서. 반쪽짜리 양아버지가 세상을 뜨셔서. 그래서 하나뿐인 삶을 포기하고 싶으셨던 거예요? 날 봐요. 아직 살아있잖아요. 우리 아직 만나야 하는 약속 못 지켰잖아요. 이젠 제 품으로 돌아오세요. 엄마, 어른으로써 아이였던 당신을 안아주고 싶어요."
영겁의 시간을 넘어 늪지가 있는 숲을 지나 우리는 서로를 마주할 수 있었다. 실버타운 창밖에 내리는 달빛을 받아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안아주었다. 또 다른 삶의 이유를 찾았다. 검은 눈비가 하늘하늘 거리는 커튼 사이로 소복이 내렸다. 신은 이런 나를, 우릴 칭찬하실까? 이건 의미 없다. 사랑엔 의심 따위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