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카르마

곤충의 복수.

by 언데드

느닷없이 나른한 오전, 2006년의 여름방학. 인터폰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주호 대모님입니다."

"네, 어쩐 일로 전화하셨지요?"

"이번에 주호하고 2박 3일 동안 어디 좀 가려하는데 괜찮을까요?

'제발 돼라, 돼라, 돼라. 제발!'

"아하, 예, 그러셔요. 하지만 마지막 날 통금은 지켜주셔야 해요."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야 이곳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숨길 수 없을 만큼 기뻤지만, 수녀님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셨다. 작아지는 보육원을 돌아보았지만 미안함은 영원하지 않았다. 시간을 내어주신 그분들의 동행에 합류하자 대·부모님은 방긋 웃으셨다.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대화동은 우리들의 아지트였다. 나와 같은 나이 친구인 여자애 두 명, 그리고 합주부 악장이었던 형과 연극부 대장을 맡던 형이 멤버였다. 차가 대화동에 도착하자 검고 누런 털이 섞인 작은 개가 기다렸다는 듯이 선팅 된 차를 향해 짖었다. 조수석에 앉아계시던 대모님이 차에서 내리자 개가 헥헥거리며 반겼다. 나는 곤충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개는 조금 무서워했다. 해피를 처음 본 순간 무서워 최대한 안 쳐다본 척, 혹여나 달려들면 도망칠 채비를 했다. 그러나 사뭇 걱정과는 달리 딱 봐도 노견인 치와와의 이름은 '해피'였다. 눈 부신 햇빛을 올다보니 맑고 갠 날씨가 그의 이름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대모님께서 내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자 떨렸던 몸이 차분해졌다. 무서운 건 개가 아니라 내 걱정이었다.


등·하교를 할 때면 수영장 앞 화단에서 일종의 오락거리인 '킬링 게임'을 했었다. 아무리 놀게 없었다지만 생명을 가지고 노는 건 좋지 못한 행동이었다. 신이 불쑥 나와서 손사래 치던지 호된 말로써 말렸어야 응당한 일이었다. 호기심은 양심을 무시하듯 충동적인 행동들로 무마시켰다. 친구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정말 많은 개미를 학살했기에 어느 순간 내가 왜 그랬는지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단순히 어렸다는 핑계로 둘러대기보단, 학대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기쁨 비슷한 희열을 느꼈음에도 남는 건 조촐한 초라함뿐이었다. 그깟 '악인 파브르' 명함 떼는 게 뭐가 어려웠나.


첫 카르마가 꾸물거리며 발끝에서 올라와 온몸을 장악했다. 영화 <아나콘다>에서 나온 거머리들이 종아리부터 배 위까지 점령했다. 이 검은 것들을 떼어낼 수 있는 방법은 라이터로 지져 손으로 일일이 떼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질 못했다. 거머리 한 마리당 최대 흡혈량은 20~30ml다. 인간의 하루 철분 섭취량에 비해 최소 1.5배 가까이 된다. 그러므로 혈액공급량보다 흡혈량이 앞설 수밖에 없어 기절로 마무리되었다. 꿈에서 깬 나는 식은땀에 젖어 마치 오줌을 지린 꼴이 되었다. 덕문에 야단은 덤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되지 않아 두 번째 카르마가 찾아왔다. 일본식 가정집에서 얌전히 자고 있는 나를 누군가 톡톡 건드렸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흘겨보니 거대한 일본 왕개미였다. 졸지에 먹잇감이 되어버린 난 쏜살같이 방을 빠져나왔다. 어두운 복도 끝에서는 한 아이가 웃고 있었다. 같은 학급반 여자애였다. '엽기'로 불렸던 그 애는 가장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비상구로 올라온 거대한 개미가 턱을 벌려놓고는 친구의 몸을 순두부 으깨듯 두 동강 내어버렸다. 친구의 마지막 표정을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다. 씁쓸한 표정으로 웃고 있으면서 눈물 한 바가지를 쏟은 그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피바다가 된 비상구 반대편으로 도망치는 내 앞에 방금 전보다 훨씬 거대한 개미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렇게 죽는 건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다신 그러지 않겠...'


서걱.


개미를 죽이는 것 말고도 다른 곤충들 또한 가여운 희생양이었다. 자신보다 몇 천배 큰 거인에 대한 공포감을 분명히 이 검은손을 거친 곤충들도 느꼈을 터였다. 늘 잠에서 뒤척였던 것들이 어쩌면 저세상으로 간 곤충들이 작당 모임으로 가해자에게 직접 회신한 카르마였을지도 모른다. 저학년 시절 어느 가을날, 한 친구가 소운동장에서 단풍나무 씨앗을 가지고 들었다 놨다 하며 놀던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야 인마, 그거 만지면 손가락이 애벌레로 변한대."


믿을 리 만무했다. 그렇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보고 들은 것이 모두 진실인 줄로만 알았었기에. 그날 평생 잊지 못할 꿈을 꿨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영장 화단에서 일본 왕개미의 목을 붙잡고 싸움을 붙이는 중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손주름이 애벌레 마디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관절이 있는 부위가 좌우로 두둑 뚜둑 뒤틀리더니 자유분방하게 꿈틀거리렸다. 나는 울면서 즉각 병원으로 갔어야 했지만 보육원으로 뛰어 내려갔다. 느티나무 앞 유리문에 도착해 보니 보육원 건물은 소파만 한 거대한 검은 송충이로 뒤덮인 상태였다. 무서웠지만 당장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계단을 오르면서도 벽면에는 여전히 송충이와 다양한 애벌레들이 꿈틀거렸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 문을 열려했지만 해괴한 손으로는 열 수 없었다. 두터운 나무 문을 부수려 엘보우를 후렸더니 생활자들의 이목이 문간으로 쏠렸다. 때마침 그들은 식사 중이었다.


"어, 살생 파브르 왔어?"


없는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들의 신체는 메두사의 머리처럼 애벌레로 꿈틀거렸다. 손가락부터 변하기 시작한 애벌레의 개체수가 점점 불어나더니 혈관 속으로 들어가 꿈틀대었고 결국 나도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몸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서야 그 빌어먹을 꿈에서 깨어났다.


'생명을 함부로 대한 그 죄. 반드시 돌려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곤충을 통한 세 번째 '카르마'였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바라보는 것은 혹시, 우주 천체를 나돌다 마주한 빅뱅을 목격한 거였을까.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 수감자와 <안네의 일기> 가족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어째선지 그들의 기분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해피의 목을 보니 조금 찢어진 흉터가 나 있었다. 아파 보이진 않았지만 거세게 내리쬐는 자외선이 신경 쓰였는지 뒷다리로 살살 긁어댔다. 상처 없는 만물은 없다. <소로의 일기> 중 2월 8일 일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의 경험 대부분은 우리 내부로 들어가 어딘가에 자리를 잡는다. 경험은 우리가 사귀는 동아리와 같다. 궂은날이 든, 갠 날이든 어느 날엔가는 나타나 머릿속에 떠오른다. 몸과 정신은 결코 어떤 것도 잊지 않는다. 나뭇가지는 자신을 흔들고 지나간 바람을 기억하고, 돌은 받은 충격을 잊지 않는다. 저 들판의 오래된 나무와 모래알에게 물어보라.'


내가 상처받은 것은 우연 혹은 필연일까.

우연이라면 축복받은 사고일까.

필연이라면 불행을 타고난 운명일까.


해피를 보고 있자니 플라타너스 잎 표면처럼 까끌까끌한 뒷목이 거슬렸다. 돌도 충격을 받고선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 중 돌처럼 하나라도 상처 없는 건 없다는 걸까. 모난 돌이 물을 만나고 바람을 만나 깎이는 것처럼 보육원출신인 우리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마당에 깔린 반질반질한 돌멩이는 해피의 발구르기에 튕겨져 탁탁 소리를 내었다. 부싯돌도 아닌데 가끔 비치는 햇빛이 스파크를 내는 것 같이 보였다. 그마저 해피한 볼거리였다. 상처가 빛에 기대어 볼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