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풀 하우스(3)

향기로운 인생.

by 언데드

집 근처에서 물씬 풍기던 정육점 생고기 냄새는 영유아 시절이었던 다섯 살의 날 잘 이끌다가 어느 순간 멈추었다. 냄새가 나지 않자 코를 더욱 많이 벌름거릴 수밖에 없었다. 살려면 우선, 적극적으로 후각을 키워야 했다. 고기 냄새가 끊긴 어느 지점부터 새로운 냄새를 쫓다시피 따라갔다.


거북이 사육통에 들러붙은 오물 냄새, 약 10~12리터짜리 국통에 담긴 불어 터진 라면 냄새, 수명이 최소 30년 남짓으로 보이는 니스 발린 참나무 침대 냄새, 차아염소산나트륨이 흡수된 젖은 수영모에서 나는 수영장 물 냄새, 끈적한 기분이 들게 하는 달큼한 유과 냄새, 처음엔 싫었지만 나중에서야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녔던 수정과 속 계피와 잣 냄새, 한여름에 수영장에 가기 전 보육원 3층 대형 발코니에 앉아 하얗게 먹어치운 수박 냄새, 방학숙제 후 간식시간에 머그컵에 가득 채워진 노란 오렌지 주스 냄새, 보라색 천 원 냄새, 역류성 식도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식사 꼴찌'를 탈출해 박수갈채를 받은 뒤 제일 먼저 식사를 끝낸 뿌듯함을 느끼기도 전에 화장실로 재빨리 달려가 한 바가지 뱉어낸 참기름 가득한 가지볶음 냄새, 레고 냄새, 초콜릿 영양과자 키커라 냄새.

"빨리 안 먹냐"며 보챔을 당하다 결국 밥그릇에 그대로 역류된 괴액체를 쏟아내 불어난 괴식을 먹어야 했던 토란국 위액 냄새, 작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조심하다 여차하면 실수한 자에게 벌칙으로 내려진 '자동식 구타 로봇'의 죽도와 목각 냄새, 피멍을 뚫고 나온 비릿한 피 냄새와 구타 마찰열로 인한 살타는 냄새, 동급생 친구들과 함께 대한민국 제16대 노무현 대통령님께 초청받아 청와대에 들러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타고 온 오리 버스에서 리무진으로 옮겨 타 1일 대통령을 만끽했던 바람 냄새, 공연 초청으로 함께 온 이은결 마술사의 마술 냄새, 국정원을 학습 목적으로 탐방하던 중 옆에 있던 기자의 말로 도촬당하다가 기적처럼 전면에 실리게 된 신문지 냄새, 기차여행 마지막 날에 만찬으로 지급받은 햄버거와 콜라 냄새, 본인 서랍 속에 넣어 놓고는 아무것도 모르고 체육복을 꺼내 입다 맡게 된 썩은 귤 냄새, 자욱한 새벽 안갯속 하얀 매연냄새.

"잡을 테면 잡아봐!"라며 저 멀리 도망치는 방귀쟁이 소독차 냄새, 전심전력을 다해 뛴 보상으로 3:3 구장에서 호로록 빨아먹던 짜파게티 냄새, 롯데월드 캐러멜 팝콘 냄새, 에버랜드 놀이기구 손잡이에서 묻어난 짙은 쇠 냄새, 오리온 박스 속 과자 웨하스 단내, 동그랑땡 종이딱지 냄새, 터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소풍 점심시간에 락앤락 똑딱이를 떼자마자 확 퍼진 그립고도 그리운 집밥 냄새, 서울배 특선작으로 당선된 미술대회에 참가해 우연히 발견한 다리 부러진 방아깨비의 관절 진액 냄새, 대머리산 꼭대기에 우두커니 서 있는 소나무의 상처에서 새던 송진 냄새, 매미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뒷산에서 자욱하게 풍긴 젖은 숲 냄새, 홍합만 달랑 남겨놓고는 곤장에게서...

"빨리 처먹어"라며 구박받아 흘러나온 눈물 콧물의 짠 냄새, 대모님 집의 분홍색 오이비누 냄새는 외로이 이승을 떠도는 무연고 망자가 될 뻔한 내 발목을 힘주어 다시 붙잡았다.


"이리로 나오렴."

"네."


몸은 좀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리 오라니까? 해치지 않아."


헛기침으로 어색함을 애써 무마한 나는 아킬레스건에 이제까지의 힘을 사용하려 했다. 멈추었던 뇌 회로가 다시 가동하기 시작했다.


"갈게요. 당신이 서 있는 곳으로."


대모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젠 더 이상 지켜보기만을 지체할 수 없었는지 손짓도 함께였다. 오랜 기다림 끝에서야 나는 그분의 품에 안기진 않았어도 느낄 수 있었다. 안온한 당신의 표정을 짐작하고 흉내 낼 수 있었다.


"명복을 빌어."

"네?"

"복 빌어줘, 해피에게."


그 해로부터 2년 뒤. 해피는 세상을 떠났다.


'난 네가 영원히 살 줄 알았어. 하지만 우린 누군가로부터 태어나고 석양처럼 지는 운명을 지녔으니 빌 수밖에. 잘 되길 바라. 해피.' 슬픔으로 흥건했던 속마음이 분홍색 비누처럼 단단하게 굳어갔다.


한 해가 흘러 어느덧 6학년 말에 이르렀다. 6학년이 끝나면 우리는 모두 부산으로 내려가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삶은 앳된 젖살을 쏙 빼어 완전히 바뀔 줄 알았다. 과오였고 착각이었다. 인터폰의 부름으로 1층에 내려가 사랑방에서 심리 상담을 마친 후 박사님께서는 한 가지 제안을 하셨다.


"우리 집에 놀러 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