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의 땅, 경주에 잠시 머무르다.
2009년 12월 31일. 부산에 갔어야 했지만 나는 운이 좋게 내려가지 않았다. 가끔 심리 상담과 가정 체험을 도와주러 연락해 주신 박사님을 따라 결국, 서울에서 경주로 오게 되었다. 적색 육면체 MP3로 시작해 귀로 꽂힌 이어폰 너머 빅뱅의 <마지막 인사>를 들으니 경쾌한 마음이 쾌청해졌다. 손에 쥐어진 박사님의 온기는 따뜻해도 너무나 따뜻했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한여름에 내리쬐는 성모 마리아의 친절한 성령이었다.
"박사님, 우리 진짜 박사님 집에 가는 거예요?"
"그럼. 앞으로 형과 지내면서 재밌을 거야. 기대되네!"
"형이요?"
"응, 이따가 교수님 하고 같이 올 텐데 한이라고 아니?"
"아! 그 형 알아요! 키 크고, 운동도 잘하고, 잘생겼고, 착하던데. 헤헤."
"그렇구나. 잘됐네~. 아까 얘기하려던 거 마저 들려줄 수 있겠니?"
야간행 KTX는 어느새 경주 아파트에 도착했다.
"글쎄요. 너무 힘들어서 다 설명하기 힘들어요. 제가 겪었던 힘든 일을 입 밖으로 꺼내놓기라도 하면 점점 부정적인 생각에 먹혀드는 것 같아서요. 고통이 없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누구나 고통을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요. 밤낮 안 가리고 드글거리는 이 악한 맘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한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해요. 종교를 갖고 있다는 거요. 아빠 신부님이 하셨던 말씀대로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요. 어쩌면 제 말수가 적은 이유들이 모두 악한 마음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기 위한 저항일지도 몰라요."
박사님은 말없이 어머니와 같은 다정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셨다.
"대모님과 친구들을 따라 대구의 어느 뷔페식을 갔어요. '에스카르고 드 부르뉴고'라는 프랑스 애피타이저가 있었는데, 우리나라는 달팽이를 요리하지 않으니 모양만 흉내 냈더라고요. 습, 딱히 맛있어 보이진 않았어요. 평소에 어패류가 밥상에 올라오면 못 먹어서 구타를 당하는 게 당연했어요. 편식하는 절 보고는 대모님이 억지로 먹일 거라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으셨어요. 이 세상에는 때리는 어른만 있던 건 아니더라고요. 거기선 밥 안 먹으면 막 때리고 그랬는데... 아! 그리고 한강도 갔어요. 녹번역에서 불광천 산책로를 따라 강이 보이는 곳으로 5km 이상 걸어가면 한강이 나타났어요. 대부님 모임에 같이 있던 여자애들과 합주부 악장을 맡던 형이랑 엄청 놀았어요. 한강 뷰를 보면서 붉은 체크무늬 돗자리에 도시락도 먹어보고... 대부모님과 잠시 떨어져 오리배 페달을 굴려봤지만 너무 안 나가서 서로 뭐 하냐며 투닥거렸어요. 그래도 우린 익사할 뻔한 위험 없이 정말 안전하게 뭍으로 돌아왔죠. 합주부 형의 대부모님 집에서 형의 캐릭터로 <메이팔 스토리>를 플레이하다 '코-쿠 타운'을 배회하는 맵 몬스터 '코-쿠 슬라임'에게 몸통 박치기를 당해 비석이 세워지기도 했고요. 제가 정말로 비몽사몽 하진 않았지만 마냥 생각 없이 놀았던 그때가 너무 좋아서 사진으로 담고 싶었는데 디지털카메라가 없어서 굉장히 아쉬웠어요. 만약 있었다면 꽤 많았을 텐데 말이죠. 어떤 친구가 있었는데요. 그 애는 개를 무지 무서워해서 멀찌감치 바라만 봤어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얘 안 물어, 괜찮아.' 그러더니 조금 다가오더구먼 '그래도 아직은 무서워...'라고 했죠. 저처럼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는데 나중엔 뭘 좋아할지 모르겠어요. 정말 친해지고 싶었는데 이젠 다시 못 볼 거라는 생각에 너무 많이 아쉬워요."
때마침 도어록 비밀번호 눌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궁금함을 못 참고 현관에 누가 오는지 지켜보았다. 그들의 정체는 상담 때마다 가끔 얼굴을 내비치던 교수님과 한이형이었다. 교수님은 찌뿌둥하셨는지 기지개를 켜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셨다.
"하이고-, 드디어 집이다."
현관 등에 비친 한이 형은 자신보다 한참 작은 날 보고 "안녕, 주호? 오랜만이네."라고 했다. 나 또한 그 형을 1년 만에 봤으니 덩달아 반가웠다.
"와! 형, 키 엄청 컸다! 부산 생활은 괜찮았어?"
"별로야. 내 마음의 별로 ㅋㅋㅋ."
에잇, 장난은. 형의 낡은 아재 개그가 흥미롭진 않았으나 피식했다. 그걸로 스탠딩 코미디를 했으면 손가락질을 당하고도 남겠지만 2008년도란 걸 감안하면 들어줄만했다. 이렇게 박사님은 나와 기차로, 교수님은 한이형과 차로. 넷이 모인 우리는 한 가족 구성원이 되었다. 하지만 완성형은 아니었다.
"자, 주호야, 한아. 여기 이 방이 너희 방이고 여기 이 방은 누나 방이야."
"누나요?"
"며칠 뒤면 너희들 공부 가르쳐 줄 누나가 올 거야. 그러니 말 잘 듣고 같이 영어공부도 하고 재미있게 놀렴."
"예에-!"
크리스마스가 지난 뒤 박사님과 교수님의 집에서 경험했던 모든 날들은 기적이었다. 이 경험은 말라비틀어져가던 내 삶을 어두운 우물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위로 길어 올렸다. 아르키메데스의 발명이 있었기에 지워졌던 일기장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어렵게 꺼낸 이 추억을 다시는 잊지 않고 살겠다던 다짐은 <수학귀신>에 들려 수염 기른 발명가처럼 외쳤다.
'유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