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타고 가요.
"미국에 가면 어떻게 해요? 영어도 잘 못하는데..."
"걱정 마. 영이 누나가 알려줬던 거 안 잊었지?"
박사님은 영이 누나에게 눈짓을 보이며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것만 잘 기억하면 돼. 어떤 일이 있어도 누나와 벨라 이모가 있으니 잘 될 거야. 나중에 선생님들도 도와줄 거야."
박사님은 시계를 본 후 우리에게 어서 비행기에 올라타라며 손인사를 건넸다. 우리 삼인방 중 새 동료가 들어왔다. 박사님 집에 같이 살진 않았지만 내가 시설에서 생활했을 당시에 후원자로 계셨던 분의 친아들이었다. 찬이는 새로운 일원으로 우리와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그는 다소 제멋대로이긴 했으나 우등의 잠재력을 가진 공부꾼이었다. 그리고 질투도 많았다. 하지만 그에 비해 나는 공부를 못했고 질투심이 많았다. 자랑할 거리가 아니라서 때때로 찬이 앞에 서면 기가 죽었다. 그딴 게 무슨 상관이냐며 생긋 웃던 우린 캐리어를 끌다가 넘어졌고 갖은 일로 투닥거렸다. 다행히 영이 누나의 침착한 인솔로 탑승수속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비행기에 탑승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출발할 시간이 되어 인천공항 관계자의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손님 여러분, 미국 시카고 국제공항까지 가는 아시아나 항공 108편입니다. 좌석벨트를 매주시고 전자기기는 비행모드로 전환해 주십시오. 짐은 선반이나 앞 좌석 밑에 보관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잠시 뒤 비행기 안전수칙 영상이 재생되었다. 그와 동시에 승무원의 안내가 이어졌다.
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시아나 항공 108편, HP1001 편의 탑승을 환영합니다. 미국 시카고 국제공항까지 비행시간은 14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며 '불모의 땅' 미국까지 아름다운 비행에 아시아나 항공이 함께 하겠습니다. 아울러 기내에서 흡연, 승무원의 업무 방해, 전자기기 사용 기준 위반은 항공보안법 저촉사항임을 안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띵-. 띵-. 띵-. 띵-.
"오오 움직인다. 움직여! 놀이기구 타는 것 같아. 그렇지?"
이크, 나만 신났나. 찬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아, 그만 좀 해! 가만히 있어, 제발 좀."이라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형과 나는 거북이의 <비행기>를 부르며 철없었던 그때로 돌아가 방방 뛰었다. 옆에 나란히 앉아있던 영이 누나는 찬이처럼 당황해했고 급기야 점잖은 둘이서 철없는 둘을 말렸다.
"얌전히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안 가지. 우리, 안전하게 잘 갔다 오자."
안내방송은 멈추지 않았지만 우리는 어른들께 실망시키지 않기로 해 조용하게 앉았다.
'손님 여러분, 곧 이륙하겠습니다. 좌석벨트를 매셨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손님 여러분, 안전을 위해 자리에서는 항상 좌석벨트를 착용하시고, 화장실 내의 향수, 스프레이 사용으로 화재경보기가 작동할 수 있으니 사용을 삼가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면세품 구입을 원하시면 주문서를 써주시고 예약 주문하신 분은 승무원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자세한 사항은 안내 책자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 노란 종이는 뭐야.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네. 찬, 이것 좀 해석해 줄래?"
"이건 이거고 이건 이거야. 엥. 영어 잘하게 생긴 애가 영어를 하나도 못하네. 이참에 열심히 공부 좀 해."
찬이는 혀를 차면서 노란 종이에 체크해야 할 것들을 세심하게 알려주었다. 고마웠다. 나는 영어에 관심은 있었지만 스피킹은 자신 없어서 웬만한 단어만 봐도 머리가 굳어졌다. 모 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재학 중이던 영이 누나와 똑똑한 찬이가 없었더라면. 아마 형과 나는 길 잃은 아이처럼 울었을지도 모른다. 세관신고서를 다 작성할 즈음 비행기조종사가 이륙 전 안내방송을 했다.
'손님 여러분, 미국 입국에 필요한 서류를 확인해 주십시오. 아울러 해외 전염병 관련, 국가에서 지정한 오염 지역에 체류, 또는 경유하신 분은 건강상태 질문서를 작성하신 후 검역관에게 제출하여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누나와 찬이의 도움을 받아 미국에 도착한 우리는 가장 먼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와 물품보관소로 갔다. 캐리어를 체크하고 지문 스캐너에 지문을 프린팅 한 뒤 수속관에게 종이를 건넸다. 금품 탐지기를 지나 입출국 대기실에 웃으며 서 계신 벨라 이모를 만날 수 있었다. 벨라 이모는 박사님의 아는 지인이자 죽마고우였다. 그녀는 미시간과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큰 호텔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주 업무로 카운터에서 예약승인과 상담, 캐셔를 맡고 있었다.
마스카라가 진한 이모의 눈매를 봤을 때 나는 지레 겁을 먹어 무서웠지만, 말 많았던 건 닮은 점이라 우린 벨라 이모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이모는 의외성 다분한 사고뭉치였고, 울보였으며, 재치 있었고 재미있었다. 우리는 이모를 따라 이모의 경차에 올라타 미시간 주로 향했다. 찬이는 신호를 깜빡한 이모의 뒷좌석에서 신호가 바뀌었다고 몇 번을 다그쳤고 이모는 여유롭게 "Oh, Jesus, my bad~. kids~."라고 하시며 웃어넘기셨다. 손뼉도 함께 치셨으니 왜 건강한지 알겠더라.
미시간 주의 어느 복층 주택 집, 이곳은 박사님과 교수님이 신혼부부였을 때 생활하시던 장소다. 차고문을 열자 우리는 코를 움켜쥘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먼지가 나풀댔고 유령거미와 쥐며느라가 많았다. 하지만 쥐는 없었다. 우리는 1층에서 생활하지 않는다. 2층에 도착하자 벨라 이모는 우리가 여기서 앞으로 3주간 머물 것이라 했다. 생판 모르는 곳에 와 "이곳은 당신들이 머물 곳입니다."라고 소개를 받으니 꼭 수련회나 산악 별장에 온 것 같았지만, 현실은 그토록 발딛기를 꿈에 그리던 미국이었다. "It's... American dream!"이라고 말한 나를 보며 벨라 이모는 자신의 업무를 위해 호텔로 돌아가셨다. 그러곤 내일 아침이면 자신이 올 거라고 했다.
다음 날, 건장한 미국인 청년이 우리 아지트로 와 벨라 이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분도 혹시 박사님의 지인일까? 둥글게 뜬 눈으로 이모께 인사하니 얘기를 나누다 만 두 분은 싱긋 웃으셨다. 이모는 이름 모를 아저씨에게 나와 뒤따라 나온 한이 형, 찬이, 영이 누나를 차례대로 소개했고, 우리도 남성의 신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미시간 공립대학교에서 여름마다 주최하는 'Summer youth program'의 대장격 스태프였으며 학생들을 도맡아 관리했다. 검은 티에 듬직한 덩치가 벨라 이모보다 커 공포스러웠지만 두려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극심한 공포감이 뭔지 모를 정도로 다양한 경험과 일상으로 붓칠 되었다. 눈치 볼 것도 없는데 뭐가 문제야? 그날 우리는 월마트(Wall mart)에 들러 벨라 이모를 따라 장난감을 샀고, 달러로 계산해 보았다. 2달러의 장난감을 받은 마트 직원은 내게 웃어 보였다.
"What's wrong? Oh, You are not american."
직원은 달러와 센트 구분을 해주었고, 벨라 이모는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셨다. 모든 문제는 남이 해결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결하도록 생각해 보는 것, 그게 안되면 도움을 요청하는 당연한 절차를 미국 생활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친절하게 응대하신 직원분이 참 고마웠다.
미국에 온 지 약 이틀이 되었고, 식당에서는 베이컨 냄새가 났다. 형보다 일찍 일어난 나는 에어쿠션을 짚고 문을 살짝 닫았다. 냄새가 새면 뺏어먹을 테니까! 우리 형제 사이를 가두었던 건 승자독식이었다. 하지만 누나는 공평하게 베이컨 세 개, 에그프라이 한 개, 매쉬드 포테이토 샐러드 한 줌으로 접시에 알맞게 담아 주었다. 아침 식사를 쩝쩝대고 있던 찰나에 찬이가 문을 열며 실망한 모양새로 나타났다.
"또 혼자 먼저 나와서 잡숫고 앉았네. 깨우지도 않고."
"치, 먼저 일어난 새가 박살 나게 잡순다. 몰라?"
그때 형이 등장했다.
"누가~ 싸우래~."
육상부 운동을 통해 다져진 근육과 185에 육박하는 키를 가진 한이 형. 얄밉게 약 올리는 구석도 있었지만, 내가 짜증 내는 반응이 재밌다는 이유로 놀려댄 그가 그냥 좋았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성격을 가장 닮고 싶었다. 어쩌면 성인이 된 나도 그때의 형을 조금은 닮지 않았을까. 공부를 못해도, 자주 화내도, 자주 울어도, 아이같이 굴어도 여유로운 형의 좋은 점을 내 것처럼 만드는 것이 소원이었다. 내 친구이자 형제인 형이 나서서 붉은 기류에 파장을 일으켜 여차하면 일촉즉발일 상황을 한풀 꺾어 금세 소멸시켰다.
우리는 벨라 이모의 낡은 승용차로 미시간 아침 공기를 뚫고 대학교를 향했다. 대학교 외관을 보자 사진으로만 보던 미시간공립 대학교의 아름다운 자태가 드러났다. 대학교 주변엔 깔끔하게 재단된 풀밭이 있었고 돗자리를 깐 외부인들이 웅성하게 모인 우리 쪽의 사람들을 보자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학교 지하는 오리엔테이션실이었고 그곳은 'Break or resses time'(휴식시간)으로 지정된 공간이었다. 이곳은 학생들을 모아 앞으로의 Summer Youth Program(여름 청소년 프로그램) 일정이나 공문을 공표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곳에 모여 아시안, 히스패닉, 아프리칸, 아메리칸 사람들이 한 곳에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마틴 루터 킹이 꿈꾸는 것. 인종차별 없는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져 비빔밥 참기름에 준한 고소한 인간냄새를 풍기는 현실이 보였다. 미국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싶었다. 한이 형은 미국계 한국인. 나는 필리핀계 한국인. 찬이는 그냥 한국인. 영이 누나는 영어 잘하는 한국인. 당근, 고사리, 콩나물, 숙주나물을 연상케 하는 조합이 입성하여 코리안 팀을 이루었다.
"이곳엔 이러이러한 종목이 있습니다. 지원서류를 작성하고 출입증을 맞추는 과정이 있을 테니 작성을 마치면 이 선생님을(옆을 가리키며) 따라 포토실로 오세요. 사진을 찍고 출입증을 발급받으셔야 저녁식사를 먹을 수 있습니다. 불가피한 사건을 일으키지 않도록 각 팀의 인솔자는 참고하시고요. 통제가 되지 않으면 우리가 직접 나서서 지명 관리하겠습니다. 내일부턴 지정된 팀을 따라 본 크루에서 해체될 것이니 알아두시면 좋겠네요. 아, 그렇다고 아주 안 만나는 것도 아니니 걱정은 마시고요. 식사시간이 되면 모두를 볼 수 있지요. 다른 질문 있으신 분?"
대장 스태프 선생님은 마이크를 들고 질문으로 프로그램의 방향과 설정을 알려주고 학생들의 답장을 기다렸다. 질문을 하는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있었지만 우린 생쥐 기절한 듯 조용했다. 우리 한국 팀은 모터 엔지니어링 반, 레크리에이션반, 광석 익스플로러 반을 택했다. 모터 엔지니어링은 말 그대로 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지원하는 반이다. 레크리에이션은 놀이의 흥미도를 높이기 위함과 어떻게 하면 특정활동을 통해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인가가 목적인 반이고, 광석 익스플로러는 직접 광산에 들어가 동굴체험도 하고 오팔, 토파즈, 석영 등의 광석을 가까이에서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반이었다. 또한 지질학 및 원리학을 배우는 수업이 포함되어 있어 아이스크림도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나의 왼손은 '아이스크림'을 듣자마자 다급하게 비주기성 탄식을 막았다.
우리는 차례대로 포토존에서 서머 프로그램 패널을 들어 학생증을 등록했다. 이후 인솔하시는 스태프의 뒤를 따르며 대학교 내부를 둘러보았다. <스파이더맨 2>에서 보았듯이 미국의 대학교는 정말 이뻤고, 다시 오고 싶은 장소로 여겨졌다. 언젠가 꼭 다시 이곳으로 오겠다고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성당 홀처럼 천장이 높은 레스토랑과 기숙사, 교실과 하이틴 영화에서만 보던 따뜻한 느낌의 복도를 보자 아라비안 카펫이 심장을 감싸는 기분이 들어 행복했다. 서머 캠프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담당 스태프를 앞으로 해 대학교 뒤편에 모였다. 우리가 대학교에 가는 기간은 이튿날 뒤였고, 그 시간 동안 시차적응을 위해 제때 잠을 자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서부 영화에서 보던 새벽길 같았다. 시원하게 입은 반팔티에 이파리 위로 옅게 깔린 이슬방울이 튀었다. 우리 한국 팀은 밤안개를 맞으며 다음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