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우당탕탕 미국 생활기(2)

탈곡진 경사로를 내달리다 만난 호수.

by 언데드

1] 미국 생활 첫 주. 모터 엔지니어링 수업. (Fst week. Motor Engineering class)


형과 영이 누나와 나는 늘 함께였다. 찬이는 자신감이 붙었는지 다른 수업에 참여했다가 다시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미국이라는 외지에서 서로 손을 놓아선 안 됐으니 찬이는 그걸 알았을까. 문득 자동차를 타고 큰 운동장을 자유롭게 배회했던 가슴 뛰는 기억이 떠올랐다. 7살 유치원생이었을 때 보육원 봉사자로 활동하시던 사자 같은 이미지의 레오 대부님은 소운동장으로 차를 몰고 와 나와 친구를 불렀다. 나는 대부님의 팔에 푹 안겨 무릎에 올라 차창 너머의 또 다른 세상을 보았다. 나와 조수석에 앉아 있던 친구는 대부님의 손을 타 번갈아가면서 "와! 되게 신기해!"라고 하며 핸들을 만지작거렸다. 내 작은 손으로 아무리 힘을 줘봤자 핸들은 확고한 신념처럼 요지부동이었다. 나와 함께 있던 친구는 나보다 힘이 셌지만 핸들을 이리저리 움직이다 하마터면 차가 골대 기둥에 박을 뻔했다. '가만히 있으면 반은 간다.' 이런 말을 이때 쓰는 건가 싶었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다만 차주인 대부님에게 금전적인 피해가 따르지 않도록 도리 있게 운전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레오 대부님이 이해하셨던 건, 우린 여전히 실수투성이. 세상살이 서툰 아이였다.

수업 첫날, 흑인 학생 무리는 정말 갱스터 같았다. '납치당하면 어떡하지? 너무 무섭다.' 이런 생각이 들어 그들에게 가까이 가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뜻밖에도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건넸던 사람은 그들이었다. 다가와 악수를 건넸다.


"Let's do our best, bro."


같은 유색인종이었지만 편견과 의심을 가졌던 게 부끄러워 선뜻 친절하고 두툼한 손을 잡을 수 없었다.


'무슨 이유로 접근하려는 거야?'

'납치 밑밥 깔기 같은 뭐, 그런 건가?'

'이러다 잡아먹히는 거 아닌가?'


정상일 리 만무한 발칙한 발상이 소행 성군처럼 주위를 겉돌았다. 선생님은 우리를 그들에게 소개했다.


"이 분들은 아주 먼 나라인 한국에서 온 학생들입니다. 거기 학생들, 잘 모르는 게 있으면 친구들과 제게 궁금한 점 물어보도록 해요."


선생님은 단상에서 내려와 수업 목차와 학습계획표를 각자에게 돌린 뒤,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자고 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이 과목에 지원했는지, 한국은 어떤 나라인지, 우리에 대해 많이 궁금한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또박또박 설명 잘하는 영이 누나와 찬이와는 달리 나는 어버버로 일단락했다. 당황스러웠다. 아무런 문장조차 제대로 구사할 수 없었기에 자신이 형편없다고 느껴졌지만, 자신을 믿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용기 내어 아는 단어와 문법을 조합해 재잘댔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개그로 웃음을 꾀어 새로 사귄 친구들을 가까이 두게 되었다. 베기팬츠가 성행하던 시기, 흑인 친구들은 타이트한 속옷 위에 걸친 바지를 보기 힘들 정도로 추켜 입어 언뜻 보기엔 거추장스러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현지 패션워크에 내디딘 새로운 세상에 닫힌 나의 마음을 들이미는 일이 불필요한 걱정과 관련 없는 유니크한 경험이었으니까.

우리는 이번 수업에서 주로 야외활동을 했다. 이동수업은 너무 기대됐다. 대학교에서 맞이한 아침 공기는 새롭고 신선한 경험을 뇌 주름에 감각적인 활자로 새기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선글라스를 쓴 파랑 볼캡 선생님은 우리를 앉히고 버기 원동기 조작법과 안전수칙에 대해 설명했다.


"이 버기 원동기를 타고 구불구불한 코스를 완전히 마쳐야 합니다. 삼각기둥에 박으면 속도를 다시 측정할 겁니다. 자, 우리는 스피드건 전광판에 뜨는 기준에 맞게 시속 10~20km를 유지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인명사고가 발생할 테니까요. 아셨죠?"


오전 수업동안 중천에 뜬 미국의 해는 점심을 유혹했다. 뜰밭이 잘 보이는 공터에 큼지막한 돗자리를 몇 개 깔고 앉아 다들 밝은 표정으로 다양한 제스처를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음침한 배식실에서 홀로 남아 온갖 반찬을 국그릇에 넣어 눈물 콧물 짜며 먹어야 했던 나는 어릴 때의 기억을 회상했다. 어느 특정한 인종 할 거 없이 함께 식사를 하면서 영어로 내러티브를 나누는 게 그토록 원했던 것이었다. 버킷리스트를 한 개 이루었으니 행복은 당연지사 제곱이 되었다. 나의 작은 바람은 뒤틀린 질투 속 선망과 야망을 넘어선 그 이상이었다. 이 순간을 온전히 만끽하고 싶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무거운 헬멧을 착용하고 버기 원동기에 탑승했다. 한이 형은 침착한 성격의 소유자답게 제 속도를 유지했고, 영이 누나는 조심스럽게 살살 갔다. 찬이는 몇 번씩이나 주황빛을 내던 꼬깔콘을 쓰러뜨렸다. 아잇! 또 넘어지고 난리야! 핸들을 탁탁 치면서 왜 자꾸 엉뚱한데 박는 거냐며 찬이는 제 분을 못 이겨 성질을 냈지만 형과 나는 나란히 서서 그 모습을 보고는 깔깔거렸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었다.


"쟨 아마 지옥 같을 거야."


내가 말했다. 한이 형은 웃겼으면 잘한 거라면서 "이제 네 차례야"라고 했다. 나는 경직된 표정으로 버기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시동을 걸었다. 순간 엔진의 프로펠러가 과잉회전을 해버려 급발진이 일어났다. 찬이는 복수심에 깔깔거렸다.


"하하! 너 대체 뭐 하냐! 똑바로 해!"


나는 또다시 코스 돌기를 반복했다. 선생님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예요."라고 차체를 탁 치시며 다시 해보라고 하셨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다시 핸들을 잡았다. 나는 고도의 집중 끝에 꼬깔콘을 전부 피했고 코스 종료 선에 무사히 도착했다. 내가 헬멧을 힘겹게 벗는 동안 메이트들은 입을 다물지 않았다. 히죽 웃던 스태프 선생님이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장난스레 사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속도는 40km인데 하나도 안 박았네요. 잘했어요."


그들의 뜨거운 박수와 환호하는 휘슬 소리가 계속해서 뇌리에 맴돌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모터 엔지니어링 반은 모조 공항에 도착했다. 거기에서는 날아가지 않는 모조 비행기에 탑승해 기물을 집접 만져보고 학습하는 과정이 진행되었다. 비행기 동력엔진의 구동원리와 이륙하는 과정, 착륙하는 과정까지 이수받고 나서 우리는 첫 주 수업을 마칠 수 있었다.


'... 도착했습니다. 좌석벨트를 착용하시고 비행기가 멈춘 후 선반을 여실 때에는 물건이 떨어지지 않게 유의해 주십시오.'


환청이 들렸다. 모조 공항을 빠져나갈 때의 비행기 착륙 시에 나오는 방송이 뇌리를 스쳤다.


'아직이라고... 미국 생활 안 끝났다고요...'


그렇게 일주일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2] 미국 생활 둘째 주. 레크리에이션 수업. (Snd week. Recreation class)


<나 홀로 집에>에서 나온 주인공 캐빈을 닮은 두 살 아래의 메이트가 대뜸 'Beef cake!'이라고 했다. 그게 무슨 뜻이야? 형에게 그가 설명했다. 뭐, 그런 뜻이 있다고 둘러댔지만 비밀은 없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이 '비프 케이크'는 성인 잡지에 나오는 근육질 남자를 말한 거였다. 농담을 좋아하던 그 아인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맥컬리 컬킨처럼 꽤 유명해지진 않았을까. 혹은, 아이들의 꿈을 키우는 교사가 되었을까.

인도 출신인 레크리에이션 담당 선생님은 풍선을 사람사이에 두고 터뜨리는 놀이와 탁구, 팟럭 파티(potluck party), 축구 모형 게임 등등의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진행했다. 가장 기억나는 수업이 있다면 아마도 이 수업일 것이다. 연령대가 최하로 집계된 이 수업은 사춘기에 막 접어든 나와 형이 <이웃집 토토로>를 보던 시절의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원인이었다. 우리보다 조그만 아이들을 보자 이런 환경에서 자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과거는 지난 지 꽤 되었고 훗날 태어날 자녀가 좋은 장소에서 이들과 함께라면 행복할 것 같았다. 우리는 수업이 끝나면, 지하실에 내려가 어김없이 축구 모형 게임(수업과는 다른 장소)을 했다. 손잡이를 돌리며 게임을 하던 중 갑자기 등장한 학생이 한국말로 말을 걸었다.


"이거 진짜 재밌지?"


자신을 상우라고 소개한 친구는 얼굴만 가끔 비쳤기에 중국인이나 일본인 정도로 생각했다. 타국에서 같은 동포를 보는 것은 의외적이라 많이 놀라웠고 기뻤다. 편하게 한국말을 할 수 있으니 서로가 동갑이란 걸 알자 우린 짧은 시간에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는 자판기 주위에서 음료수를 사달라는 여자애들에게 작업 거는 방법도 알려주었고, 귀염상인 외모로 인기도 많았으며, 짤짤이가 넘치던 부자였다. 그를 만난 이후 나는 마음에 들던 여자에게 고백했다가 퇴짜를 당한 적이 있었다. 상우는 그건 잘못된 방법이라며, 남을 몰래 훔쳐보는 건 나쁜 것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우리는 나중에 인터넷 메일을 쪽지에 적어 공유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미국에 유학생활을 하게 된다고 고백해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했고, 메일만 줄 수 있다고 전했다. 결국 난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와 헤어졌다.


주말이 되자 우린 교수님의 가족분들을 보기 위해 벨라 이모의 차를 타고 시카고로 떠났다. 시카고에 도착한 후 박사님과 교수님께서 미리 귀띔하셨던 분들을 뵈었다. 미국의 주택은 보면 볼수록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가족분들이 우릴 보시며 "너희들이 그 아이들이구나!" 하시고는 반갑게 맞이하셨다. 우리는 그들의 품에 안겨 가정의 온정을 마음에 담게 되었다. 우릴 반기셨던 분은 2층에 올라가면 두 개의 빈 방이 있으니 무거운 짐 풀고 쉬라며 안내하셨다. 우리 팀은 시카고에서 아늑한 하룻밤을 묵었다. 미시간 주에 있는 주택에서는 매트리스에 가볍게 이불을 덮었지만, 시카고에서는 커다란 침대에 푸근한 이불을 덮을 수 있었다. 그 따뜻함이 아주아주 오랫동안 기억과 마음속에 남아 미국의 생활은 신께서 주신 기적 같았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가족 일가분들은 우릴 부르며 아침밥 먹으러 내려오라고 하셨다. 박물관에 가야 하는 일정이 잡혀 있는 날이다. 눈곱을 떼며 곡선계단을 내려온 나는 여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덕분에 너무 잘 잤어요. 혹시 <박물관이 살아있다>에서 나온 박물관이 정말 여기에 있나요?"

"잘 잤나 보구나. 필드 뮤지엄이 시카고에 있고말고. 얘야. 넌 꼭 가보고 싶었지?"


이모는 토스터기에 빵을 누르며 뒤를 흘긋 돌아보셨다.


"그럼요!"


모두가 식탁에 앉아 어김없이 식사 전 기도를 하고, 제 자리에 앉았다. 교수님의 누님이 세 분, 우리 일행은 네 명에 벨라 이모까지 해서 총 여덟 명이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각자 자신을 한 줄로 소개 한 뒤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박물관에 가는 시간과 돌아와야 할 시간을 공유했고 가장 나이가 많으신 이모는 팸플릿을 나눠주셨다. 종이를 보며 들은 브리핑은 식사를 하는 동안 진행되었다.

한이 형은 딸기잼을 가져와 구운 바게트에 발랐고 추가로 가져온 뜨거운 계란 프라이를 얹었다. 찬이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땅콩잼을 또 너만 먹냐며 내 옆에 있던 피넛버터잼을 자신의 옆에 두었다. 영이 누나는 우유를 내려놓고 말없이 웃음 지었다. 나는 잼과 달달한 시럽과 버터가 발린 부드러운 펜케익을 한 입 물었다. 침샘에서 나온 뜨끈한 침이 빵을 살살 녹였다. 우리는 필드 뮤지엄에 가는 동안 길을 자주 헤매었다. 가족분들 중 이모가 친절히 설명했던 걸 떠올려 맵을 보고 따라갔지만 번번이 잘못된 길을 들렀다. 나는 잘못 와버린 장소에서 바깥이 훤히 보이는 검은 울타리 너머를 까치발로 내다보았다. 시선은 나인봇 세그웨이 트웰브(Ninebot segway12)를 탄 무리를 따라가다 박물관에 멈춰 섰다. 팸플릿 지도를 꺼낸 영이 누나는 어딘가 응시하는 내 눈길을 따라 박물관을 가리켰다. 한이형과 찬이가 외쳤다.


"아아! 저기야, 저기!"


박물관에 도착하자 아주 신기한 광경에 놀랐다. 입구를 향한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의 뼈가 금방이라도 포효할 것 같은 동작을 취해 섬찟했다. '박물관이 살아나는 밤'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우리는 선사시대 섹션에 전시된 신석기 모형인물이 있는 곳을 지나 이집트인들의 미라 보존 방식인 파라오 전시관으로 발을 옮겼다. 미라를 보자 멀뚱멀뚱 뜬 눈이 금방이라도 깜빡거릴 듯했다. 으아, 깜짝이야. 그 외에도 자연, 풍광, 동식물, 고고학 유물 등등 진귀한 전시물을 둘러보았고 마침내 영상으로 진행되는 진화체험을 끝마쳤다. 박물관 탐방을 마친 우린 다시 시카고 집으로 돌아갔다. 박물관은 분명히 마음속에 살아있었다.

장장 2시간의 관람이 끝난 후 우리는 박사님과 친분이 있는 교수님 부부의 집으로 향했다. 한 교수님은 동양의 부인이셨고, 다른 한 분은 뿔테안경을 낀 중국계 백인의 혼혈인 남편이셨다. 각자가 돌아가면서 자신을 영어로 소개했는데 대화 흐름상 전달이 잘 되었던 것 같다. 서로의 정보를 공유해 처우를 알게 되자 조금 가까워진 기분이 들어 마음이 놓였다. 저녁식사(supper meal)로 말캉하고 기름진 올리브가 들어간 미트볼 스파게티를 먹게 되었다. 주홍색 과일주스를 곁들여 먹은 미트볼 스파게티는 토마토케첩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신선한 맛의 향이 났다. 고기는 쫄깃했고, 스파게티 면은 통통했으며, 소스는 완벽했다. 단 맛이 강해 후추를 살짝 뿌렸다. 매운 향이 올라와 재채기를 하자 두 교수님께서는 동시에 'God Bless You!'라고 하셨다. 그 의미가 무엇이냐고 찬이가 여쭙자 그 말은 영국에서 페스트에 대한 공포가 휩쓸던 Great Plague of London(대역병, 1664~1665) 시대에 생겨난 말이라고 하셨다. 누군가 재채기를 하면 주변에서 하는 말이다. 맥락상 핼러윈 데이의 'trick or treat'(맛있는 걸 주지 않으면 장난을 치겠어!)처럼 사용하는 맥락이 같다고 볼 수 있다. 당시엔 가벼운 재채기마저 위험한 것으로 여겨져 'God Bless You'라고 하는 문화가 전 세계로 퍼졌다고 한다. 두 교수님은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으셨다. 나는 뜬금없이 두 분을 향해 인사드렸다.


"We received God's blessing through our professors. God Bless You!"


저녁밥을 맛있게 먹은 우리는 잠시 바람을 쬐기 위해 저녁 산책을 나갔다. 하늘은 보랏빛과 주홍빛이 오묘하게 섞여 마치 특별한 예술작품을 보는 듯했다. 형과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주호야, 경주에서 보던 거랑 다르다, 그렇지?"

"그러게. 같은 하늘인데 조금 다르네. 나라마다 하늘엔 색이 있는 것 같아."


우린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영이 누나, 저 언젠간 여기서 살고 싶어요."

"과연 그럴까? 주호가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살 수 있을 거야. 한이하고 같이."


누나는 또 한 번 반달눈으로 웃었다.


"난 형이랑 살기 싫어요. 형은 맨날 나 놀리잖아."

"난 너랑 안 살 거야. 그래도 놀러는 와야지."


찬이가 거들었다.


"날 또 빼시네. 이 배신자야. 난 마이너스냐?!"

"너랑도 안 살 거야, 와하하하! 마이너스래요-!!"


종점을 찍었다가 다시 돌아가는 산책길에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우스갯소리가 아냐. 정말 이 땅에서 살 테야."


교수님과의 만남 이후 벨라이모는 호텔에 일이 생겨 먼저 떠나가셔야 했다. 남겨진 우리는 택시를 타고 미시간 주로 돌아왔다. 택시기사는 팁을 요구했고 찬이가 못 마땅하단 표정을 지으며 구겨진 지폐를 넘겼다. 조수석에 앉은 형은 기사에게 그대로 쥐어 주었다. 입꼬리를 올리고 손을 흔들며 땡큐라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날 저녁, 아래층에 발소리가 들려왔다. 1층이 텅 빈 공간이라 그런지 발굽소리가 복층 전체에 울려 퍼졌다. 나는 영이 누나를 불러 스태프 선생님이 왔다고 알려주었다. 스태프 선생님은 우릴 데리고 갈 데가 있다며 대뜸 2층에 들어오셨다. 차고로 내려가자 적색 시보레 실버라도가 보였다. 그걸 타고 미시간 주 오대호 호수에 도착했다. 저만치 자갈밭에서 덩치 큰 청년들이 고기를 제법 잘 낚아채었다. 얼굴은 몰랐지만 미시간 대학교에 재학 중인 대학생들 같았다. 여름방학을 맞아 휴식을 취하고 있어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치즈를 하며 서 있던 그들에 손에 들린 붕어가 카메라 앞에서 아가미를 뻐끔거렸다.


"왜 잡히질 않는 거야.."


찬이와 나는 챔질에 심술 담긴 투정을 부렸다. 대장 스태프님은 미끼가 없어질 때마다 살아있는 지렁이를 낚시찌에 다시 꽂아 주셨다. 원 모어 찬스! 다시 던져보라며 힘을 보태주셨다. 청년보다는 작은 물고기였지만 어쨌든 처음으로 물고기를 낚았으니 월척이나 다름없었다.


그다음 날, 우리는 아침 일찍 인디언 축제가 열리는 한 동네에 방문하게 되었다. 마른 나뭇잎에 불을 지펴 말아 피우는 인디언 치장을 주렁주렁 매단 여성들을 지나쳐 행사장 입구가 보였다. 원주민 마을과 비슷했다.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모두 객석에 앉은 광장에서 목걸이를 만져대며 장식품을 뽐내었다. 나는 광장에 들어오기 전부터 영이 누나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했고, 검은 뿔 숫양의 두개골 목걸이를 구매했다. 목에 걸어보니 꼭 인디언이 된 기분이었다. 위드는 남 따라 필 수 없었다. 미성년자에게 흡연은 치명적인 폭풍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이와 같은 시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가정생활 교과서의 한 대목에 배운 바 있다.

축제 음식으로 달짝지근하고 매콤한 냄새가 나는 멕시칸 타코를 먹었다. 황홀한 맛이었고, 머스터드소스와 케첩만 있는 한국 음식보다 더 풍미가 깊었다. 꽤 맛있었다. 그 음식이 환각을 일으키진 않았으나, 그것은 마치 환각을 경험한 듯했다. <보르네오 동물사전>에 소개된 림노넥테스 팔라바 네시스 개구리의 무늬만큼 이색적이었다. 이윽고 추장을 따라 줄지어 오는 원주민과 하이파이브를 시도했고, 공연이 마무리되었다. 머리에 하얗고 검은 깃털을 꽂은 금발의 여성이 또 보자며 윙크를 했다. 삐딱하게 선 그녀가 피운 시가연기는 우리 얼굴에 자욱이 번졌고, 모두의 하루가 뿌옇게 지나갔다.


3] 미국 생활 셋째 주. 오르 익스플로레이션(광석 탐구) 수업. (Trd week. Ore Exploration class)


강의실 가장 앞줄에 앉은 나는 목이 말라 물을 마셔도 괜찮냐고 물으니 새로 본 곱슬머리의 친구는 그래도 괜찮다 했다. 장발에 매력적인 눈꺼풀이 마치 <기묘한 이야기> 등장인물 마이크 같았다. 오르 반 친구들은 대부분 조용했다. 수업이 지루해서였는지 아니면 원래 조용한 사람들 모임이 원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학습 목표 워밍업을 마치고 모두가 조명이 달린 노란 헬멧과 방한복을 채비해 광산에 가기 위해 스쿨버스에 올라탔다. 광산에 도착 후 근처에 있던 광산 박물관에 들러 광석을 관찰하고 의논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후 전시용 폐광으로 들어가 살아있는 박쥐를 보고, 자연현상으로 생긴 종유석이 솟아오른 걸 만져보기도 했다. 동굴의 깊숙한 아래로 내려가보니 방한복이 귀여울 정도로 추운 바람이 옷 틈 사이로 비집었다. 물웅덩이 위로 똑똑 떨어지는 잔유물에 놀란 친구들은 무섭다며 남자의 곁을 쫓았다. 동요에 몸사리 친 찬이는 얼른 나가고 싶어 했다. 유감. 나는 어둡고 추운 동굴 밑에서 형의 손을 붙잡았다.


"여긴 너무 춥고 어두워."

"내가 꺼내 줄게."


어느 오래된 화산에 방문했을 땐 교수님은 이 화산은 이미 활동을 마친 지 몇 년 되었고, 라바에 닿을 일은 없다며 일러주었다. 다른 친구들은 용암이 흐른 흔적을 만지고 관찰하기 바빴지만 나는 혼자 저 멀리서 쌍살벌 집이 떨어진 곳으로 가 벌들을 구경했다. 쌍살벌은 겁쟁이라서 다른 곤충들처럼 무섭지 않았다. 일행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벌집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얼른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어느덧 마지막 수업이 막바지에 이르렀고 햄버거 박스에 벌집을 챙겨 레크리에이션실로 가 꺼내보기로 했다. 벌집을 꺼내자 애벌레들이 살겠다고 날카롭고 뾰족한 검은 이빨을 딱딱거리며 공격하려 했다. 카르마가 현실로 닥쳐올 땐 식은땀이 나 겁내지 않았던 작은 미물에게 어마어마한 공포감이 들어 재빨리 그것으로부터 멀어졌다. 예전에 작업을 치다 낭패를 봤던 북아메리카 출신 여자애가 다가와 소리쳤다.


"그게 뭐야!! 당장 도로 갖다 놔!!"


장발장에 빙자된 나는 벌집을 구겨진 햄버거 종이박스 안으로 넣고 그곳을 벗어났다. 당황스러웠다. 얼굴이 빨개진 걸 느끼고 다시는 이런 이상한 짓을 반복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하루는 대학 식당에서 피자를 먹고 있는 도중에 스태프 선생님이 다가와 왜 밥을 혼자 먹냐며 말을 걸어오셨다. 그러곤 국적을 물어볼 줄 알았지만 선생님은 이미 알고 계셨고, 아버님과 어머님의 국적, 당신이 들은 세 가지 수업의 학습내용의 만족도와 수업을 함께 듣던 학생들을 본 소감과 총평은 어땠는지, 그 외 여가시간엔 무엇을 했는지, 한국 학교의 교육방식이 어떠했는지, 당신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는지, 다정한 눈길로 물어보셨다.

나는 주말마다 옆집 뜰에서 'Yard sale'에 참가하기 위해 몇 장의 달러를 챙겨 놀려갔다. 눈 내리는 수정 공이 달린 중고 오르골을 구매한 이야기, 학교 수업을 마치면 백야가 보이는 언덕에서 형과 찬이와 영이 누나와 치렀던 비공식 달리기 시합을 했던 이야기, 새벽이 되면 약속처럼 우릴 데리러 와 볼링 치자고 기대에 찬 표정으로 뒤에서 '스트라이크'를 맞추길 응원하던 벨라 이모 이야기, 벨라 이모가 운영하시는 호텔로 따라가 야외 비치의자에 기대 누워 생각에 잠기다 그대로 자버린 이야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집에서 어미곰과 새끼곰이 멀찍이 떨어져 우릴 멀뚱멀뚱 지켜본 이야기, 밝은 날 모터 엔지니어링 수업 중 고랑에서 우연히 발견한 손바닥만 한 거머리 이야기, 생활하던 거주지 뒤뜰에 수많은 검은 송충이들을 보고 놀라 기절할 뻔한 이야기, 한국 토종 산왕거미만큼 거대한 호랑거미가 식당 창문에 거미줄을 쳐 매미를 잡아먹는 것을 목격한 이야기, 그 거미가 무섭다는 이유로 별명이 '까불이(flippant, flip)'였던 학생이 비비탄 총으로 거미의 몸에 구멍을 낸 이야기, 까불이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다 "SORRY, SORRY"라고 노래한 이야기, 자기는 괜찮다면서 비비탄총으로 장난식의 인질극을 시도했던 이야기, 장난을 좋아라 하면서 빼어난 연기로 호아퀸 피닉스 수준의 연기실력을 선보였던 까불이 이야기, 긴급상황인 줄 알고 다급해진 스탭 선생님 세 분이 달려와 장난극을 말렸던 이야기, 처음 온 날 내 멱살을 잡으며 위협했던 안경잽이가 사실은 소심한 형이었다는 사실을 안 후에 서로가 돈독해진 이야기, 식사시간마다 바나나 나왔다며 야릇한 눈빛을 보낸 인디언 여학생 이야기, Strike-Double-Turkey-4 begger-5 begger-6 begger를 넘어 7 in a row, 8 consecutive strike... 퍼펙트게임까지 스트레이트로 이겨버린 볼링고수가 실은 대학 내부를 돌아다니시던 '미시간 대학'계의 마크 헨리 선생님이란 것을 알게 된 이야기, 영화관으로 가는 길에 여학생을 뛰어넘다 가랑이가 걸려 아픈 부위를 가렸던 장신의 힙스터 볼캡 보이 이야기, 영화 <행콕>을 자막 없이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건 정말 최고의 영화야!"라고 감탄했던 이야기, 정글짐이 있던 놀이터에서 영유아들과 모래사장에서 뛰놀던 이야기까지 짧은 시간에 상세하게 말했다. 스태프 선생님은 살짝 당황하셨는지 시간을 훔쳐보시고는 영어가 상당히 늘었다며 칭찬하셨다. 그리고 "남은 피자 맛있게 먹으라"며 자신의 사이다가 담긴 컵을 내주었다. 이렇게 마지막 주가 마무리되었고, 'Summer Youth Program'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기억 속의 경주의 한 아파트 부엌 찬장에서 카펜터스의 'Top of the world'가 나지막이 흘러나왔다.


I'm on the top of the world lookin'~
down on creation
And the only explanation I can find~
Is the love that I've found~
ever since you've been around
Your love's put me at the top of the world~


띵-. 띵-. 띵-.


'손님 여러분, 한국의 도심,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좌석벨트를 착용하시고 비행기가 멈춘 후 선반을 여실 때에는 물건이 떨어지지 않게 유의해 주십시오. 오늘 아시아나 항공을 이용해 주신 손님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늘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