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검은 안개의 외침

악취 나는 진실.

by 언데드

내겐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다. 오색찬란한 빛깔처럼 특별하지도, 허무할 정도로 평범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 기억은 특별했고 근엄한 시멘트 바닥만큼이나 빛바랬다. 무언가를 시도하기 위해서는 미움받을 용기가 보통 이상으로 필요했다. 이 비밀이 설령 스스로 목을 조르는 일이라 해도 손뜨기 마술로 가볍게 풀어버리면 그만이다. 이제 진짜 비밀을 말할 차례다.

생각해 보면 비탈길과 경사 진 내 인생에 아무것도 아닌 일은 없었다. 고통을 고통으로 해독하다 보니 오히려 그것이 새로운 해독법이 된 셈이다.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살아남기는 싫었다. 휘영청 파도에 떠밀려가는 한 줌의 모래처럼 부서지며 살기 싫었다. 죽으면 아무렇지 않게 잊히는 사람이 되기 싫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나는 뼈를 남기기보다 이름을 남기고 싶었다. 인간으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진실로 행하고 싶었다. 유일무이한 한 명의 인간으로 소중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현재까지도 널리 쓰이는 심리학의 창시자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 빌헬름 막시밀리안 분트의 연구는 우리가 인간의 종착지에 대해 한 번쯤 고찰해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분트 선생님은 과학적인 심리학을 위해 인간의 의식을 분석해야 한다는 신의를 내걸었다. 인간의 의식이란 세상과 정신에 대한 인간의 주관적인 경험을 말한다. 분트 선생님은 화학자들의 구성법에 아이디어를 얻어 인간 의식에 대한 구성주의 접근을 독창적인 방법으로 택했다. 구성주의는 인간 의식을 기본적인 감각과 느낌이라는 구성요소로 쪼개어 분석하는 방법이다. 어떤 시점과 상황에서 다양한 인간의 의식상태가 공존하는데 이것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내성법(자신의 경험에 대한 주관적인 관찰, 자기 내부 성찰 법/Instrospection)을 사용했다. 이로써 그는 주관적인 측정과 실험 제어를 통해 정신과 의식의 영역을 보다 구성적으로 분석해 심리학과 철학을 구별하는 데에 일조했다.


주관적인 세계는 외부의 시각과 다를 확률이 높다. 하지만, 좋지 않은 경험을 일부러 '좋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안 좋은 경험은 부정적인 감정을 들추고 시시때때로 트라우마라는 케이지에 가두기 때문에 공표할 권리는 개인의 가치에 부합한 신념 아래 똑바로 서 있어야 한다. 보육원의 생활이 감옥이나 군대 같았다는 지인의 의견도 있었지만, 내겐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곳의 생활은 마치 낙원 같았다. 어느 소설에 나올 법한 '비밀의 화원'이 밟아온 나의 그림자 위로 남겨져 있었다.


2009년 4월 봄. 학교 수업을 마친 후 점심밥을 먹으러 가기 전이었다. 비단처럼 깔린 잔디 근처에는 작은 금이 간 성모상이 있었다. 빛바랜 때깔의 아이는 성모상에게 부둥켜 안겨 있는 이곳은 평화로운 경당이었다. 어른과 나는 서로를 마주했다. 아른거리는 어른의 머리는 산신령처럼 희었고 두 눈은 성수처럼 깨끗하고도 맑았다. 늙지 않는 사람 같았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인공 마리아를 연상케 했으며, 공기에서 차분한 에너지가 감돌았다. 선생님께서 먼저 인사를 건네셨다.


"안녕 얘야, 오랜만이네..."


우린 어색한 표정으로 나란히 인사했다. 떨떠름한 인사를 시작으로 선생님과 나는 경당 옆 큰 바위에 앉았다. 잠시 뒤 그분이 물으셨다.


"혹시 어린 시절이 기억나니?"


내가 대답했다.


"한 장면 빼고는 안 나요."

"괜찮다면 기억나는 장면을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 보면 과거를 별로 떠올려 본이 적 없었다. 기억을 떠올리는 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정신적으로 큰 사고를 당했기에 '부분 기억상실'이라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음... 네 살 때는 엄마가 있었어요. 전 밥을 먹기 싫어했고요. 그런 저를 엄마는 뭐 하나라도 먹이려 수저를 들고 쫓아왔어요... 무서워서 계속 도망을 갔고요. 그런데 수저에는요. 미역국이 담겨 있었어요. 밥도 같이 있었어요. 김도 모락모락 났어요. 맛있어 보였는데 전 왜 도망쳤나 몰라요. 엄마는 걱정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그땐 정말 많이 야위었거든요. 지금은 아니지만요."


선생님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고는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그리고 말을 이으셨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선생님은 너에 대해 조금 아는데 얘기해 줘도 괜찮을까?"


"네. 하셔도 괜찮아요."


선생님은 이윽고 판도라 속에 잊힌 나의 과거를 천천히 들려주기 시작했다.


"어떤 광장에서 넌 서럽게 울고 있었어... 브라질인지, 멕시코인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만... 아무튼 그곳에는 보호자 한 명 없었지. 울고 있는 너를 발견한 사람이 아동 보호소에 데려갔어... 그러고는 국제 입양센터에 전화를 걸었어. 아마 두 시간 정도 걸렸을 거야. 입양센터에서는 너를 받아주기로 했고. 그 사람은 너를 센터에 맡기고 돌아간 것 같아. 뒤에 자세한 건 그 사람만이 알 테니까.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선생님도 모르겠어. 입양을 승낙한 부모에게서 연락이 오기를 센터 사람들이 얼마나 기다렸을까. 널 걱정했던 주변 사람들이 네가 계속 울고 있던 게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나 봐. 그러더니 덜컥 전화가 걸려왔어. 대한민국이었지. 한국에서 널 입양하고 난 다음에야 여기로 올 수 있게 되었단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기에. 이미 닳을 대로 닳아있던 손톱을 연신 물어뜯어야 했다. 심신을 가라앉히는 행위는 극도로 긴장한 떨림을 덜어 주었다. 불안을 회피하려는 작은 행동은 일종의 처방이나 진정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도르핀의 분자 활동은 활발했다. 불안에 떨었던 타구로 파울볼을 만들었기에 예상대로 호흡이 가빠왔다. 기억처럼 까맣게 잊고 있던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선생님은 날 보시더니 가슴에 손을 얹고 이야기하셨다.


"5초 들숨. 5초 날숨."


선생님은 가슴에 손을 얹은 채로 혼란스러워하는 날 바라보며 말했다. 즉시 선생님의 말과 행동을 똑같이 따라 했다. 매머드를 만난 스라소니의 긴장이 폭삭 풀렸다. 막힌 숨도 새어나갔다. 작은 신경들이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갔다. 빛바랜 나의 안색을 본 선생님은 당신의 손으로 떨고 있던 손위에 살포시 얹으시며 말씀하셨다.


"아이야, 언젠가는 네가 한 선택에 후회하더라도 선생님은 널 믿을 거야. 그러니 이 일에 대해서는 너무 마음 아파하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선생님을 믿는 만큼 선생님도 널 믿는단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


선생님은 눈시울을 붉히며 천천히 손을 놓아주셨다. 그러고는 씁쓸하게 웃으시며 식당으로 퇴장하셨다. 선생님은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다 사라지셨다. 한순간 마음이 먹먹해졌다. 공허와 슬픔이 밀려왔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밑 빠진 독이 되었다.

소풍 가기 좋을 정도로 화창한 날, 경당에서는 억센 바람이 불었다. 바람으로 일어난 흙먼지와 작은 잎들이 성모상의 아이와 내 몸을 동시에 스쳤다. 가릴 새도 없이 흙먼지가 눈에 들어와 눈물이 터져 나왔다. 바지를 털고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날씨는 여전히 화창했다. 쓰라린 가슴을 부둥켜안고 밥을 먹으러 생활실로 올라갔다. 식당 앞에 도착하자 식탁에 앉은 학생들의 시선이 문간에 서 있던 내게 쏠렸다. 선생님과 이야기했던 자초지종을 담당 수녀님께 털어놨더니 수녀님은 짜증 난 눈초리로 날 노려보셨다.


"이따가 저녁에 보자. 어휴...."


체한 울분은 충분히 쓸쓸했던 마음을 비집었다. 스스로가 답답하고 어처구니없는 존재로 여겨졌다. 무엇보다 생물학적으로 나란 인간은 일차적 욕구를 채워야 했다. 그렇기에 따가운 눈총을 받더라도 말없이 빈자리에 갔다. 의자를 당겨 앉던 찰나, 이따금 비웃는 소리도 들렸지만 개의치 않고 국을 떠먹었다. 하필 미역국이었다. 양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참았던 눈물이 억압을 박차고 눈꺼풀 너머 쏟아졌지만 참았다. 밥이 담긴 숟가락은 흐릿해졌다가 잘 보였다. 내 망할 인생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세상 잃은 표정으로 밥을 먹던 중, 선배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났다.


'쟤 이제 고아네?'

'풋..! 원래 고안데 무슨...'

'쟤도 오늘부터 집합이다. 킥킥.'

'X나 뒤졌다. 이젠.'


점심에 다시 학교를 가야 했기에 시간을 훔쳐보며 밥알 한 톨 남김없이 그릇을 비웠다. 작은 목소리로 누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또박또박 따라 할 정도로 잘 들렸다. 밝은 귀가 나름 자랑스럽다고 자부했지만 시설에서는 오히려 독이 되었다. 얼마 안 가 그 능력을 감추며 아무 일 없듯이 살아갔다.

오후 수업을 마친 뒤 학교에서 생활실로 돌아오다 우연히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침실에서 사람이 흐느끼는듯한 소리가 들렸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방 안에서 한 선배가 나를 불렀다. 점심시간 막바지에 '넌 뒤졌다'라고 말한 생활자였다. 가방을 메고 영문도 모른 채 방으로 끌려온 풍경은 참혹했다.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 네 살의 공포가 약속대로 엄습했다. 창밖은 벽으로 가로막혀 다른 눈이 들여다볼 수 있는 여지도 주지 않았다. 막다른 골목이었다.


"왜... 왜요?"


질문과 동시에 선배의 주먹이 명치 아래로 강하게 들어왔다.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증오에 서린 목소리가 또렷하고 무겁게 들렸다.


"반말한다고 편했겠다? XXX야."


웃음이 떠나가지 않는 목소리는 가슴과 배에 연신 주먹을 꽂았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선생님과 나의 관계가 괜찮았을 때는 부단히 잘하던 반말도, 반항도 하지 못했다. 체급 차이가 엄청났을뿐더러 저항하려는 힘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제초기 밑에 깔린 잔디처럼 무참히 깎여나갔다.


'히죽'


선배의 명령으로 애처로운 비명은 모두 묵음 처리되었다. 타격운동에 진심이었던 선배의 '열'한 마디에 나가떨어진 몸은 오뚝이처럼 열중쉬어 자세를 거듭 고쳐 '주먹과 발'을 받아내기에 능한 상태가 되었다. 핑핑 도는 눈앞의 상황과 세상은 히죽대는 귀 옆의 검지 손가락처럼 잘만 돌아갔다. 나는 <인간실격>의 요조로, 인간이 아닌 유격훈련장 지푸라기 인형으로 변해갔다. 저녁 9시, 기도시간이 되어 성호를 긋는 즉시 마음속으로 하느님께 빌었다.


'이딴 세상 살기 싫습니다. 거기 있다면 작은 도움이라도 주세요.'


어쩌면 이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파괴적인 생각과 충동은 날이 가면 갈수록 행동주의 법칙에 따라 강화되었다. 파블로프의 개. 피비린내 나는 지옥의 신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 후로도 지옥 같은 나날은 반복되었다. 도저히 이런 생활에서 행복이란 걸 찾기 어려웠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상황에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텅 빈 머릿속엔 신을 갖다 놓고 온갖 불평과 불만만 늘여놨다. 하늘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비는 오지 않았다. 그날, 저녁기도를 했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침실은 니스가 두껍게 발린 침대가 일렬로 쭉 놓여 있었다. 최소 열댓 명 이상이 사용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이층으로 된 구조라서 많은 인원이 이용하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기도가 끝난 후 침대로 가 욱신거리는 몸을 뉘이고 가쁜 숨을 삭혔다.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다시 자유로워졌다. 쌓인 피로와 고통이 늦봄처럼 몸속으로 스며들어 왔다. 깊은 잠으로 다친 몸을 가리자 무대 엔딩을 장식하는 어두운 커튼의 포근함이 느껴졌다. 금이 간 석상의 아기 예수로 햇살 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게 꿈의 기도였다. 모든 것이 씨발, 제발 꿈이길 바랐다. 동트는 새벽엔 닭울음을 따라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아이들의 하울링이 신경을 긁어댔다.

그날, 나는 이곳의 진실을 알아버렸다. 규칙, 문화도 모두.

이 사태를 입막음하려는 어른들, 단순 재미 삼아 폭행을 저지르는 생활자들. 단순 재미로 하는 폭행이 아니라며 따끔한 매질이라고 각인시켰던 위선자들. 폭력이 당연시되는 이곳의 생활문화를 낱낱이 세상에 외치고 싶었다. 138억 년 전 터져버린 빅뱅은 인간의 영무 속에서도 틈틈이 팻말을 들어 제 목소리를 내었다. 이 세상에 무한하고 영원한 비밀은 내 앞에 더 이상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