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인으로 살다 보면 '나는 과연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일까?'에 대한 고민이 느껴진다. 갑자기 나온 머릿속의 질문을 무마시키려 산행을 하다 우연히 마주친 사원에서 절을 했다. 비탈진 산길을 내려올 때에, 시간의 여과 없이 마음의 얼굴을 바꾸는 무신론자로써 방황의 미로에 갇히기도 한다. 허영과 무영에 쉼 없이 부닥치다 보니 '나는 과연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올바르게 행하고 있는 걸까?'라는 또 다른 질문으로 자신에 대한 불신이 시작된다. 그 불신을 쫓다 보면 지켜든 죄의 횃불은 더욱 뜨겁게 타오르고, 기어이 화상을 입는다. 화상을 입은 죄 많은 자의 검붉은 장작 같은 말은 불똥이 되어 타인의 감정에 작열통을 전염시켜 아픔의 공간을 짓는다. 지어진 고통의 공간은 아픔의 봉화를 피워 희거무스름한 연기를 흘려내고 타인의 정신과 연결한다. 그리고 그 고통이 전파되는 광경을 본 신앙을 가진 내면의 아이는 가슴을 움켜쥔다.
나는 단순히 신앙생활을 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고아원에서 내가 받은 사랑을 잘 실천하고 있는 것인가가 궁금했다. 그걸 애써 무시하고 갖은 일들로 고통으로부터 생긴 찰과의 흉터에서 새어 나오는 검은 재를 막으며 살아왔다.
나는 정말 신을 믿고 있는 걸까?
죄의 흉터가 아린다. 그래서 마음도, 몸도 아파졌나 보다. 글쓰기는 죄를 씻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끝없는 반추로 다른 죄를 낳기도 한다. 그렇기에 글과 관련된 행위는 다각도로 아름답다. 단순하지 않아서 좋고 이 행위는 심오함과 동시에 고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