읊은 박자타령이 투박한 토박이

피로 쓴 고백송

by 언데드

글쓰기에 앞서 나는 누군가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줄 때 주로 실화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어릴 때부터 선생님과 주변인으로부터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칭찬을 받았기에 충분히 이솝우화에 견줄만한 이야기를 조잡한 단어와 숙어와 잡지식을 융합하여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은 그저 허접 픽션이라 휘발성 높은 도파민. 오직 그것만을 포물선으로 건넬 뿐이다. 알맹이가 없을 것이다. 수박 겉핥기식의 뜬구름 잡는 가십거리를 본인이 내뱉는 격이니 이미지메이킹엔 좋지 아니하다. 한 때는 그런 이야기들이 대화의 주류였기에 '믿거나 말거나'로 불도저처럼 밀어버려 따분했던 분위기를 차츰 열띠게 만들기도 했었다.

수다쟁이가 아니었다. 아니, 반쯤 맞는 것 같다. 친구들과 이야기할 땐 뚝뚝 끊겼지만, 혼자서 구시렁거릴 때만큼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때문에 넌 왜 이렇게 궁상맞냐는 둥 구둣주걱의 모난 부분처럼 투정이 센 비처럼 쏟아지기도 했었다. 셀프 토킹은 브레인스토밍의 전주곡이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저거넛 스텔스를 방불케 했다. '무시하려거든, 비난하려거든, 내 이마를 뚫지 못하면 그만'인 마인드가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었다.


이것은 내 천성과 분명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그렇다. 초극단주의자로 살지만 본인은 외골수 사고방식의 독특한 틀에 갇혀 있음을 인지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나는 집중을 잘 하지만 한 번 흐트러지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매우 어려웠기에 어른들께 혼나기 일쑤였다. 음, 무언가 이상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집중은 잘하는 것 같은데 결과는 늘 야단으로 일단락으로 됐으니. 스스로에게 어떠한 동기나 응원을 마음껏 할 수가 없었다. 겨겨우 무언갈 잘했다고 생각하면 한쪽이 와르르 무너졌으므로 자존감은 덩달아 하락될 수밖에 없었다. 혼나지 않는 날을 세어봐야 겨우 열 손가락 안이었고, 나머지는 허공만큼이나 공허한 눈물범벅의 나날이었다. 이 또한 슬프지만 나는 인정욕구가 매우 결핍된 상황이 일상이었던 사람인 것이다.


좀 더 뒤로 돌아가자면 우선 가족이 비일반적이다. 안정적이지 않다. 있어야 할 부모가 없고, 부모가 있으면 어떤 지 최소한의 생각은 해 보았으나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더군다나 해외서 날 입양하신 양부모님은 IMF를 맞아 가정파탄의 위기에 놓여 서울의 어느 한 고아원에 나를 맡기셨다. 보호자와 연결된 아이의 마음은 보호자와 떨어질 때 심장을 찢을 정도의 고통이라고 한다. 통계학적으로 '일반적인 사람'(이하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의 생각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Example / 일반화 X) 힘들면 고아원에 맡기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큰 오류에 불과하다. 심적,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거의 동시에 찾아온다. 이것은 삼위일체의 트라우마로 영혼에 각인되어 피해자가 성인이 되고 나면 '그때 일은 이미 지난 일이죠. 괜찮아요.'라고 답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당시의 고통스러운 과거에 발목 잡혀 현재를 잃고 싶지 않아 애써 잊으려는 무의식적 방어기제로 해석된다.


과거는 쉽게 묻히지 않는다. 모래처럼 부서져 사라지지 않는다. 알갱이를 만지려 손짓을 하면 티끌 같은 세세한 촉감이 미세 신경세포까지 빼곡히 전율하여 오래된 기억을 꺼내게 만든다. 오히려 그림자처럼 자신이 그늘 안에 있어도 윤곽이 뚜렷하고 선명하게 보이는 '또 다른 나' 같은 것이다. 자신과 완벽하게 똑같이 생긴 사람을 길에서 매일 마주한다면 그만한 두려움이 또 있겠는가. 평범한 내가 그림자로부터 가려진 자신의 눈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생각만 해도 오싹하다. 이런 정신으로 나는 사실적인 글을 쓰며 나아가 글쓰기는 취미를 넘어 내 일부가 되었고, 때때로 나 자신이 '단어와 문장과 문단을 아우르는 글' 자체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나는 글에 관해 기묘한 재미를 붙인 셈이다. 물론 알고 있다. 이 행위는 내 고통 기저에 몸서리치는 두려움을 상쇄시키기 위한 최후의 발악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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