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마마보이

이르는데 무슨 고민이 필요해?

by 언데드

닫혀있던 눈을 뜨자 나는 또다시 밀실에 홀로 서 있었다. 그곳에는 아날로그 형식의 TV가 있었는데 주파수가 잘 터지지 않았는지 지지직 거렸다. 옆구리를 가볍게 툭툭 치자 TV가 제대로 작동했다. 소리를 들으려 하니 최소한의 볼륨으로 되어 있었기에 나는 거기서 나오는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가까이 대고 들어야 했다.


매주 오후 5시 30분, 목요일에 초등학교를 마치고 나면 여지없이 보던 동물의 왕국. 채널에서는 야생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다큐멘터리를 주로 소개한다. 나는 그것이 무척 재미있었다. 인간에게 관심을 두기보단 동물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커서 그랬으리라. 중저음인 성인 남성의 내레이션은 토크마카크 원숭이 '그렘린'을 소개했다.


'태어나 보니 전쟁터, 서열 꼴찌 새끼 원숭이.'


「토크 마카크 원숭이 암컷인그렘린을 소개합니다. 태어난 지 9주밖에 안 돼서 작고 연약합니다. 그렘린에게 자연은 위험한 곳이죠. 무서운 포식자들도 있고, 무리 안의 경쟁도 치열합니다. 다른 무리가 목숨을 위협하기도 하죠. 새끼 원숭이의 셋 중 한 마리는 생후 1년을 못 넘기고 죽습니다. 그렘린은 배울 게 많습니다. 그것도 서둘러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요. 지금부터 그렘린을 만나 보시죠.」


그렘린의 모습은 '도태상태에 놓인 인간'과 비슷했다. 어찌 보면 동물의 세계는 인간세계에서 벌어질 일들을 예견한 것이 아닐까?

동물과 인간에게는 공통적인 면이 있다. 이 둘의 가장 큰 특징은 집단이 생기면 강한 개채, 약한 개채로 나눈다. 강한 개체는 약한 개체를 무리로부터 떠밀고, 약한 개체는 얄짤없이 무리에서 도태된다. 날 수 있는 힘을 잃고 외딴곳에 정체되어 갈 길을 잃은 기러기들, 남극과 북극 이동 중 동상이 걸려 떨어져 나온 펭귄들... 도태된 동물이 다시 무리에 합류할 확률은 실질적으로도 매우 낮다. 대개 그대로 굶거나 얼어 죽는다. 이처럼 '동물의 세계'는 참혹하고 냉정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류사회 또한, 동물의 왕국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을 두 번 다녔다.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못한 점과 학습능력이 부진해서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지 못해 혼자 유급했다. 주변으로부터 무시를 받거나 일부 보육 선생님들한테서 유급된 일에 대해 언급당하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여러 가지 이유를 둘러놓았지만 생활기록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기에 허풍을 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매번 학기마다 성적이 좋지 못했고 매일 저녁, 공부시간마다 풀이하는 종합학습지의 성적 또한 좋지 못했다. 숙제 미루기는 기본, 잦은 지각에 엉뚱한 교과서는 잘 챙겨 오고 챙겨 와야 할 학용품이나 준비물은 자주 깜빡하는 것들이 빈번하다 보니 자연스레 모두가 모인 책상에서 가장 뒷자리에 앉게 되었다.


내 IQ는 다른 평균의 아이들보다 현저히 낮은 편이었다. 학습을 하면서 산만했고, 집중력도 다른 친구들에 비해 보편적으로 뒤떨어졌다. 한 가지 맡은 일을 시키면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로 다른 일을 해서 어른이 하는 말을 듣지 않는, 제멋대로인 녀석으로 혼나기 십상이었다. 한곳에 집중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재미있는 일을 하고 나서 그다음에 맡은 일을 해야 마음이 편했다. 선생님께 이쁨 받는 은혜 갚는 두꺼비로 여겨지지 않았고, 청개구리로 불렸다. 나는 정해진 것과는 늘 반대로 행동하는 것에 만족감을 느꼈다. 새로운 문물이 시야에 들어올 때마다 뿌듯한 감정이 피어올랐고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독보적인 콘텐츠를 얻은 것 같았다.

통상적으로 보았을 때, 한 학급마다 한 두 명가량의 학생 성적은 평균적으로 부진한 편이다. 그들은 자신이 원해서 학습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격변하는 외부 자극에 의해 정서가 불안해지고 뇌의 성장이 더뎌져 짓눌린 생활에 누락된 방황이 전제가 된다. 학교 내부의 부조리나 가정의 폭력으로 정서가 엉망으로 망가졌기 때문이다. 학습능력이 부진한 학생들 대부분은 가정이나 외부 사건의 일환으로부터 신체 및 정신적 상해를 당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일반인'에게 보이는 그들의 비사회적인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평균의 시야의 틀에 맞지 않는 행동은 지나치게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는 상처라는 그리스어 트라우마트(Traumat)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는 의학용어로 외상을 뜻한다. 심리학에서는 정신적 외상 충격을 말하며, 심리학으로부터 널리 쓰였으므로 부정의 의미가 담긴 단어로 사용된다. 트라우마는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동반하는 경우가 극히 많으며 이러한 이미지가 장기기억된다는 특징이 있다. 그 예시로, 사고로 인한 외상이나 정신적인 충격 때문에 사고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되었을 때 불안해지거나 심한 감정적 동요를 들 수 있다.

소외를 자주 경험한 아이들은 정서적 외상의 피해로 트라우마를 겪게 되면, 소정의 시간이 지나도 트라우마로 생긴 고통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쉽게 잊지 못한다. 따라서 어른은 자녀에게 유년기 시절에 좋은 기억을 특히 많이 심어주는 것이 좋다.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사회성이 좋은 아이는 어른이 되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기 위한 일을 찾는 것으로 목표를 삼는다. 좋은 경험을 많이 하는 것과 동시에 올바른 자립심을 길러야 회복탄력성이 자연스레 길러지기 때문이다. 또한 스스로가 정한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질 줄도 알게 된다. 이처럼 경험이 풍부한 아이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배우고 깨우치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그에 따른 위험도 감수하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게 된다.

그러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른의 제대로 된 배움이 시급하다. 모든 어른은 아이의 거울이 될 수 있으며, 이는 부모로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어른이라면 가장 먼저 자신을 돌보고 아끼는 방법들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 덕목이다.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하도록 창의적인 놀이와 행동인지치료 및 심리치료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소소한 즐거움이 일상에 녹아들도록 적극적으로 나서고 도와주는 것이 건강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올바른 방향이다.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은 어른으로써 올바른 결정이면서도 어른이 아이를 통해 사회성을 배우는 것은 어른으로써 또 다른 배움의 기회이기도 하다.


생활실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나는 다음 친구들이 오길 기다렸다. 삼촌이 사주신 합체로봇을 꼭 끌어안으면서 창문만 쳐다보았다.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불쑥, 유리 박힌 녹색 철문을 통해 이전에 담당하셨던 엄마 수녀님께서 말씀하셨다.


"새로운 수녀님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이따가 더 좋은 친구들 만나게 될 거야."


나는 수녀님의 마지막 인사를 받아냈다. 잠시 후 다른 친구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침대에 앉아 떨던 불안감에 좀처럼 창문에서 눈이 떼지지 않았다. 부산에서 이제 막 올라온 친구들은 침대에 혼자 앉아 있는 내가 신기하듯 창문으로 빤히 바라보았다. 방에 이미 입실한 아이들은 장판에 병아리 같은 샛노란 가방을 내려놓고 가부좌를 틀었다. 장판 위는 금세 또래 아이들로 가득 찼고, 침대에 있던 날 포함해 생활실 인원은 총 24명이 되었다. 담당수녀님이 오시기 전에 어떤 애가 갑자기 침대로 다가왔다. 그 애는 만지작거리던 합체로봇 장난감에만 관심을 가졌다.

"이거 누구 거야?"

잠시 머뭇거리던 나는 '이것은 내 엄마가 준 소중한 물건이고 날 지켜줄 거야. 누구든 줄 수 없어.'라고 대담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소심이란 바다에서 용기란 섬으로 방향을 가리킬 직시란 나침반이 없었기에 속으로만 대꾸했다. 그저 속으로만. 노랗고 파랗고 녹색인, 그리고 붉은 다섯 마리의 육식동물들이 합쳐진 백수왕 고라이온(볼트론)의 고개가 머쓱한 듯 반대로 고개가 돌려져 있었다.


"이거 내 거야!"


엉겁결에 목소리가 크게 나와버렸다. 로봇에 올라간 친구의 손을 올려쳤더니 얼굴이 빨개진 그 애는 눈에 힘준 눈으로 주먹을 꺼내 들었다. 약간의 정적 끝에 혈기 넘치는 신경전은 말다툼에서 주먹다짐으로 번졌다. 처음 보는 애와 갑자기 일기토라니, 전재산이 빼앗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발악을 하던 중 얼굴에 작은 상처가 났다. 긴장감을 놓다가 더 맞을세라 적개심은 놓지 않았다. 볼 한쪽에 손을 대어보니 라면 담긴 봉투 아래처럼 울긋게 부었고 얼얼했다. 손톱에 긁힌 자국이 만져졌다. 작은 생채기 위로 피가 찔끔 솟았다. 피카소가 보았다면 예술, 내가 바라본 건 피꺼솟이었다. 주먹 같은 붓질로 탄생시킨 첫 작품 치고는 훌륭했다. 그 애의 손을 세게 내친 이유는 장난감에 남아있는 어머니의 애착이 떨어져 나갈까 봐 반사적으로 자율신경이 반응해 방어기제가 발동했던 걸로 유추된다. 결국 나는 일부러 큰 소리로 울며 수녀님이 오기를 바랐다. 머지않아 발소리가 가까워졌고 새로 온 수녀님이 창문을 열고 호통을 쳤다.


"누가 첫날부터 싸우니?!"


화들짝 놀란 우리는 눈길을 다시 창문으로 돌렸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수녀님이 너무 화나지 않은 것 같았다. 끝에 목소리가 올라가는 것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었다. 1년 일찍 생활한 노하우로 '진짜 분노'의 억양을 간파했던 것이다. 수녀님은 생활실로 들어와 눈곱만 한 상처가 난 얼굴을 부드럽게 만지며 말했다.


"어유~ 상처 난 것 좀 봐. 싸우면 뭐가 좋다고. 응?"


그렇다. 싸워봤자 아무런 이득은 없었다. 수녀님의 따뜻한 위안을 듣고 나니 문득 양어머니가 생각났다. 그래서인지 처음 보는 수녀님께 남모를 애정이 갔다. 엄마수녀님은 호통을 칠 때 무서웠지만 평화로울 땐 느긋한 암사자 같았다. 긴장이 와해되어 생성된 세로토닌이 혈관도로를 타고 흘러들어 가 심장과 꽁냥 거리기를 유지했다.

가족관계는 부모와 자식 간의 사이가 존재한다. 이 보육원은 수녀님과 생활자들 간의 '가족적인 연대'가 존재했다. 이곳에서 보호를 받는 스물네 명의 아이들은 수녀님의 영속적인 특별한 자녀가 되었다.

친구와 싸움이 일어날 때 불리해지면 '엄마 수녀님'께 일러바치는 확성기의 역할은 남이 시키지 않아도 도맡는 일이 되었고, 그때 생긴 나의 별명은 '마마보이'였다.

우리가 모여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건 간에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사고뭉치는 이곳에서 생활자로 생활하고 있는 대부분이 그랬다.

결핍을 가진 이들이 모인 곳. 편부모 가정에 소속된 아이, 학대받거나 폭력을 당한 아이,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이 모여 수녀님을 엄마로 가정을 이루는 특별한 곳이었다. 서로의 CCTV, 때로는 눈이 되어주는 나는 '마마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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